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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하자고 했더니 정말 뭐라도 되고 있다

찰떡 직업을 찾는 모험 ep.29

by 일라

길어지는 취업난에 ‘뭐라도 하고 있자’를 실천하고 있는 요즘.

아무것도 안 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아까워서 일을 벌이고 있었는데, 벌린 일이 하나둘씩 늘어나자 조금씩 부담이 되고 있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약 세 가지가 있는 데, 우선 디지털 튜터로 단기 알바를 하고 있다.

인스타툰은 매주 꾸준히 그려서 업로드하고 있고, 아는 작가님이 전시회를 함께 열 작가들을 구한다는 모집 글에 지원해서 전시회용 그림도 그리고 있다.

전시회에 굿즈도 올려놓을 수 있다고 해서 스티커 같은 것도 제작해 볼 생각이다.


그 외에 상담사 취업을 준비할 겸, 또 상담에 대한 감을 다시 잡을 겸 임상심리사 2급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오랜만에 연습문제를 풀어보니 턱걸이로 겨우 합격할 정도라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외에 가끔씩 듣고 싶은 상담 관련 교육을 발견하면 참여하고 있다.


겨우 세 가지 가지고 바쁘다고 하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빨리 간다.

또, 4월 초까지는 취미로 하고 있는 노래 모임에서 공연 준비를 했어서 다른 사람들과 시간 맞춰 공연에서 부를 노래도 연습하느라 주말이어도 시간 나면 할 일을 하며 바쁘게 보냈다.

일을 벌인 게 나 자신이라 탓할 사람도 없었고, 또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다 나한테 필요한 일들이라 멈추고 싶지도 않았다.


대신 주말이 사라지자 처음 몇 주는 견딜만했으나 한 달 정도가 지나니 ‘오늘 안 쉬면 내일부터 며칠은 앓아눕는다’라는 생각이 번쩍 드는 날이 가끔씩 생겼다.

그럴 때는 쉬는 게 불안하지만 안 쉬면 내일도 없다는 생각에 불안해하며 밀린 드라마도 보며 쉬어줬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날 잡고 하루 종일 쉬어도 되는 건데 왜 그렇게 쫓기는 듯한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쉬는 와중에 누가 더 좋은 결과물을 내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돼서 그렇겠지



이 와중에 일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몇 주 전에 친구 회사에서 상담사들을 대상으로 과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었다.

2주 넘게 답신이 없길래 안 붙었나 보다 하고 단념하고 있었는 데 얼마 전 참여 확정 연락을 받았다.

과제에 참여하면 내담자들과 상담을 할 수 있어서, 드디어 자격증 취득 후 유료 상담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약 5개월 간의 프로젝트라 경력을 쌓기에는 꽤 부족한 시간이지만, 그래도 상담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취준을 시작한 지 3-4개월이 넘어서야 기회를 잡았다니.

다행이면서도 그 몇 개월 동안 내 마음을 졸이게 만든 건 약간 괘씸했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상담에 대한 감을 찾기 위해 공부도 좀 더 하고 싶어 져서 해야 할 일의 무게가 더욱 무거워졌다.

이렇게 바빠질 줄 알았으며 20대 때 조금 더 신나게 노는 거였는데. 이미 지나간 시간을 새삼 그리워해본다.




그래도 ‘뭐라도 하고 있자’를 실천하고 나서는 불안과 관련된 꿈을 덜 꾸게 되었다.

실천 기간 초반까지만 해도 불안에 시달리는 꿈을 일주일에 약 4번은 꿨던 것 같다.

보통 누가 날 죽이려고 쫓아온다거나 하는 꿈을 자주 꿨는데, 꿈에서 시달린 만큼 이를 악물고 자서 일어나면 턱 근육이 뻐근했다.

하도 이를 악물고 자니까 턱 근육에 염증이 생겨서 치과도 다녀왔었다.

요즘은 다행히 누가 쫓아오는 꿈은 거의 안 꾸고 있어서 이를 악물고 자는 날도 함께 줄어들었다.


그리고 바빠지고 나서는 남들과 비교하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누군가 커리어로 성공했다거나 돈을 많이 벌었다거나 하는 소식을 들으면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질 때가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뭐 했나 싶고, 내가 모아둔 돈의 액수도 초라해 보이고 인생을 헛살은 기분이 들어 한숨을 푹푹 쉬었다.

요즘도 가끔은 남들과 비교를 할 때가 있지만, 쉬는 시간도 촉박해지다 보니 남 인생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부족해졌다.

그럴 시간에 조금이라도 잠을 더 자고 싶고 그동안 밀린 동물의 숲 게임도 하고 싶다.


쉬는 게 불안한 건 아직 초연해지지 못했지만 그래도 남들과의 비교 횟수가 줄어들고 불안한 꿈을 덜 꾸게 된 건 내가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인 것 같아서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상담사 일을 제대로 시작한 것도 아니지만 상담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라도 얻은 걸 기쁘게 생각한다.

뭐라도 하고 있다 보면 뭐라도 된다던데 진짜 되긴 하는구나를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뭐라도 하고 있자’라는 마인드가 말이야 쉽지, 실제로 겪어보면 매 순간 불안과 무기력함의 공격을 버텨내야 한다.

작은 기회를 잡는다 해도 결과가 바로 보이는 것도 아니고, 또 매번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라서 실망감과 착잡함을 피해 갈 수 없다.

5개월짜리 과제에 참여한다고 좋아했는 데 그 뒤로 오랫동안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인생이 항상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으니까, 매번 불확실함을 경계하게 된다.


이렇게 불안을 견뎌내고 있을 때 주변에서 요새 뭘 하고 있는지 물어봤을 때 별다른 성과가 없다면 당혹감이 든다.

상대방은 내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괜히 취조받는 느낌이 들어 뭐라도 증명해 내야 할 것 같아 내가 요새 잘한 게 뭐가 있는지 빠르게 기억을 더듬어보곤 한다.

나와 비슷하게 취준 기간을 가지고 있는 다른 분들은 이런 깜깜한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궁금하다.

도움이 되었던 그들만의 방식이 무엇이었는지, 그들의 깜깜한 시간은 어땠는지 얘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회가 된다면 내가 그런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구상 중이다.

사실 이미 비슷한 일을 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아직 뚜렷한 계획은 없지만 무업 기간을 지내는 청년들이 받을 수 있는 도움은 무엇이 있을지 찾아보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다.

내가 겪었던 시간들이 결코 가볍지 않았기에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기꺼이 도움을 주고 싶어서 참여하게 되었다.


이렇게 또 한 가지 일이 내 할 일 리스트에 추가될 예정이다.

모두 잘 해낼 수 있을지 벌써 아찔하긴 한데 우선순위를 정해서 하나둘씩 마무리해 볼 생각이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찾을 그날까지 오늘 하루도 알차게 보내보자.





찰떡 직업을 찾아 모험하는 강아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www.instagram.com/illam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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