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단다
도서 편집자인 김먼지 작가님의 <책갈피의 기분>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창작에 재능이 없어서 절망했다고. 국문과 공부는 할만했는데 원래 하고 싶었던 문예창작과 수업을 듣다가 벽에 부딪혔다고. 아니 뭘 절망까지 해~ 그냥 받아들이면 되지~ 하고 꼰대 같은 마음이 물구나무서기 시작했다.
사람은 자기가 이겨낸 고통은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치부해버리지 않나. 나도 바로 똑같은 지점에서 걸려 넘어졌기 때문에 꼰대 마음이 된 거다.
대학생 때 어린이용 영상을 기획하는 서포터즈 활동을 했었다. 캐릭터 IP는 이미 있었고, 일반 상식을 버무려서 스크립트를 짜는 일이었다. 쓰는 게 재미있었다. 촬영 현장에 함께 할 땐 신났었다.
졸업 후에 그 회사에서 인턴을 하게 됐다. 똑같이 어린이용 영상 기획하는 일이었는데 전과 달리 지옥 같았다. 계약 전환을 앞두고 3개월째 되는 날 도망치듯 퇴사했다.
인턴 할 당시에는 정해진 캐릭터가 없었다. 내가 다 만들어야 했다. 세계관도, 등장인물의 배경이나 성격도, 에피소드들도. 다 어려웠다. 그려지지가 않았다.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투박한 캐릭터들을 억지로 세워두고 재미없는 에피소드들을 쥐어짰다. 뭘 해도 반응이 안 좋았다. 자존감은 지면을 뚫고 들어가 지하 4층에 주차되었다. 어둡고 먼지 가득한 곳이었다.
분명 창작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나에겐 재능이 없었다. 3개월이 지나기 전에 이미 깨달았다. 난 재능이 없구나. 이 일이 적성에 안 맞는구나. 그럼 난 뭘 해야 하지? 이렇게 부족해서 어떻게 돈을 벌어먹고살지? 우유 없이 밤고구마를 삼키듯 답답하고 갑갑한 3개월을 보내면서 괴롭게 받아들였다.
재능이 없다는 건, 재능이 없다는 거구나 (?)
그렇다. 내게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작해내는 재능이 없을 뿐이었다. 자전거도 탈 줄 알고 책도 빨리 읽을 수 있고 어느 정도 틀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변형된 것들을 더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는 못 할 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여러 능력 중 몇 가지는 갖고, 몇 가지는 못 가진 채 태어난 셈이다(물론 못 가진 게 훨씬 많다). 누구나 그렇듯. 어떻게 한 인간이 모든 능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건 너무 욕심이지.
재능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까 홀가분했다. 그래! 나 창작 못한다! 어쩔래! 다른 거 하면 되지. 엎어진 마음을 도로 주워 담는다. 내 마음은 액체가 아니어서 그럭저럭 그러모을 수 있었다. 다행인 일이다.
무재능 씨(=나)는 깔끔하게 창작에 대한 욕심을 접고 정해진 일이지만 적당히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직종에 발을 담갔다 뺐다 다시 다른 곳에 담갔다가 빼보기를 약 3년 반복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나는 창작뿐만 아니라 일 자체에 재능이 없구나.'
무재능 씨는 조금 많이 슬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