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의 <활활발발>을 읽고
밝고 깨끗한 아파트(신도시라면 더더욱 부러워진다)에 살면서 사랑만 받고 자라 구김살이라곤 없는 매끈한 여자애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비싼 차를 끄는 부모님 밑에서 여유로운 삶밖에 살아보지 않아서 가난에 대해서는 소문조차 못 들어본. 잠깐 나가 살 집이 필요하면 전셋집을 얻어주고 차가 필요하면 일시불로 긁어주는. 나는 그런 애들이 부러웠다.
나름의 슬픔과 고난이 있었겠지만 그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이니 헤아릴 수 없다. 그들은 내가 갖지 못한, 그리고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앞으로도 영원히 갖지 못할 유복한 유년기를 보냈을 거다. 브랜드 없는 솜털 패딩과 한 번도 유행해본 적 없었기에 유행에 뒤떨어진다고 표현하지도 못할 구형 슬라이드 휴대폰이 부끄러웠고 그래서 스스로 돈을 벌게 됐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런데 어딘의 <활활발발>을 읽고 나서는 부러운 사람이 바뀌었다. <활활발발>은 저자인 어딘이 이끄는 '어딘글방'에 대한 책이다. 어쩌다 글방을 시작하게 됐는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거기서 어떤 글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가 쭉 담겨 있다.
이제는 청소년기에 어딘글방에 다닌 사람들이 부럽다. 대안학교를 간다고 고등학교 1학년에 자퇴를 선언했던 나는 왜 어딘을, 그리고 그가 이끄는 글쓰기 모임을 몰랐을까? 두 달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왜 맥없이 제도권에 순응해버리고 말았을까? 왜 어른들은 나에게 이런 모임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모든 것이 원망스럽다. 그때 내가 어딘을 알고, 글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꾸준히 글을 썼다면 우울증을 앓던 2년 따위는 인생에 껴주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인데도 잔뜩 후회스럽다. 어딘글방에 다녔던 멋쟁이 언니들(이슬아, 양다솔 등)이 활약하는 2022년. 왜 어딘글방을 몰랐을까 한탄하는 구리고 쓸쓸한 스물여섯의 나. 이럴 시간에 혼자라도 열심히 글을 쓰면 될 것을.
글을 좋아한다, 쓰고 싶다, 잘 쓰고 싶다고 평생 되뇌었으면서도 막상 꾸준히 쓰지는 못했다. 그런 나에 대한 타박과 비판은 이미 머릿속에서 매일 넘치도록 하고 있으니 굳이 글로 꺼내 쓰진 않겠다. 그건 나에게 너무 가혹한 짓이다.
다만 <활활발발>을 읽으며 모든 문장에 지혜와 솜씨가 묻어 있는 어딘과 글방러들의 멋진 글에 대한, 그런 글들을 탄생시키고 찐한 동료들을 엮어준 글방에 대한 찡한 부러움을 잊지 않고 싶다. 계속 계속 기억해서 따라잡고 싶다. 함께 글을 쓸 친구나 글을 봐줄 스승 없이 보낸 내 청소년기를 이제라도 채우려면 부지런히 쓰는 수밖에 없다.
어딘은 말했다. 글을 잘 쓰려면 일주일에 한 편씩, 한 번도 빠지지 말고 써야 한다고. 그게 끝이 아니라 거기서부터가 시작이라고. 잘 쓰고 싶다고 징징대면서 정작 시간을 내서 글 한 편 완성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겁을 먹고 도망가버리는 나를 잘 달래야지. 잘 쓰고 싶다면, 그래, 쓰면 될 일이다. 핑계 대지 말고 쓰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주일에 한 편은 쓰자. 쓴 글을 혼자 보며 구리다고 울거나 꽤 재밌다고 낄낄 웃지 말고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게 공개하자.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누가 볼 수 있는 공간에 올리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정성 들여 쓸 테니까. 혼자 다짐하고 끝내면 평생 그래 왔듯 흐지부지될 것 같아서 일단 올려 본다. 나중에 보면 부끄러운 글이 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