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내 눈엔 이쁨
만난 지 2년을 훌쩍 넘어가는 연인과 길을 걷다가 은반지 공방 앞에 멈춰 섰다. 우리는 종종 커플링을 맞추자는 이야기를 했었고 마침 눈앞에 반지 공방이 있었다. 잘 만들어진 완제품을 사는 것도 좋지만 직접 시간을 들여 직접 만들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살짝 두껍게 만들어 각을 내고 큐빅을 하나 박기로 계획하고 반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만들었다고 하기엔 공방 사장님의 손길을 더 많이 탔지만 어쨌든... 은 고리를 내 손가락 두께에 맞게 망치로 깡깡깡 두들겼다. 힘 조절 안 하고 거의 패다시피 때리다 보니(?) 숙변처럼 묵은 스트레스가 풀렸다. 깡깡깡. 깡깡깡. 깡깡깡. 뒤집어서 다시 깡깡깡. 깡깡깡. 깡깡깡.
열심히 두드리고 나니 이제 큐빅을 박을 차례다. 여기서부터는 어려운 공정이어서 그런지 사장님이 해주셨다. 반지에 작은 구멍을 내서 큐빅을 얹고, 구멍 옆 부분을 끌 같은 걸로 미세하게 밀어서 큐빅이 빠지지 않도록 덮어야 했다. 작업을 마친 사장님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반지를 (무슨 무슨 역할을 한다고 설명해주셨는데 너무 어려운 이름이라 기억이 안 나는) 기구에 넣었다.
우리의 반지는 용액과 함께 돌돌 돌아갔다. 돌돌돌. 세탁기처럼 첨벙 대며 돌았다.
"큐빅이 잘 고정돼서 저렇게 돌아가도 안 빠져요~"
"그렇구나, 반지 끼고 씻어도 되나요?"
"그럼요. 보통 시제품은 접착제를 써서 붙이는데 그렇게 하면 손 씻다가 큐빅 떨어지고 그래요. 근데 이것처럼 밀어서 덮으면 잘 안 빠져요."
기구에서 나온 반지는 반짝반짝 빛났다. 우와~ 를 남발하며 반지를 만져보고 있는데 큐빅이 쏙 빠졌다. 우리는 당황했다. 사장님도 당황했다. 다시 손봐주겠다며 사장님은 반지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이미 공방 마감 시간은 넘긴 늦은 저녁. 퇴근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라는 물음에 괜찮다며 작업에 몰두하는 사장님 앞에서 우리는 사모님이 깎아주신 토마토를 냠냠 먹었다.
한참 지나 사장님이 건넨 반지에는 절대 빈말로라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는 자국이 남았다. 큐빅이 빠지지 않게 하려고 많이... 애쓰신 흔적이었다. 너무 많이 애쓰셔서 이제는 더 이상 예쁘지 않아진 반지. 구멍이 송송 뚫린 반지. "아하하... 고정이... 됐네요..." 하고 억지로 웃었다. 인생 첫 커플링이자 직접 두들겨 만든 반지. 반지를 만들며 보낸 우리의 오후. 그런 것들을 생각하니 내 눈에는 그럭저럭 괜찮게 보였다.
큐빅이 빠지면 다시 오라고, 언제든지 as 해주겠다는 사장님 내외의 배웅을 받으며 집에 돌아가던 날부터 지금까지 매일매일 나는 반지를 낀다. 큐빅은 제 자리를 못 잡고 30도 정도 기울어졌고 큐빅 주위는 칼로 고문이라도 당한 듯 파여있는 내 반지.
사실 이 글은 반지를 바라보다가 하나뿐인 커플링을 조지고도 (사장님 눈 감아주세요) ... 분위기 망칠까 봐, 그리고 애써주신 사장님께 미안해서 한 마디 컴플레인도 못하고 웃으며 나온 속 터지는 내가 짜증 나서 쓰기 시작했다. 대체 분위기가 뭐라고. 오래 낄 반지인데 삐죽삐죽 못나게 만들어진 게 속상했다. 앞으로는 분위기고 뭐고 할 말은 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져보려고 썼다.
그런데 쓰다 보니 마음이 점점 바뀌었다. 그날 날씨가 참 좋아서 인생샷 많이 건졌지. 사장님 부부도 엄청 친절하셨고. 오랜 시간 들여서 보수해주셨지. 반지 만들면서 재밌었지. 삐뚤고 구멍 났지만 연인도 나도 매일 끼고 있지. 서로 오늘 반지 꼈는지 매일같이 확인하지. 당연히 꼈다는 걸 알면서. 그냥 은으로 된 고리일 뿐인데 안 끼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이제는 그거면 된 거 아닌가 싶다. 키보드 위에 있는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본다. 아까는 흠집이 거슬렸는데 이제는 그 흠집마저 다 귀엽다. 나를 타박하려고 시작했다가 그럭저럭 괜찮은 마음으로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