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떡 직업을 찾는 모험 ep.41
지난 한 주 동안 감정의 끝과 끝을 느끼고 왔다.
얼마간 취업 준비와 결혼 준비가 섞여 정신없이 달리느라 감정을 느낄 새가 없었는데, 요새 조금씩 틈이 생기면서 부정적인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신혼집 리모델링을 하며 큰돈이 빠져나가고, 또 청첩장 모임이나 가전제품, 가구 등 자잘하게 돈이 나갈 일이 생기니 통장 잔고가 쑥쑥 줄어들었다.
잔고의 빈자리를 초라함이 채워 내가 점점 작아 보였다.
사실 주변에 나를 소중히 생각하는 가족, 연인, 친구 모두가 있는데 돈이 부족하다고 초라한 사람이라니.
말도 안 되는 말이었지만 자꾸만 내가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말들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얼마 전에 엄마와 어머님과 함께 예식날 입을 혼주 한복을 고르러 예식장을 향했다.
내가 결혼할 예식장은 한복샵을 같이 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한복을 대여해주고 있다.
기대 반 걱정 반 마음을 안고 한복샵 문을 열었는데, 생각보다 옷 가짓수가 많지 않아서 실망스러웠다.
두 분 모두 잘 어울리는 한복을 고르셨지만, 마음에 쏙 들어하시는 눈치는 아니었어서 찜찜함이 마음에 남았다.
며칠 생각해 보다가 엄마한테 원하면 다른 한복샵에서 한복을 대여해도 좋다고 말했다.
다른 샵에서 대여하면 예식장 한복샵보다 약 2배는 더 비쌌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을 한 번뿐인 날인데 마음에 드는 옷을 입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엄마는 조금 고민해 보더니 비용과 효율성을 위해 다른 곳은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셨다.
내가 돈을 더 벌고 있었더라면 적극적으로 다른 한복샵으로 안내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실패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올해 2월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한 것 같은데 도대체 취업은 언제 되는 걸까.
돈도 없고 돈을 벌 능력도 없는 한심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울컥했다.
그렇게 자기 비난에 빠져 있다가 며칠 전에 인지행동치료 워크샵에서 했던 실습이 떠올랐다.
‘악마의 대변자’라는 기술이었는데, 우선 내가 요즘 하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 하나와 그 생각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몇 개 써본다.
그런 다음 내 파트너가 내 부정적인 생각과 증거를 나한테 읽어주고, 나는 그 생각이 뒤바뀔 때까지 나 자신을 변론해야 한다.
나는 ’취업이 안될까 봐 불안해 ‘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썼다.
처음 하는 실습이라 낯간지러워서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내심 걱정되었는데, 내 파트너가 내 부정적인 생각을 내게 말할 때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기분이 들었다.
상대방이 내 불안을 까뒤집어보는 이 웃픈 이 상황을 어서 넘기기 위해 나를 변론하기 시작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효과가 좋았다.
생각해 보면 항상 나는 나에게 부정적인 말들을 많이 했지,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다른 방향에 대해서는 얘기한 적이 드물다.
내게 도움이 된 것처럼 내담자에게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 상담할 때 이 기술을 꼭 써보고 싶어졌다.
안된다고 하면 불안과 우울 속에 계속 빠져있을 것이며, 된다고 생각하면 가능한 방향을 찾아 새로운 길로 걸어갈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집에서 결혼 준비를 한창 하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043으로 시작하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모르는 번호는 스팸인 경우가 많아 잘 받지 않는데, 043 번호를 보니 왠지 모르게 받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구글에 검색해 보니 043이 충청북도 지역번호이길래 순간 한 달 전 KTX를 타고 면접을 보러 갔던 곳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검색을 하던 와중에 전화가 끊겨서 전화번호 전체를 구글에 검색해 보니 내가 면접을 본 기관의 번호가 확실했다.
‘왜 전화했지? 지난번에 예비합격자로 선정됐었는데 자리가 생겼나?‘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메모지에 혹시 취업을 제안한다면 가능한 일 시작일과 문의사항을 적어두었다.
나는 전화를 할 때마다 긴장을 하는 편이라 할 말을 잊지 않으려고 메모에 적어두는 편이다.
메모를 다 적은 후 부재중 전화가 찍힌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내가 면접을 본 곳이 전화를 받았고, 결원이 생겨 취업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난 당연히 좋다고 했고 그렇게 갑자기 취업이 되어버렸다.
정규직도 아니고 올해 12월까지만 일하는 계약직이지만 업계 평균 월급보다 괜찮은 편이고, 또 장소도 우리 집에서 1시간 안팎으로 갈 수 있는 거리여서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아쉽게도 상담을 하는 분야는 아니지만, 교육부와 함께 아동 · 청소년 정서 관련 사업을 운영하는 일이어서 추후 청소년 상담기관에 지원할 때 어필할 수 있을 것 같다.
갑자기 취업이라니!
지난 에피소드에서 취업 부적 그림을 그려서 그런가?(그럴 리가. 하지만 그렇게 믿고 싶다.)
너무 기뻐서 전화를 끊고 거실에 계시던 아빠에게 바로 이 사실을 전달하고 춤을 춘 후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결혼식 전까지는 전시회도 보러 다니고 쉬면서 천천히 결혼 준비에만 집중하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취업이 되며 결혼 준비를 천천히 할 수 없게 되었다.
취업이 된 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게 너무 기뻤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이 소식을 들은 엄마는 예비합격자가 합격이 되기도 한다며 신기해하셨다.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가능함이 되었다니.
상담 관련된 일이 아닌 게 아쉽지만, 뭐라도 할 일이 생긴 게 어디냐. 어떻게 하면 상담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는 더 고민해 봐야겠다.
이제 다음 주 첫 출근을 준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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