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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설공주 Oct 13. 2022

이( 齒牙) 세상이 흔들거리면 ... ?

으... 무섭.

처음 치과에 갔던 것은 친구 외숙이를 따라서였다. 어딜 가든 붙어 다니던 중 2학년이었으니 참 오래전 일이다. 그때는 충치 치료를 하면서도 마취를 안 했던 것 같다. 다른 건 흐릿하지만 치료받는 내내 그 친구가 지르던 비명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혼자 기다리던 대기실에서, 그에 대해서는 에지간히 알고 있었던 사이였기에 저 정도면 참을 수가 없어서 저런다 하는 것과 치과에는 오면 안 되겠다 하고 생각했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윗 니 왼쪽에 사랑니가 생겨서 고생했다.  첫 애를 낳고서 난생처음으로 치과에 갔다. 둘째 때는 오른쪽 윗 니에 사랑니가 나서 치과에 갔다. 이민 온다고 갔던 치과에서 스케일링 하고 왼쪽 아랫니 조금 손질하고 그게 다였다. 병원과 송사는 멀수록 좋은 것, 치과라는 곳은 갈 일이 없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내 치아는 충치와 풍치의 차이를 몰랐던, 천하무적 메칸더 브이였다. 튼튼했을 뿐만 아니라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가 부럽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그렇기에 관리라는 것이 전무했다. 도리어 소시부터 치아에 문제를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그때까지만 해도 진정 난 몰랐었네, 치아를 왜 오 복의 하나라고 했는지.

앞서 두 번의 출산 뒤에 사랑니를 뽑았다고 했는데 그 소동에 윗 니가 약간 벌어졌다. 출산 뒤에는 근골격이 틀어진다고 하는데 악골에도 변화가 생긴 탓이었다. 그때만 해도 치아로 고생한 적이 없었기에 참 무지했다. 앞니가 벌어지면 복이 나간다는 속설에다 보기도 좀 거시기해서 치과에서 하라고 하는 대로 했다.  지금 같으면 세상없어도 안 할 일인데 멀쩡한 두 이를 긁어내고 씌웠다. 그 크라운이란 걸 처음 끼웠던 날의 충격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뭣보다도 너무너무 보기가 싫었다. 다들 부러워하던 내 치아가 아니었다. 이제는 30년 전일의 일임에도 뭘 한 꺼풀 씌운 그 이물감이 여지껏도 덜하지 않다. 그때부터라도 제대로 돌보았어야 했는데....

이민 2년 차에 윗 니 맨 왼쪽 이의 충치로 해서 치아 공포증이 시작되었다. 치아가 없으면 잇몸이라는데 그거 잘못된 말이다. 잇몸이 무너지면 그 튼튼한 치아가 더 문제였다.

오늘로 치과 치료를 시작하고 8주째이다. 10년 정도 다녔던 치과를 바꾸고 시작했다. 첫날에 여러 번의 사진을 찍고서 발견한 것은 입안이 종합병원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동안 다녔던 치과에서는 뭐 했노 싶은 데다, 앞으로 뭘 해야 하는가 하는 설명을 듣고 있노라니 잇몸과 치아가 더 욱신거렸다.
한 시간 치료를 받노라면 몸과 맘이 쫄다 못해서 맴이 맴이 아니고 삭신이 삭신이 아니라서 으레 가벼운 몸살이 따라왔다. 하룻밤 치통을 앓고 나니 일주일 정도는 기죽을 쓸 수가 없었다.

세 번 째이던가, 치과의가 한 시간이 넘게 씨름을 하고 있을 때였다. 너무 쫄려서 생각이라도 다른 걸 해보자 하고 있는데, 문득 이 젊은 의사께서 참 고생한다 하는 것과 고마운 마음까지 따라왔다. 치통이란 불청객은 겪은 사람만 안다. 내 치아를 맡아주신 의사 선생이 안 계시면 오로시 내 몫의 생 고생을 했을 것이 아닌가. 건강한 치아를 오 복의 하나라고 이르는 데는 오랜 세월 인류가 고생한 치통을 역사를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겠다

중국의 대단한 소설가 위화 선생은 치과의였다. 그에게 왜 돈 많이 버는 그 일을 관뒀냐고 물었더니, 당신이라면 하루 종일 남의 입 안만 쳐다보고 싶겠냐고 되물었다. 우리나라 원조 미남 배우 신영균 선생도 치과의사 출신이다. 그분들 뿐이랴, 힘들게 공부해서 치과의사가 되었는데 전직한 분들이 많으리라. 세상 어떤 직업에 애환이 없으랴만 치과의들에게 제일 고역은 환자들의 입냄새라고 한다. 건강한 잇몸과 튼튼한 치아가 치과에 올 일은 없고, 문제 있는 치아에서 고약한 냄새는 피할 길이 없으니 이를 어쩌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비비안 리가 키스씬을 찍으며 기절을 몇 번 했다는 믿기 어려운 뒷 담화가 있다. 할리우드 킹이라고 불렸던 멋진 오빠 클라크 게이블이 못 말리는 골초에다 틀니에서... . 그 양반이 씨익 웃을 때 드러나던 그토록 가지런했던 치아가 틀니였다니... 쩝.

요즘 나는 양치를 꼼꼼하게 한다. 전동 칫솔, 치간 칫솔 세 가지, 치실에 소금물 양치, 등은 벌써 시작했음에도 오랜 습관을 고치기가 어렵지만 이런 온갖 고통을 생각하면 정신이 번뜩 들곤 한다. 지난 일을 어찌해 볼 수 없음에도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책 제목이 내 마음하고 똑같다. 단 하루도 한 시간도 앞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지 않음에도 치아를 생각하면, 아! 옛날이여...

앞으로 네 번 정도 더 남았다. 사실은 지금쯤은 다 끝났어야 하는데 가벼운 몸살 몇 번이 오더니 감기가 된통 걸려서 하는 수 없이 연기를 했다. 봄과 여름이 오면 치과가 특히 바쁜 시기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덕분에 예약을 한 번 취소하고 다시 잡으려니까 세 주일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이 모든 괴로움이 자꾸 연장이 되고 있어서 갑갑하다.
그저 남은 시간 고마운 우리 선생님 컨디션도 판단력도 좋으시기만을, 앞으로는 일 년에 한 번 이상 치과에 올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21,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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