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린드그렌선생님/유은실/창비/2006
"차라리 상상하지 말까? 상상하고 돌아오면 현실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진다." 이 동화 속 주인공 이비읍의 상상 속 혼잣말이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상상하면 슬퍼지니 차라리 상상하지 않겠다는 주인공의 어리지만 어른스러운 대견한 마음이 전해진다. 그냥 말괄량이 삐삐로만 알고 있던 그 양갈래 머리에 금은보화가 많고 등치 큰 어른도 번쩍번쩍 올렸던 주인공 이름이 그렇게 긴 줄 몰랐다. 그 이름을 다 외워야 진심 작가 팬인지 여부를 알려고 했다는 재치 있는 은실작가가 독보였다. "삐삐로타 델리카테사 윈도셰이드 맥크렐민트에프레임즈 도우터 롱스타킹" 무려 서른한 글자다. 예전 우리나라 코미디 "서수한무 동방갑자....."식이다. 누가 더 긴지는 찾아봐야 알겠지만. 이렇듯 슬픔을 덤덤하게 전하고 그 속에서 힘을 찾는 전에 읽었던 [순례주택]처럼 슬프지만 웃기진 않지만 희망이 느껴지는 힘찬 동화다.
주인공 이비읍은 엄마가 종종 부르는 말괄량이 삐삐 영화 주제곡을 좋아해 자신도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선생님의 책을 사 모은다. 100세를 바라보는 작가의 나라 스웨덴을 가는 것, 그리고 작가의 작품을 스웨덴어에서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는 일을 장래희망으로 꿈꾼다. 아빠는 학교 가기 전 기역니은디귿미음까지 배웠는데 학교를 가서 비읍부터 배우면서 한글을 깨쳐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기억으로 딸 이름을 비읍으로 지었다고 한다. 작가 작품에는 이렇게 이름에 대한 사연이 자주 등장한다. 아빠는 하늘나라로 올라갔지만 그곳에서 작은 구멍으로 주인공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연결을 하고 있다. 혼자된 엄마와 알콩달콩, 말대꾸와 잔소리 대결을 하며 사춘기 과정을 보내는 과정, 자신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친구 지혜를 마음 아프지 않게 하려고 배려하는 말과 행동, 린드그렌 선생님 작품에 나오는 에밀처럼 개구쟁이 같은 지호, 그러게 언니로 통하는 마을 헌책방 린드그렌 작가의 또 다른 펜을 만나면서 성장하는 주인공의 성장과정을 그린 동화책이다.
나에게 이런 작가는 누구일까 생각해 보았다. 유년시절 전형적인 농촌집안이었던 우리 집은 동화책이 없었다. 아니 다른 책도 없었다. 대신 마을 이장인 친구를 두어 그 친구네 집에 가면 새농민이라는 잡지에서 짧은 단편 동화나 만화를 보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종종 다섯 살 차이가 나 중학교에서 배운 우리나라 역사 실감 나게 해주는 형의 스토리텔링이 전부였다. 가끔 가는 외갓집에 교육열이 높아 과학상식 백과 등 여러 책이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가난한 집에서 작가들이 나오는 경우가 책이 넉넉하지 않아서 반복해서 읽어서와 다시 읽을 수 없으니 순간 집중해서 읽게 된다는 슬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는 책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 후 고등학생이 되어 친구들과 내기하듯 나관중 삼국지를 읽으며 장편소설 읽기에 맛을 들였고 대학을 가서는 황석영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일일 일용직 근로현장 경험도 쌓았고, 해병대를 입대하기도 했다. 리얼리즘이라는 삶을 통한 실제 경험으로 느낀 점을 온몸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믿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몸으로 글쓰기를 그때부터 알게 된 것 같다. 나에게는 황석영 작가가 린드그렌 선생님이다. 지금 살아계시니 팬레터나 SNS 글을 써 봐야 할까. 얼마 전 텔레비전에 나와서 철도를 깔아주고, 많은 근대화 문물을 이식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햐 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사다리를 들고 온 도둑에 비유해 일제강점기 일본 식민지를 정당화하는 근대화론을 이 비유로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유은실 작가가 외우듯이 다 읽었다는데 난 아직 황석영 작가의 책을 읽지 않은 게 많다. [철도원 삼대] 그리고 [장길산]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지금 학교를 다니는 초등학생들에게는 린드그렌 같은 작가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을까. 게임 속 캐릭터와 유튜브 크리에이터, 아이돌 가수가 자리 잡고 있더라도 그 속에 인간에 대한 진정한 예의를 알려주는 이들이기를 바란다. 한 작가를 향한 내용을 동화로 쓴 다는 것은 인생 작가를 동화로 존경의 편지를 보낸 경우다. 이게 진정한 책 읽기 아닐까.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사랑하려면 온 인생을 바쳐 읽어라 그리고 동화를 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