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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Aug 29. 2022

흑인과 어떻게 함께 살아?

인종과 거주의 사회학 - <부동산, 설계된 절망>

# 사는 곳이 인생을 결정한다


나는 거주지가 일생의 상당 부분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첫 번째는 어느 나라에 태어나느냐다. 빌 게이츠가 아프리카 출신이면, 나는 빌 게이츠를 몰랐을 거다. 전쟁과 폭력이 일상인 곳에서 자라난다면, 성취와 창업 대신 생존만을 추구하며 살아가기 쉽다.


나라가 결정되면, 어느 지역이냐가 두 번째다. 좋은 학교, 양질의 도서관, 풍부한 문화 공간, 안전한 거주 환경, 교육받은 이웃들이 많은 지역이면 좋다.


부자가 많은 동네에서 자라면 미래 소득이 높을 확률이 크다. 하버드대, 뉴욕대, 스탠퍼드대 등 유수 대학의 연구진이 최근 증명해낸 결과다.



사람은 거주지에서 교육받고, 교류하고, 꿈을 꾼다. 거주지는 나와 내 미래를 결정한다.


오늘 책은 거주 측면의 인종 차별을 다룬다. <부동산, 설계된 절망>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미국 흑인이 백인에 비해 '부정적인 거주지'에서 살아가는 구조적 이유를 다룬다.



저자는 말한다.


"미국 정부의 노골적인 흑백 차별로, 인종간 거주 격차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는 인종간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학술서 같은 책이다. 400페이지가 넘는다. 쉽지는 않다. 다만, 읽을수록 흥미롭다. 공공 주택과 민간 주택간 담장을 치는 우리 사회가 생각났다. 갑자기 술술 읽혔다.


책의 대략적인 내용을 정리하고, 감상평을 남긴다.




# <부동산, 설계된 절망>


* 박스 안은 인용구


이 책은 다양한 내용을 다룬다. 흑백 차별의 해결책, 흑인 저소득 이유 등이 있다. 나는 거주지 측면을 집중한다. 어떤 요인이 흑백간 주거 차별을 낳았는지 요약해본다.


크게 세 가지 이유다. (1) 법적인 구역 분리, (2) 금융적인 구역 분리, (3) 폭력적인 구역 분리.


먼저 법적인 구역 분리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위한 공영주택 단지를 별도로 건설하거나, 흑인과 백인이 서로 다른 건물에 거주하게 하거나, 또는 아예 그 주택 개발지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전면 배제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공황 극복을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을 추진했다. 뉴딜 정책 일환 중 하나가 공영주택 단지 건설이었다.


이 과정에서 행정부는 백인-흑인간 거주지를 구분하고 택지를 개발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놀랍다. 행정부 정책 추진 과정에서 국민을 인종으로 차별했다고?


그때는 그랬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이다. 1876년부터 1965년까지 시행된 짐 크로법은 모든 공공기관-장소에서 인종간 분리를 합법화했다. 인종간 분리가 상식이었던 시대다.


다만, 이 당시 유사한 수준의 공적 인프라를 제공했다면, 주거에 따른 흑백차별 요소는 조금 완화됐을 거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흑-백 주거지간 상이한 인프라를 제공했다.


흑인이 사는 동네들에는 산업 지구, 심지어 공해산업이 들어서도록 당국에서 허가했다.

도시계획위원회는 백인 동네에서는 금지된 여관, 주류점, 나이트클럽, 성매매업소를 아프리카계 미국인 동네에서는 개업할 수 있도록 했다


인종간 주거 차별은 거주지간 퀄리티 차별로 귀결됐다. 중산층 백인은 도심이 아닌 교외 주택 단지로 이주했다. 학교, 공원, 상점 등 안정적 생활 인프라를 구축했다.


흑인은 아니다. 흑인들은 도심으로 몰았다. 여기에 공장, 여관, 주류점, 나이트클럽, 성매매업소 개업을 허용했다.


같은 연령대의 백인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공부할 때, 흑인 아이들은 공장, 여관, 나이트클럽 등을 보고 자란다.


이 동네는 부동산 가격 상승 효과로 못 누린다. 그 누가 공장-나이트클럽으로 둘러싸인 곳의 주택을 매수하는가?


백인 주택 단지의 가격이 오를 때, 흑인 주택 단지 가격은 안 올랐다. 자산 측면에서 흑인-백인간 구조적 불평등이 초래되는 메커니즘이다.


금융 측면의 주거 분리 과정도 흥미롭다.


1950년대, FHA와 VA가 발행한 보증서는 미국 전역에서 발행된 모든 주택담보대출 보증서의 절반을 차지했다.

당시 FHA(연방주택관리국)와 VA(재향군인부)은 라데라 같은 백인 주거 구역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보증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사는 동네의 백인들에게도 주택담보대출 보증을 서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스트팰로앨토가 흑인과 백인이 어울려 사는 동네로 바뀌자마자, 그 지역으로 이주하기를 원하는 백인들은 정부가 보증하는 주택담보대출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었다.


이것도 충격적이다. 정부와 은행은 인종을 토대로 대출 여부를 결정했다.


예나 지금이나 부동산 구매 시, 은행 대출 없이 사는 경우는 드물다. 굉장한 부자가 아니고서야, 은행 대출이 필요하다. 은행과의 대출 계약이 없으면, 집 사기 힘들다.


그런데 정부와 은행은 흑인에게 백인 중심 주거구역에 대출을 안 해줬다. 이러면 흑인 중 해당 구역에 거주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진다. '현금빵'으로 집사는 사람 찾기 쉽지 않다.


20세기 중반이 되자, 미국 대법원은 거주 측면에서의 인종간 명시적 차별을 금지했다. 하지만 금융 측면의 정책으로, 백인 거주지역으로 이주하는 흑인은 드물었다.


대법원까지 차별하지 말랬는데, 미국 정부와 금융 기관은 어떤 논리로 흑인들에 대한 대출을 피했을까? 돈 때문이다.


은행과 FHA가 단독주택 지구 인근에 셋집이나 상업 개발 지구, 산업 지구가 있으면 그 지역의 부동산 가치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은행 입장은 이렇다. 흑인 거주는 해당 지역 부동산 가치를 하락시킨다. 우리 은행은 해당 지역 부동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 흑인에게는 해당 지역의 부동산 대출을 해 주면 안 된다. 자산 가격 유지-상승을 통한 경제적 효율화가 흑인과 백인간 차별을 합리화하는 이유였다.


공공 주택-민간 주택간 담장을 친다는 기사도 떠올랐다. 담장을 치는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내가 정당하게 획득한 아파트 가격이 폭락한다. 나 뭐라도 해야하지 않겠어?


'자산 가치'는 차별적 행동을 합리화해주는 강력한 단어다.


이 모든걸 극복하고 백인 주거구역에 이주한 흑인이 있다고 치자. 끝이 아니다. 버티고, 살아남아야 한다.


폭력적인 구역 분리다.


LA 지역에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기존에 살던 흑인 지역을 조금이라도 벗어난 동네에서 살 집을 찾을 경우, 십자가를 불태우고, 다이너마이트를 투척하고, 창문에 돌을 던지고, 낙서와 같은 기물 파괴 행위를 남발하고, 수없이 전화를 걸어 위협하는 행위가 어김없이 그들을 맞았다.

1945년, 백인 동네로 이사 온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정에 폭발물이 투척돼 가족 전원이 몰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950년과 1965년 사이에 LA에서 일어난 폭탄 투척과 기물 파괴 사건은 100건이 넘었는데, 그 가운데 범인이 체포되고 기소된 사건은 딱 한 건밖에 없었다.


할 말이 없다. 흑인이 왔다고, 다이너마이트 던져? 뭐 이런..


그런데 이런 행위가 꾸준했다. LA에서만 1950-1965년 사이에 거주지와 연계한 흑인 테러가 100건 이상 발생했다. 그러나 국가 권력은 한 건만 기소했다.


국가가 시그널을 확실히 보냈다. 흑인이 왜 굳이 백인 구역으로 들어와? 우리가 이것까지 보호해 줘야돼?


이 상황에서 어떤 흑인이 굳이 백인 주거 구역으로 가겠는가? 본인 돈 몇억 써가면서 차별받고, 눈총받고, 테러당하고. 이렇게 흑인과 백인은 분리됐다.


(경향적으로) 흑인은 백인 대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에서 열위인 거주지게 살게 됐다. 이들간 부동산 측면에서의 격차가 발생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그들의 자손은 상이한 환경에서 자랐다. 백인은 흑인 대비 더 나은 교육과 문화적 환경에서 자랐다. 노동 시장에서 이들은 더 높은 임금을 받는다. 더 높은 임금을 받기에, 더 좋은 동네에 살 수 있다. 이렇게 부와 계층은 대물림 된다.


흑인과 백인은 분리됐다. 그래서 사회경제적 격차가 발생했고, 누적됐고, 심화됐다.




# 사는 곳이 계층을 결정하기 시작했다?


한국 자본주의도 반백년 이상 됐다. '대를 잇는 부자 계층'이 나타난다. 이와 동시에 '대를 잇는 가난한 계층'도 공고화된다.


개천에서 용나는거, 그게 무슨 소리냐? 사회가 태동기-성장기를 거치고 안정기에 들어서면, 계층 이동은 과거 대비 어려워진다. 계층간 거주지의 차이도 공고화된다.


수도권과 지방은 경제적, 문화적, 교육적, 의료적 격차가 상당하다. 수도권 내에서도 서울-일부 신도시와 그 외 지역간 차이가 크다.


중심 지역에는 좋은 학교가 있다. 공연장, 예술관, 박물관 등 문화시설도 풍부하다. 공공 공원도 깔끔하고, 아플 때는 병원도 골라서 갈 수 있다. 버스-지하철이 가까워서, 어디든 편히 이동한다. 주거 환경도 안전하다. 유복한 환경의 이웃들이 많다.


해당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계속 상승한다. 자산도 불어난다. 그리고 그들의 자손들은 교육적, 사회적 측면에서 더 많은 기회를 누린다. 그래서 (경향적으로) 더 높은 소득을 창출한다.


지방은 좀 다르다. 나는 수도권 출신이고, 몇년 전부터 세종에서 이주 노동 중이다. 확실히 뭔가 다르다고 느낀다.


여기는 유명한 학교가 없다. 문화시설도 없다. 백화점도 없다. 얼마 전 아파서 병원을 찾아봤는데, 병원도 별로 없다. 학원도 별로 없다. 몇년 선배들은 아이들 교육이 걱정이라고 말한다. 본인들은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본인 아이들은 그게 어렵다. 교육 말고 물려줄게 없는데, 이게 안 될까봐 걱정이다.


세종은 지방에서 그나마 괜찮은 편이라고 한다. 다른 지역은 어떨까?




# 주거 측면의 계층간 통합?


우리나라에서 거주 측면에서의 계층간 통합이 가능할까?


이 책의 저자는 흑백의 구조적 차별 요인을 잘 설명했다. 그런데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통합이 중요하다는 원론적 이야기 뿐이다. 지방 사람들, 저소득 계층에게 서울과 수도권에 상경할 수 있는 기회만 더 부여하면 되는걸까? 택지개발-재건축 시 쿼터 부여 등 계층간 믹스 의무화만 하면 될까?


그것도 중요한데, 나는 살만한 지방을 만드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방에도 좋은 학교, 좋은 공원, 좋은 병원, 좋은 문화시설, 좋은 기업이 많이 있어야 한다. 모든 지방에 동일한 금액 나눠주는 것 보다, 지방의 거점 도시를 선택해서, 그곳을 수도권에 비견할 수 있는 곳으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안 갈거 아닌가?


어디서 태어나든, 최대한 같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게 경제든, 교육이든, 문화든 무관하게. 사람 한명 한명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 100년 이내에 우리나라 인구는 반으로 줄어든다. 사람 한명 한명이 아쉽다.


사는 지역, 태어나는 지역이 신분으로 작용하는 나라가 되면 안 된다. 나라가 심각하게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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