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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산 Jul 30. 2024

멜론 이야기

농부 손등 핏줄 같은 멜론 껍질


멜론은 유년 시절의 사 할이다. 그 이전에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시작한 딸기가 있다. 그게 4할을 차지하겠지. 중학생부터였을까. 그때부터 시작한 농작물이다. 난 인구가 삼만도 되지 않는 작은 농촌에서 자랐다. 성인이 되고 직장을 다시 얻으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대학을 전주로, 첫 직장과 취업 준비를 서울에서, 다시 대학 편입으로 전주에서, 첫 직장을 구례 찍고 이렇게 다시 고향으로 왔다. 40대에 돌아왔을 때 고향의 모습은 크게 바뀐 것은 없다. 논과 밭이 있는 평지를 조금 거리를 두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골짝나라라는 별칭도 있었다. 내가 자랐던 곳은 길게 착한 마을이 되라는 바람이었을까. 긴 섬진강의 지역명인 순자강 자락을 길게 이어받아서 착함이 길어지라는 '장선마을'이다. 들녘에서 조금만 나가면 섬진강이 흐르고 있다. 그래서 논농사를 짓기에 안성맞춤이다. 논에 물을 대는 것은 걱정이 없다. 강물이 말라버릴 정도의 큰 가뭄만 아니면. 겨울 여름 별 차이 없이 저녁 여덟 시 정도만 되면 불빛이 잦아들어 사방이 어둡다. 보이는 거라곤 도로 가로등만이 있다. 가게도 모두 일찍 문을 닫는다. 그래서 숙면을 취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이 가만두지 않지만.  화려한 네온사인이나 요란한 자동차 경적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비행장도 없고 엄호한 중요한 인물이나 건물도 없지만 높은 건물이 없다. 그래서 시야가 막혀 답답함을 느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읍에 있는 최고층 아파트가 14층이다. 최근에 20층 아파트가 생기지만. 그것도 많은 게 아니라 3곳 정도만 된다. 아무튼 이런 조용한 동네에서 딸기, 멜론 등 다양한 이런 농산물이 주요 수입원이자 경제활동의 동력이다. 그래서 읍내 산 조금 높은 곳에서 보면 비닐하우스가 또 하나의 강처럼 흘러가는 듯 많이 보인다.  


   여느 시골처럼 부모님은 벼농사만으론 수입이 되지 않아 80년대 후반부터 비닐하우스를 이용해 수입이 조금 더 되는 특용작물을 키워야 했다. 자식들 대학교 보내고, 좀 더 나은 생활을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예전 소를 키운 돈으로 대학을 보내 우골탑이라면 이젠 딸기탑, 멜론탑이다. 어렸을 적에 주말이면 형, 누나가 함께 농사일을 많이 도울 수밖에 없었다. 두 분이 하시기에는 벅찬 일이다.  인지 딸기도 지겹고, 멜론이 지겨울 때가 있다. <박하사탕>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이야기하듯 공장에서 박하사탕을 하루종일 몇천 개씩 만들고 본다면 그럴 거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 두기가 있어야 그리워지나 보다.  하지만 그 여주인공은 박하사탕을 선물했고 설경구가 찾아갈 때도 박하사탕을 예쁜 유리병에 들고 찾아간다. 객관적 상관물인 박하사탕처럼 나에게 고향을 생각하는 매개체, 객관적 상관물은 멜론이다.

  

  해 질 녘에 남들 퇴근하고 집으로 밥 먹으러 갈 시간 난 비닐하우스를 갔다. 멜론을 수확하는 날이다. 오전에 그 외국인 노동자들로 짜인 멜론 수확팀이 비닐하우스 한 동을 해치우고 갔다. 예전에는 부모님과 동네어르신들이 함께 해서 멜론을 따고 상자에 담아 출하를 했는데 요즘은 작물을 키우기만 하고 당도가 일정정도 올라가면 멜론주식회사에서 날짜를 맞추어 작업팀을 보내준다. 그럼 그 수확물을 집하장에 모아서 선별해서 판매를 한다. 요즘은 대만 쪽으로도 수출을 한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는 아직 초록끼가 만연한 멜론 줄기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불량품이라고 해야 할까. 크기가 작고 모양이 이상한 멜론은 비품이라서 그대로 밭에 남아있는 게 있었다. 너트가 채 나가지도 않는 채로. 그물처럼 생긴 그 너트가 촘촘하게 나야 당도가 좋다고 한다. 작업환경은 시원했다. 장마전선이 오르락내리락하느라 구름이 많았고, 비닐하우스는 한낮의 열기를 막기 위해 까만 차광막이 써져 있었다.  내가 할 일은 그것을 해체하는 것이다. 멜론줄기를 잡아주는 일 미터 정도 되는 나일론 줄을 풀어주고, 끝부분 줄기를 잡고 있는 빨래집게처럼 생긴 고정 집게를 제거해 주는 거다. 폭이 오십 센티미터 정도 되는 고랑이 백이십 미터 정도 이어져있다. 그게 여덟 고랑이다. 이것은 단순노동이자 어찌 보면 수행이다. 멜론의 줄기와 잎사귀는 잔가시가 많다. 그래서 아차해 그들과 접촉하면 손등이나 팔이 쓸릴 수 있다. 그래서 팔토시는 필수다. 아니면 긴팔옷을 입어야 한다. 키보드 치는 내 손등을 보니 약간 벌겋게 된 부분이 있다. 한 시간의 한 고랑정도 세 고랑을 하고 어두워지자 집으로 철수했다. 저문 섬진강을 보면서. 삽이 없어 삽을 씻지는 못했다.


  유발하라리가 쓴 <사피엔스>에 농업혁명을 부정적으로 보는 대목이 나온다. 일 중독을 불러오고, 탄수화물 중독 등의 이유를 들어서.  일만 하게 되었다는 것. 누구는 일만 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이용해 부를 얻는 부조리를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일들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부모님들도 연세도 있으시니 일을 그만하시라고 자식들이 만류한다. 이제 자식들 다 결혼시키고 직장 생활하는데 돈이 그렇게 필요하냐고. 그래도 마찬가지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일 안 하면 뭐 할 건데. 그냥 소일거리로 하신다고 하시는데. 그게 자존감이라 생각한다. 가만히 돈만 쓰고 여가를 즐기는 삶을 거부하신다. 죄를 짓는 것처럼 여기시고, 쓸모가 있는 존재라는 걸 증명해 보이시려고 한다. 팔십 대와 칠십 대 노인의 힘으로 오천이상의 연봉이랄까 수입을 얻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운 여름은 더위를 피해 새벽으로 저녁으로 다니시며 젊은 사람들 못지않는 일들을 하고 계시니 말이다. 평생을 농사일로 단련되신 몸인지라 그냥 쉽게 일을 놓기가 힘드신가 보다. 일을 도와주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일당으로 멜론 두 개 받아왔다. 멜론 겉을 감싸는 너트가 오늘따라 더 굵고 징그러워 보이기도 하고 몸을 쓰며 정당한 수입을 얻는 농부의 손등 굵은 핏줄 같았다. 유난히 더운 올해 여름 항상 그랬던 것 같지만 그래야 여름이라고. 멜론 껍질이 두껍고 그 속 과즙이 단 이유는 무더운 여름내 정성으로 가꾼 농부의 다디단 땀과 마음이 담겨서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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