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것은 지각된 것이다
18세기 영국 경험론 철학자 조지 버클리가 얘기하기를,
"Esse is percipi"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
즉, 보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획은,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갈구하고 갈망해서 얻어내는 것이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자신만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나타내려고 하는 것일 거다.
나타내려는 방법과 도구는 지천에 널려있고
자신에게 맞는 방향으로 그려내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머릿속에 있는 것을 꺼내질 못한다는 거다.
그것도 정확하게 말이다. (정확하다는 의미에는 논리적이라는 뜻도 포함된다.)
사람에게는 오감이 있다. 이는 5가지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뇌로 전달된다.
시각은 눈을 통해, 청각은 귀를, 후각은 코로, 미각은 혀로 그리고 촉각은 피부에 전달된 정보를 뇌로 보낸다.
그러면 뇌는 전달된 정보를 분석해서 어떤 기관에서 온 정보인지 알아채고 이에 맞는 대응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각은 어디서 전달되는 정보일까?
지각은,
외부자극을 인지하고 처리해서 의미 있는 정보를 저장하고 기억해서 또 다른 활용처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재료가 된다.,
그 활용처의 토대가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앞서 조지 버클리가 얘기한
"존재하는 것 = 지각되는 것"
이를 달리 얘기하면,
"지각되는 것 = 존재하는 것"
라고 뜻하는 거라 이해할 수도 있지 않는가.
되지도 않는 철학적인 얘기로 무슨 개소리인가 싶겠지만,
필자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것을 글이든, 그림이든 어떤 방법으로 보이게끔 한다면 지각된 것이고,
이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의미라고 얘기하고 싶다.
머릿속에 맴도는 것은 그저 머릿속에 있을 뿐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남들에게 내 생각을, 내 마음을 알리고 싶다면, 뭐라도 해야 한다.
그것이 글이든, 그림이든 뭐든 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