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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머 Sep 06. 2023

면접후우울증에 대처하는 자세

면접 진짜 너무 싫어

 간단한 일이다. 가고 싶은 회사에 이력서를 넣는다. 이력서가 맘에 들면 면접을 본다. 면접을 합격하면 끝. 출근하면 된다. 불합격하면 불합격하는 대로 끝. 다니던 곳 그대로 다니면 된다.


 회사에 지원하는 과정 중에 좋아하는 부분도 분명 있다. 가고 싶었던 회사의 채용 공고를 확인하는 일. 그 조직에서 그 일을 하는 나를 상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회사 위치도 검색해 보고, 로드맵으로 건물 외관도 구경하고, 회사에서 자랑하는 복지들도 읽고 또 읽어본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도 나쁘지 않다. 말보다는 글이 편하니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을 골라 적당한 자기소개서를 만들어낸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일을 했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그러니 저를 뽑아주세요 제발).


 자기소개서를 쓰고 나면 그걸 기반으로 면접을 준비한다. 면접 팁을 알려주는 유튜브를 찾아 예상 질문을 간추리고 답변을 생각해 본다. 이 경험은 이 질문에 쓸까 저 질문에 쓸까, 어차피 비슷한 질문이니까 하나로 퉁치고 다른 일화들도 생각해 보자, 이 질문에는 답변할 내용이 없네? 흠 그냥 솔직하게 없다고 대답하자, 아니야 그래도 뭐라도 준비해야지… 하며.


 예상질문과 답변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연습에 돌입한다. 거울을 보고 답변하는 내 모습을 보기도 하고, 운전을 하면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해보기도 한다. 혼자 허공에 대고 나를 어필하는 것도 재미있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했을 때와는 다르게 생각지도 못했던 말들이 튀어나오면 ‘나 이런 생각도 갖고 있었구나’하고 뒤늦게 알게 되기도 한다.


 문제는 실전이다. 면접장에 들어가서 인사를 나누고, 진짜 질문을 받아 답변을 시작하는 순간. 괜히 날카로워 보이는 면접관들의 눈빛, 허점을 파고드는 질문,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갸웃하는 고개, 내가 하는 말들을 받아적느라 사정없이 내리치는 키보드 소리에 기가 죽는다. 그들도 밖에서는 한 명의 아줌마 아저씨일 뿐이고 팀원들이 가끔 욕하기도 하는 평범한 상사일 텐데. 면접장에서는 왜 이리도 전지전능해 보이는지. 


 면접을 아주 많이 경험해 본 건 아니지만 볼 때마다 괴로웠다. 정확히는 면접이 끝나고 면접장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하루종일 우울했다. 돌이켜보면 인생 첫 회사 면접이 끝나고 지하철역으로 터덜터덜 걸어갈 때도 한없이 가라앉았었다. 첫 면접이라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그다음 면접, 그리고 또 다음 면접 때도 정확히 같은 기분을 느꼈다. 


 왜 나는 면접을 볼 때마다 우울해질까. 면접장을 나오면 한숨부터 나올까. 누군가 내 멱살을 잡고 지하실에 패대기친 것도 아닌데 가라앉아 있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한 개의 상품이 된 것 같다…는 자괴감이 이렇게 심하게 드는 건 왜일까. 이유들을 좀 생각해 봤다.



1. 거짓말해서

 면접을 볼 때는 늘 조금씩이라도 거짓말을 하게 된다. 특히 가고 싶은 회사일수록. 이번에도 장래 커리어 계획이 어떻게 되냐는 말에 팀을 이끄는 역할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물론 진짜 왕대박 거짓말이다 나는 영영 실무자이고 싶다 팀장? 하라고 해도 싫고 역량도 안 됨). 그냥 가늘고 길게 일하고 싶고 별로 욕심도 없다는 걸 들키면 안 좋게 보일까 봐. 


 면접장에서 나오면서는 바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냥 일단은 실무 잘하고 싶다고만 얘기해도 됐을 텐데. 그렇다고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 텐데. 오히려 그런 걸 기대하는 면접관도 있을 수 있는데. 하지만 다들 위로 올라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원하는 분위기에 절여지다 보면 거기에서 벗어나는 게 참 어렵고, 특히 면접처럼 긴장되는 상황에서는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들이 나를 압도한다. 솔직한 내가 아닌 것들.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남의 생각들. 


 나는 정말이지 거짓말하는 게 싫다. 큰 거짓말은 아예 못하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고 난 뒤 다른 사람들보다 죄책감을 더 많이 느끼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되어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나만큼 괴로워하는 사람은 드물 거야. 


 그렇지만 면접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냥 생각 없이 한 일, 누가 하라고 해서 한 일, 안 하면 안 되는 일들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내가 적극적으로 주도해서 해낸 일들이라고 우겨야 한다. 실제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당연히 거짓말하지 않지만 어쨌든 실제 있었던 일들을 미화하는 건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면접 자리에서 거짓말을 안 하면 되지 않나? 안 할 수는 없나? 싶기도 하다. 정말 좋아하고 정말 잘하는 걸 이야기한다면 거짓말하지 않을 텐데. 오히려 신나서 막 떠들 텐데. 내가 이 일을 그렇게까지 좋아하고 잘하는 건 아닌가 봐. 어떻게든 내 강점과 경력을 부풀려야 평균에라도 도달할 것 같아서 자꾸만 꾸며내서 힘든가 보다. 


 면접장을 나와 머리가 식고 나면 그런 사소한 거짓말들에 환멸이 난다. 



2. 상품이 되는 기분이 들어서

 면접이라는 것은 나를 어필해서 면접관들이 나를 선택하게 만들어야 하는 건데 이게 꼭 나라는 상품을 판매하는 것 같아서 꺼림칙하다. 


 ???: 면접이란 어쨌든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거니까 그냥 대화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요?


 오, 절대, 노노. 그냥 대화를 나누는 거라면 이런 기분이 들진 않을 거다. 그 분위기가 있잖아요. 대화가 아니라 평가받는 자리라는.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이 실시간으로 평가당하고 계산당하는데 어떻게 대화인가. 


 게다가 그 평가 기준이 ‘이 사람이 과연 우리 조직에 적합한지’뿐이니까 괴롭다. 난 이 회사에 적합하게 들어맞도록 만들어진 사람은 아닌데. 물론 나랑 안 맞는 회사는 안 가는 게 더 좋겠지만 이 한 시간가량의 핑퐁은 결국 나를 재기 위해서이고… 나를 좋게 생각했든 나쁘게 생각했든 둘 다 별로다. 나를 그 기준에 욱여넣지 마~~~!(제 발로 면접 보러 간 사람)


 나의 모든 말들이 평가받는다고 생각하면 한 마디 한 마디가 신중해지고, 방금 경솔하게 내뱉은 한마디에 후회가 쿵쿵 울린다. 모든 말에 신경 쓰며 밀도 있는 한 시간을 보냈으니 진이 빠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긴장이 싹 풀리면서 현타가 오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 나는 상품이 되는 기분이 싫다. 안 팔리는 재고 상품을 가지고 나와서 사람들 앞에 흔들어대며 점점 지쳐가는데 그 상품이 나인 느낌. 실제로도 구직 과정에서 나는 상품이 맞다. 내 스펙과 기능, 이력을 홍보하면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들이 나를 고용하고 내게 돈을 지불한다. 상품 주제에 마음을 가져서 힘든 거야. 



 면접이 끝나면 늘 처량한 기분으로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갔다. 그런데 요번에는 그러기 싫었다. 대체 내가 언제까지 면접 때마다 우울해야 해. 면접이 정말 싫지만, 그래도 앞으로 살면서 몇 번의 면접을 더 봐야 할 텐데. 


 지치고 힘든 나를 달래주기로 했다. 그래! 너 면접 보느라 고생했다! 그럼 이제 재미난 걸 해보자. 


 바로 집에 가지 않고 근처 서점에 갔다. 읽고 싶어서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책들을 샀다. 좋아하는 것들을 손에 쥐니 마음이 넉넉해졌다.


 미용실에도 갔다. 며칠 전 급한 마음에 아무 미용실에 갔다가 망한 머리를 되살리려고. 알고 지내던 디자이너 선생님과 망한 머리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하고 면접일을 영업일 1일 전에 통보하는 회사에 대해서 떠들었다(갑자기 면접일이 잡혀서 난처했지만 그래도 저를 뽑아주세요). 점점 살아나는 머리를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다음 꽃을 사서 좋아하는 동네 책방에 갔다. 신간을 내신 책방 사장님께 책을 사고 사인을 받았다. 꽃과 함께 축하를 전했다. 뵙고 싶었던 얼굴. 축하는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쁘게 만드네. 


 그러고 나니 마음이 막 그렇게 가라앉지는 않았다. 나는 가라앉은 나를 들어 올릴 수 있다. 그런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 면접? 힘들지. 보고 나면 우울하지. 그런데 나는 그렇게 우울한 기분에 갇혀 있지 않을 거야. 나는 거기서 나오는 법을 알아. 상품으로써의 내가 아닌 그냥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나로 금방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생각한다. 다음 면접 때는 거짓말하지 말고 나를 그대로 보여주자. 보여줬는데 내가 싫대. 그럼 오히려 땡큐지. 나랑 안 맞는 조직을 거를 수 있는 거니까. 찾다 보면 나랑 꼬옥 맞는 곳이 분명 있을 거다. 거짓말하지 않고 꾸며내지 않고 나를 그대로 보여줬을 때 그런 나를 환영해 주는 곳. 언젠가 그런 곳에서 즐겁게 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참 좋다. 부지런히 찾아야 한다. 


 이번 면접은 분명 어렵고 괴로웠지만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다. 아니 솔직히 이 회사에 붙어서 다신 이직 같은 거 안 했으면 좋겠다. 면접 너무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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