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일무이한 확진 투표기
오늘은 나의 자가격리 마지막 날이자 대선 투표 날이었다. 앞으로 살면서 투표할 날은 많겠지만 이렇게 어수선한 시국에 격리당한 바이러스 감염자로서 투표하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일 테니 특별히 기록해둬야지.
동거인의 회사 상사가 확진된 날부터 내가 확진 판정받기까지 다녀온 곳이라곤 보건소와 병원뿐이었다. 그러니까 보건소와 병원 다녀온 걸 제외하면 12일째 집에만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도 최근 7일은 격리했으니 밖에 나오는 게 참 오랜만이었다. 격리하고 나니 봄이 왔더라. 방바닥이 아닌 거친 땅을 밟으니 멀미가 났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이 몰려 줄이 길어질 것 같아서 빠르게 움직였다. 확진자 투표 시간은 오후 6시부터 7시 반. 6시에 딱 맞춰 투표소에 도착했다. 외출을 허락받은 확진자들이 좀비처럼 몰려나와 으어어어 거리며 길게 줄 서있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현실에는 정상인처럼 보이는 사람들뿐이었고 내가 2등이었다.
투표소 직원들이 마치 보건소 직원처럼 방역복에 페이스 실드까지 겹겹이 입고 확진자들을 조심스레 맞이했다.
“혹시 그…거세요?”
하고.
‘그…거’라니… 마치 볼드모트가 된 기분이었다. 코로나에 걸린 게 자랑할 만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름도 부르면 안 될 정도로 추악한 것도 아니지 않나? 속으로만 흑흑 대며 “네 맞아요” 하고 문자를 보여드렸다. 비닐장갑을 양손에 단단히 착용하고 아프지 않은 척 늠름히 걸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휴대폰 pass 앱에 저장된 운전면허증을 보여드리고 투표권을 받았다. 도장을 쿡 찍고 투표함에 표를 넣었다. 사전투표날 확진자들의 표를 투표함이 아닌 다른 곳에다 받아서 논란이 되었었는데 오늘은 정상적으로 투표함에 넣을 수 있었다.
투표하는 데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금방 끝날 줄이야. 줄이 길지 않아서 다행이면서도 씁쓸했다. 투표할 만큼 기운이 나서 다행이면서도 이미 확진이란 사실에 조금 불행했다. 격리 해제 전 잠깐의 외출은 별 일 없이 싱겁게 끝났다. 앞으로 펼쳐질 5년도 지나고 보면 잠깐이겠지. 별 일 없이 후루룩 지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