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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을 지키며 소멸에 맞서는 마을 이야기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김탁환, 해냄, 2020>

by 한산

유년시절 그리고 중년시절을 사는 이곳은 2040년 이후 청소년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통계를 수치로 보여준다. 통계가 정확하지 않기를 바라고 출생률이 반등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여전히 전국적으로 초등학교 신입생이 단 한 명도 없는 곳이 등장하고 입학식을 못한 학교와 휴교를 한 학교들이 뉴스 영상에 등장한다. 그래서일까 거리에 현수막 문구 중 신입생 모집 광고글이 종종 등장한다. 유, 초, 중, 고, 대학까지 모두 치열한 홍보를 하고 있다. 온오프라인에서 홍보하고, 아파트 우편함에도 특색 있는 교육과정까지 포함 더 나아가 지원금까지 포함한 전단지 광고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원인은 ‘지방소멸’이라는 낱말이 널리 퍼지고 있다. 수도 서울과 부근의 경기도 수도권은 영향력이 갈수록 넓어지고, 행정수도를 세종으로 옮기고, 주요 공기업들을 지방으로 퍼뜨려놓아도 분산효과는 미비하다.


이런 지역소멸이 한창인 이때 작가 김탁환은 작은 전라남도 곡성 지역의 마을이야기와 그곳에서 대농이 아닌 소농의 벼농사를 지키는 농부과학자 이동현 박사를 만나 나눈 이야기로 이 한 편의 책을 냈다. 우리에게 <불멸의 이순신>으로 유명한 역사소설가는 왜 현재 살아있는 인물에게 관심을 보이며 마을 이야기를 썼을까?


작가는 책의 흐름을 일 년 벼농사의 흐름으로 썼다. ‘발아’부터 시작해 모내기, 김매기, 추수, 파종의 순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이야기는 작가가 이동현 박사를 미실란이라는 발아현미를 가공하는 법인회사 밥 카페 반하다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실란을 21세기 실학이 자라는 마을로 표현했다. 미실란(美實蘭)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희망의 열매를 꽃피우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실’에 작가는 조선후기 실학파들의 가치와 맞닿아있다는 상상으로 곡성미실란을 실학이 자라는 곳이라 표현했다.


이야기 곳곳에 곡성의 자연환경인 섬진강 침실습지, 퐁퐁다리, 심청전의 설화인 원홍장 이야기, 벼농사 관련된 오가리 이야기, 정해박해 진원지인 승법리 마을이야기 등 다양한 마을이야기가 등장한다. 그와 함께 이동현 박사의 삶의 이야기도 소설의 다양한 기법과 어울려 소개한다. ‘아름답지요?’라고 곡성 곳곳에서 질문하는 농부과학자의 감탄사 같은 질문과 함께 읽는 이들에게 옛 마을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고 이러한 마을이 사라지면 안 되겠구나. 아름다운 것은 지키는 것이다라는 마음을 갖게 한다.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 지자체와 교육기관에서는 다양한 행정적인 지원을 내걸고, 대도시가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해 알 듯 과밀보다는 적당한 거리 두기가 가능한 농촌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를 통해 서울이나 중소도시에서 사람들이 귀농, 귀촌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경제적인 지원과 거리두기 가능지역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이 책 이야기처럼 소멸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농촌에서의 삶이 가치 있다는 전달의 역할도 지역소멸에 맞서는 중요한 일이겠다. 이 일을 작가 김탁환 작가와 농부과학자 이동현 박사가 시작한 것이다. 역사소설과 달리 현재를 살아가는 한 인물의 생생한 삶과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마을을 소개한다. 이 책 출판을 계기로 곡성군 권장도서가 되었다. 곡성향우회에서도 작기 고향이 직접적으로 소개된 책을 통해 마을의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이게 마케팅이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소멸에 맞서는 마을이야기를 통해 농촌마을지역 선순환과 벼농사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길 의도한 작가의 큰 뜻이라 생각해 본다. 다르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통해 알려준다.


“곡성을 오가며 적정(適正)이란 단어에 점점 끌렸다. 최첨단 기술을 몰라서, 간디가 물레를 돌리고 에른스트 슈마허가 중간기술을 강조한 것이 아니다. 최첨단 기술이 지닌 보편성은 각 지역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중간 수준, 그러니까 사정에 맞는 적정 수준의 기술이면 해결 가능한 일을 두고 막대한 돈을 들여 최첨단 기술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낭비인 것이다. 그 비용은 고스란히 지역민들이 떠안게 된다. 제아무리 최첨단 기술이라 해도, 지방과 농촌과 공동체를 죽이는 기술인 셈이다. 적정기술을 착하고 따듯하며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지방, 그 마을 사람들의 생존을 풀기 위한 최적의 기술을 찾는 것이다. 고액의 돈이 드는 난해한 기술이 아니라 싸고 친환경적이며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도 손쉽게 만들고 다룰 수 있는 기술이어야 한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에서 적정이란 단어를 다시 만났다. 적정기술에는 ‘누군가의 고통에 눈길을 포개는 이들의 섬세한 뜨거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지방, 그 마을에 사는 그 사람의 고통을 구체적으로 알고 공감해야 그에 알맞은 기술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지켜야 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기술의 편리함이 아니라 그 사람만이 지닌 아름다움인 것이다. ”(p.296)


이처럼 기술이 아닌 사람의 아름다움 즉 아름답다는 우리말의 어원이 '나다움'을 말하듯이. 소멸된다고 하는 지역들이 자신만의 특색을 간직하며 지속될 거라는 희망을 준 책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복식학급(2개 인접 학년이 함께 공부하는 학급)이 되는 위기와 아예 마을의 문화중심지 역할을 하는 학교가 사라지는 걸 막아야 하는 농산어촌 지역 행정과 교육 관련 관계자들에게도 방안을 알려 줄 수 있는 책이다. 이 세상이 인간중심이 아닌 모든 생물 중심(?)이 라면 어쩌면 인구소멸지역은 종의 다양성이 확보된 지역일 수 있다. 코로나 시절 많은 인간들이 활동을 멈추자 그 자리를 다른 종의 동물들이 찾아내려 오는 풍경을 보았다. 왜 인구가 감소하는지 원인을 알면 대책을 세우기는 쉬울 것이다. 그 답이 일자리와 문화적 혜택, 교육적 환경, 복지시설이라는 걸 알지만 인구소멸에 대한 대책을 다른 나라 성공 사례나 연구와 통계만을 통한 정답이 아닌 느리더라도 그곳에 사는 공동체들이 자발적인 협력으로 해답을 찾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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