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뭐 하지
오늘로 프로젝트 하나를 끝냈다. 근 2주간 눈 뜬 시간부터 눈 감는 시간까지 일했다. 어제도 그제도 새벽 한 시까지 일하고 잤다. 주말에도 노트북을 열었었다. 쉬는 시간도 따로 정해두지 않고 무식하게 일했다. 처음에는 50분 일하고 10분 쉬기를 실천해보려고 했지만 습관이 되지 않아서인지 잘 안 되더라.
마구 일하다가 답답해지면 일어나서 방문 열고 거실에 나가서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쓰다듬다가 귀찮아지면 다시 방으로 들어와 일을 했다. 방 밖으로 나가도 답답할 때는 잠깐 산책을 했다. 날이 추워서 오래 걷지도 못 했다. 답답한 마음 꾹꾹 눌러 삼키고 다시 일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간절하게 쉬고 싶어 졌다. 나를 쥐어짜고 소모해가며 일을 하니까 더 이상 일할 내가 남아있지 않는 느낌이었다. 내일의 에너지를 끌어와서 일하고, 내일이 되면 모레의 에너지를 끌어와서 일했으니. 눈은 계속 시려오고 어깨가 심하게 뭉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한 2주만, 아니 2주는 말도 안 되지. 딱 일주일만이라도. 그런데 일주일을 내리 쉬는 건 눈치 보이니 주말 껴서 4일만이라도 쉬고 싶었다. 평소에는 그래도 주말에 쉬었지만 이틀을 쉬어도 쉬었다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었다. 그래서 평일 이틀 쉬자고 마음을 먹고 팀장님에게 연차 쓰겠다고 통보를 했다.
그런데, 도대체,
쉬는 동안에 무슨 일을 해야 좋을까?
원래 의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였지만 정말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이미 심각한 인터넷 중독이기 때문에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아이패드를 손에서 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미뤄뒀던 개인적인 일 두어 개는 반나절이면 처리할 텐데, 남은 3일 하고도 반나절은 뭘로 채워야 할까? 책을 읽을까? 책 좋지. 그런데 하루 종일 책만 읽을 것 같진 않은데.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겠다.
회사 다니기 전에는 뭘 했더라?
친구들을 만났다. 이건 지금 시국에는 하기 어렵다.
혼자 코인 노래방에도 갔었다. 이것 또한 지금은 못 한다.
컴퓨터 게임을 할까? 이제는 게임이 재미없다. 안 그래도 켜봤는데 10초 만에 껐다. 게임할 생각만으로도 벌써 피곤해진다.
잘 쉬어야 다시 잘 일 할 수 있다는데 대체 잘 쉬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는 건 진짜 휴식이 아니다. 이미 많이 누워있어 봤기 때문에 잘 안다.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만 보는 것도 이제는 그만 하고 싶은데 그럼 대체 뭘 한담.
지금 이런 고민을 하지만 어차피 나는 별 것 안 하면서 시간을 흘려버릴 것이다. 쉴 생각에 기분 좋으면서도 정말로 의미 없이 지나간다면 씁쓸할 것 같다. 나는 왜 쉬는 일에도 성실하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