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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설공주 Oct 13. 2022

그래, 거사님의 달은 어디다 감춰뒀습니까?

태산이 높다 하되 ...

나는 60년 가까이 예수쟁이 즉 기독교인이다. 내 생애 대부분의 배경이 그러했고, 나이가 들고 보니 내가 배경이 되었다. 이런 말을 하려니 부끄러움은 내 몫이고, 비틀거리긴 했어도 다른 궁리 없이 살 수 있었음이 감사하다.


풋내 나는 무식에 용감을 보태서 다른 사정 돌아볼 생각도 마음도 깜냥도 안되지만, 시간의 풍화작용 덕분에 이제는 상대가 누구이든 지리, 사회, 역사라는 환경에 이르면 연민, 애닳픔, 애잔함...이라고 이름을 붙일만한 상념이 몰려오고는 한다. 기에 따라서는 이 또한  무식의 소치라 용감을 땔감으로 어쩌고 하겠지만....


내가 속한 기독교 포함 다른 종교와 그 관계자들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는데, 이 부분이 골치 아프다.  어느 종교이든 4대 종교에 드는 정도라면, 인류 보편의 정서를 건드린다. 추구함이 심오하고,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음을 믿는다. 긴 세월 살아남은 것이 그 증거이다.

역으로 그런 생명력이 있기에 모든 분쟁의 시원에 종교가 있다. 신앙이 아닌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모리배들을 수수방관하고, 이용하거나 이용당하거나,  추종 또는 숭배하는 '나"와 '너' 즉 대중이 있다. 결론은 사람이 문제,라고 하는 원점으로 돌아온다. 내가 앓고 있는 치료약이 없는 냉소는 이 부분이다.


뒷간 갈 때와 올 때가 다르다고 하는 말은 성경에 넣어도 될 텐데, 춥고 배고플 때 하는 말과 등 따시고 배 부를 때 하는 말이 정말 다르고 너무 다르다. 일러 무삼하랴, 내가 그렇다. 등 따시고 배 부를 때까지 가 보지도 못한 처지이지만 좀 덜 춥고 덜 배고픈 것은 안다. 기중 못 참을 것이 종교 종사자들의 어설픈 담론들이 그렇다. 근거 없는 예화들, 고민 없는 해석과 넘쳐나는 싸구려 위로에는 표정관리가 안된다.


불교의 오도송이나 화두 등은  말 따먹기 같다.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려워서 일단 머릿속에서 잠깐이라도 머문다. 얼치기 풀이도 날아다니지만 읊조려 보면 멋도 있고 맛도 있다.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한마디는 선승 성철 그 자체가 아니던가. 그 한마디 덕에 그는 가고 없음에도 여전히 있는 것만 같다. 그러고 보니 이 말씸 이후 시대를 풍미하고 세대를 넘어선 한마디가...? 기억이 안 난다.


종정 성철의 다큐멘터리를 봤다. 두 시간 남짓 했는데 좀 더 길었더라면 좋았을걸.

출가, 게송, 오도송, 화두 등의 불교의 보물인 선문답이 끝없이 이어졌다. 기중에도 종정 생시에 김병용 사와 주고받은 선문답이 있다.


스님께서는 지난 세월이 헛되지 않으셨군요.


거사님께서는 아직도 무엇인가를 찾으러 다니십니까?


헛되고 헛되다는 생각뿐입니다. 한평생 불서를 모으고 읽고 법이 높은 스님네를 찾아 산사를 기웃거리며 말 품을 팔았지만 무엇을 찾아 헤매는지 조차도 모르겠습니다. 길은 보이지 않고 그저 번뇌의 늪에서만 허덕일 뿐입니다.


헛된 발걸음과 귀동냥으로 아까운 인생을 탕진하는 사람이 어찌 거사님 한 사람뿐이겠습니까. 그래, 거사님의 달은 어디에 감춰 두었습니까.


석가세존께서는 대체 무엇을 위하여 세간에 오신 겁니까.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으시고 일체 만유를 둘러보며 감탄하며 말씀하시기를 기이하고 기이하구나, 일체중생이 여래와 같은 제 덕성이 있건마는 분별망상으로 깨닫지 못하는구나 하셨으니 이는 바로 불교의 시작이자 끝이며 부처님이 세간이 오신 연유이지요.


석가께서 가르치신 팔만대장경의 법음을 꿰뚫은 그 진리는 대체 무엇입니까?


손가락으로 달을 가르치고 그 손가락 끝을 따라 허공에 떠 있는 달을 봐야지 바보는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 끝만 쳐다보면서 달이 어디 있냐고 묻습니다. 부처님께서 팔만대장경을 말씀하신 것은 바로 달을 가리키는 그 손가락을 펴보이시는 것이지 그 손가락을 물고 빨고 해 봤자 결국 달은 보지 못합니다.


우리 인간이 저같이 천박하고 욕심 많고 무능한 인간이 정말 부처가 될 수 있을까요?


될 수 있지요, 처사님 뿐만 아니라 누구나가 될 수 있지요. 그러나 길을 바깥에서 찾으면 안 됩니다. 내 마음속에 고해를 두고 성철에게 물어 무언 소용이 있겠습니까, 스스로 저어나가지 않으면 한걸음도 가지 못하는 것이 깨달음의 길이지요.

내가 화두 하나를 줄터니까, 밤낮으로 놓치지 말고 성불의 지름길로 삼으십시오.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니 이것이 무엇인고


스님은 확철대오 하셨습니까


산이 높아 오르기 어렵다고 하여 그 산이 없다고는 말할 수는 없겠지요. 산 정상에 올라가 본 사람만이 그 산이 얼마나 높은가를 알 수 있으니.


두 분이 주고받은 말 따먹기를 어느 분이 옮기셨는지 궁금하고 고맙다. 토씨 하나도 틀릴까 봐 몇 번을 확인하고 또 했다. 성철께서는 이런 걸 일러서 '꿈 깨'라고 하시겠지만.


그 동네 얘기를 한 김에, 40년이 넘은 옛날 얘기도 해야겠다. 그때 일하던 곳에서 젊은 승려 몇 분을 알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그 양반들을 남자, 여자로만 생각했지 비구, 비구니라는 호칭도 몰랐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 기독교인임을 밝혔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다, 좀 지나니까 친절을 가장한 악의적 호기심이 누를 수가 없어서 물었다. 예쁜 여자 옷을 보면 입고 싶지 않느냐고, 지금도 그가 했던 대답을 통째로 기억한다.


그런 옷이 예쁠 수도 있겠지만 내 옷이 아니니까, 눈에 들어오지를 않습니더. 그런데 승복을 보면 철(계절)도 그렇지만 아, 이 가다(디자인)는 내한테 맞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더.

 

내 또래의 비구니였고, 당시 내 수준이 그랬음에도 그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잠깐은 부끄러워서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죄송하다는 말이 나왔는데 정작 본인은 그런 얘기 많이 듣는다는 표정이었다. 실수 덕분에 크게 하나 배웠다. 이후 소식도 모르고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종종 생각난다.


성철 덕분에 생각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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