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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기회

찰떡 직업을 찾는 모험 ep.47

by 일라

올해 깨달은 신기한 현상이 하나 있다.

바로 간절할 때는 기회의 머리카락 한 올도 볼 수 없지만, 간절하지 않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기회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작년 여름에 퇴사를 하고 나서 캐릭터 사업을 시작했다가, 기대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원래 했던 심리상담 일을 병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그만뒀던 상담을 다시 하는 것에 대해 잘할 수 있을지 겁도 나고 또 그만둘까 봐 걱정했는데, 아직까지는 다시 심리 분야에 흥미를 느끼며 잘하고 있다.


올해 초에 상담사 커리어를 다시 시작하려고 거의 매일 취업 공고를 보며 지원할 수 있는 곳은 모조리 지원했는데, 면접은커녕 서류 단계에서 떨어질 때가 훨씬 많았다.

일을 다시 시작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취업기간이 한 달, 두 달 길어질수록 경제적 압박이 느껴졌고, 그래서 디지털 튜터 제의가 들어왔을 때 '한 번 해보지 뭐'하는 마음이 들어 승낙했다.


디지털 튜터로 일하면서 기존에 하던 캐릭터 사업과 간간이 들어온 일러스트 외주 작업을 병행해 보니 생각보다 힘에 부쳤고, 그래서 디지털 튜터가 끝나면 한 달이라도 쉬고 다시 취업 준비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쉬려고 결심을 하자마자 친구로부터 기업 연구과제로 심리상담사를 모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지원해 몇 개의 상담 사례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몇 년 만에 상담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니!

기쁨도 잠시 두 건의 사례를 끝으로 연구과제 지원자 수가 부족해 사례가 끊겼다.

이제 돈도, 커리어도 끊긴 사람이 되었다는 절망에 다시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지만, 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바로 회사에 취직해 상담 경력이 끊긴 나를 불러주는 곳은 없었다.


그래도 두 번의 면접에서 모두 예비합격자로 뽑혀 희망이 아예 없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결혼식 및 신혼집 리모델링을 준비하며 바빠졌으니 남은 올해는 캐릭터 사업 일을 계속하면서 마음 놓고 쉬어보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마음을 너무 놓았던 걸까.

휴식을 취한다는 걸 언제 알아챘는지 기회가 바로 내 커리어 문을 두드렸다.


예비합격자로 붙은 한 곳에서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상담을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정신건강 관련 사업 경험을 쌓으면 취업 준비를 할 때 플러스 요인이 될 것 같아 제의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막상 출근을 해보니 정신건강 관련 사업을 하기는 하는데 관련 없는 행정 일을 할 때가 더 많아 실망스러웠다.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혹시 상담이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엉뚱한 길로 샌 건 아닌지 고민했지만, 마땅한 상담사 공고도 올라오지 않고 계약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눈 딱 감고 돈 벌러 다니자고 다짐했다.


상담사 취업 준비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자마자 기존에 지원자 수가 부족해 멈춰있던 기업 연구과제가 다시 시작되어 사례 세 개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또, 회사를 다니면서 그림 그리는 시간이 부족해져 캐릭터 사업 일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우울했는데, 전시회 제의가 들어와서 전시회도 준비하고 있다.


이 현상은 일에만 해당하지 않았다.

20대의 나는 오래도록 마음을 둘 수 있는 나만의 짝을 찾으려 부단히 노력했는데, 그럴 때마다 소개팅조차 들어오지 않다가 모종의 이유로 솔로의 길을 택하면 소개팅 제의가 들어왔다.

지금의 남편도 내 남은 20대 후반은 자유롭게 여행이나 다니면서 나만을 위해 보내는 시간을 가질 거라는 마음을 먹자마자 친구가 마지막으로 소개팅 한 번 어떠냐고 해서 '그러지 뭐'하는 마음으로 나갔던 사람이었다.


도대체 기회란 녀석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안 적이 있었나 혼란스러워진다.

잡으려고 하면 도망가고 뒤돌아서면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내가 원할 때 기회가 찾아왔다면 마음고생을 덜 했을 텐데 말이다.


요즘은 회사 일도 바쁘고 11월까지는 여러 일을 병행하다 보니 눈물 닦는 시간조차 부족해, 12월에는 최대한 일을 벌이지 않으려 하고 있다.

올해까지 어떻게든 버텨서 최소 내년 1월 한 달간은 쉬면서 내일배움카드로 들을 수 있는 수업도 듣고 나만의 시간을 염원하고 있는데, 진심으로 휴식을 원할수록 기회가 문을 두드리기 때문에 두려워진다.

그렇다고 또 진짜 쉬고 싶어 했다고 기회가 코빼기도 비추지 않으면 그거대로 서운할 것 같고.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앞으로 기회는 어떤 시간에 나를 찾아올까?





찰떡 직업을 찾아 모험하는 강아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www.instagram.com/illam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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