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하게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할 말은 아닌데, 나는 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게 너무 부끄럽다. 막 쪽팔린 비밀을 들키는 것 같고 날 흉볼 것 같고 뒤에서 돌려보며 비웃을 것 같다. 글을 가지고 괴롭힘을 당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아닌데도 이런다.
특히나 내 일상을 공개적인 곳에 올리는 것도 꺼려져서 몇 번이나 블로그를 만들었다가 닫고 인스타도 사진 두어 개 올렸다가 다 내리고, 몇 년 후에 또 올렸다가 내리는 걸 반복해왔다. 꺼림칙하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내 일상을 알게 된다는 게.
그럼에도 브런치는 꽤 오랫동안 접지 않고 써오고 있다. 물론 아주 오래 글을 안 쓴 적은 많아도 아예 접은 적은 없다. 거의 2년째 초기화 안 하고 가끔 글을 쓰는데 이 기간은 내 SNS 역사의 신기록일 것이다. 일주일 만에 올렸던 걸 다 삭제하고 관둔 적도 많으니까.
그렇다고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게 아무렇지 않은 건 절대 아니다. 굉장히 아무렇다. 날 아는 누군가에게 내 글들을 들킬까 봐 늘 좀 불안하다. 제일 친한 친구들 말고는 이 계정의 존재를 아무도 모른다. 영영 그랬으면 좋겠다.
실제 있었던 일들을 마구마구 풀고 싶어도 그랬다간 주위 아는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참는다. 왜, 글이라는 건 좀 징그러운 면이 있어서 현실을 그대로 옮겨오지 못하지 않나. 글에는 글쓴이의 주관이 담기고 글쓴이는 그걸로 평가를 당하게 된다.
만약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쓴다면 나는 내 입장에서 글을 쓸 것이고 현실에서는 직접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글에 담을 것이다. 그러면 같이 그 일을 겪은 현실의 회사 사람은 현실에서 느끼지 못했던 내 속마음까지 알게 되고, 그가 과연 그것을 달가워할까 생각하면...? 그렇지 않지.
아니 근데 생각해보니까, 난 내 주변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글 쓰는 게 아닌데? 꼭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만 하나? 글을 한 글자도 안 쓰더라도, 이미 현실의 누군가는 이런저런 이유로 나를 미워하고 있다. 이유 없이 미워할 수도 있고.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버렸는데 그래도 아직 할 말이 남았으니 멈추지 말아야지.
글을 공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서 이 두려움에 대한 글까지 쓰게 된 건 좀 더 쓰고 싶어서다. 요즘 내가 지키는 나와의 약속은 매일 25분씩 글쓰기다. 계속 뭔가를 써야 하는데, 자의식 과잉인 나는 내 얘기 쓰는 게 제일 재밌고 솔직히 아직 내 얘기밖에는 못 쓰겠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담을 깜냥이 안 된다.
그러자니 나를 더 드러내야 한다. 실제 있었던 일에서 좋았거나 싫었거나 깨달았거나 후회했거나 뭐 그런 걸 쓰고 싶은데 그렇게 하나둘씩 공개하면 지나가던 사람이 읽다가 '어? 이거 ㅇㅇㅇ 얘긴데?' 하고 알게 되고, 내 다른 글들도 보게 되고, 그럼 나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게 되고, 내가 그에게 들키기 싫은 이야기까지 다 읽어버리고...
쓰다 보니 내가 진짜 자의식 과잉은 맞는 것 같다. 애초에 요즘은 읽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 내 주변에도 한 달에 책 한 권 읽는 사람이 없고 브런치라면 먹는 브런치밖에 모르는 이들뿐이니 이런 브런치 변방에서 조용히 몇 사람 안 읽는 글을 쓰는 나를 콕 집어 발견하기가 쉽지 않겠지.
아아, 그런데도 나는 두려워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니까 아무래도 얘깃거리 중에는 회사 얘기가 제일 많고, 직업에 대해 글을 쓰는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서 나도 언젠가는 일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게 참 두렵다. 회사에서 욕먹을 만큼 일 안 하거나 못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다.
괜히 회사에 대한 얘기를 썼다가 문제가 생기는 것도 두렵다. 아니? 감히 회사 내부 얘길 공개하다니? 고소하겠어요! 이런 말을 듣는 상상을 자주 한다. 회사 기밀을 유출하거나 그럴 것도 아닌데.
과연 어디까지 드러내야 할 것인가. 아니 어디까지 드러내는 걸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트집 잡히거나 유별난 애로 찍히는 게 싫다. <미움받을 용기>를 감명 깊게 읽고 그 뒤로 아들러 심리학 책을 몇 권 더 읽으면서 '그래! 미움받으면 어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하는 마음도 들었었지만 책 몇 권이 타고난 성향을 바꾸긴 어려웠나 보다.
용기가 생기면 나를 더 드러낼 수 있을까. 그 용기라는 건 언제 생길까. 일단 지르고 나면 그다음에 수습하려고 발버둥 치면서 어떻게든 되는 것 같던데.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쉬울 텐데. 다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 못하는 건 참 답답한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쓰는 걸까. 보면 '와 이런 얘기까지 한다고?'싶을 정도로 과감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걱정도 된다. 저거 주변 사람들이 읽으면 누구인지 다 알 텐데. 그럼 그걸로 책잡히거나 아니면 티는 안 내더라도 속으로 안 좋게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그래도 쓰는 사람들이 멋있다. 상처도 후회도 쓴다. 나를 아는 누군가가 내 글을 보고 나를 평가하고 안 좋게 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써서 공개한다. 글쓰기란 가장 취약한 부위를 내보임으로써 가장 강해지는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용기를 기다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