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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Feb 02. 2023

프롤로그-책 출간에 즈음하여

프롤로그 – 엄마 아빠를 만나러 가는 날의 시작


아빠의 감나무 타령은 두 달 정도 간 것 같다. 출처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엄청 솔깃하다 못해 확실히 이거다 싶으셨나 보다. 감나무는 해 먹기가 굉장히 편한 나무라는 서론에 이어 밭에서 만날 적마다 이야기에 살이 불어났다.


“감 실컷 먹고 좋잖아. 심어만 놓으면 힘 하나 안 들고 신경 쓸 게 하나 없는 게 감나무여.”

이어지는 구체적인 부연 설명은 꽤나 진심이셨다. 나무끼리는 간격이 6미터라는 둥, 300평이면 대략 30그루라는 둥, 감나무를 대량으로 싸게 살 수 있는 농장을 군산에서 알아보라는 둥. 

“다 못 따 먹으면 팔면 되능겨.”

“아빠. 아이고… 그 많은 걸 심고 따고… 또 팔고…? 글쎄, 나중에 엄마 아빠 없으면 나 농사 안 한다니까. 나 힘들어~ 아빠. 그때 가서 내가 알아서 할게. 아빠 하고 싶은 거 실컷 하셔. 아빠 소원 바다낚시 있잖아. 그거요, 지금이라도 이 땅 팔고 통통배를 사던가, 아니면 그냥 엄마랑 여행 다니면서 다 써부러. 내 걱정 말고요.”


아빠는 당신의 남은 시간이 허락할 때 반드시 해야 할 게 있다. 혼자 사는 늙은 딸에게 이 땅을 지렛대 삼아 먹고 살 걱정 없게 해주어야 한다는 소명 같은 것이다. 뭐가 돈이 될까. 뭐가 편할까. 이 생각만 하시는 게 보인다.


사실 처음엔 염소였다. 


“염소가 있잖냐, 진짜 할 게 없는겨. 땅에서 자라는 풀만 먹고도 지들이 알아서 크니께 사료값 안 들지. 내가 해보니께 여자도 충분히 허겄어. 그게 또 말이다, 약으로도 고기로도 팔면 너 노후대책도 되는 거 아니겄어.”

“아이고, 아빠~ 내가 염소를 왜 키워. 땅을 팔던 세를 주던 나는 내가 알아서 살으께. 아빠 심어 먹고 싶은 거 나때매 못 심지 마시고요. 양파농사, 감자농사도 하고요. 또 큰집에서 얻어만 먹어서 미안하다던 고추도 심고 싶다며.”


아빠 입에서 염소 이야기가 쏙 들어간 건 염소값이 똥값이 되고 나서다. 아빠는 작심하고 키우던 염소들을 강아지 값만도 못하게 다 처분했다고 했다. 결국 우리 밭은 과수원도 아니고 염소농장도 아닌 감자가 첫 테이프를 끊어주었다. 

염소가 있잖냐, 진짜 할 게 없는겨

그 후로도 우린 정말이지 아주 다양한 농작물을 심었다. 배추, 고구마, 양파, 고추, 마늘, 호박, 옥수수, 가지, 동부콩, 강낭콩, 들깨, 양배추, 파프리카, 오이고추, 여주, 도라지, 더덕, 쪽파, 대파, 상추, 땅콩, 생강, 그리고 감나무 두 그루와 대추나무 한 그루. 세상에나, 이렇게나 많이 심을 거면서 이 땅을 염소한테 내줬으면 어쩔 뻔….


나이 50을 바라보며 엄마 아빠와 밭농사를 하게 된 것을 나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이 축복이 나에게 오기까지는 크게 두 가지 우연이 겹쳐서 가능했다. 아빠의 안성 시골집 앞에는 개울이 있는데, 그 개울가 주인 없는 자그마한 땅에다 아쉬운 대로 이거 조금 저거 조금 심으셨었다. 그러다 하천공사를 하게 되어 더 이상 못하게 된 것이 첫 번째 우연이었다.


원래 아빠의 것은 아니었지만, 있다 없으니 여간 허전해하셨다. 손바닥만 한 텃밭 하나 어디 없나 아쉬워하던 그즈음 나는,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인생이 아깝단 생각에 무작정 쉬고 싶어 자발적 조기 은퇴를 하게 되었다. 두 번째 우연이었다.


밭을 잃은 엄마 아빠, 직장을 버린 나, 우리는 작당모의 끝에 내가 사는 군산에서 함께 밭농사를 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바로 밀어부쳐서 땅은 샀는데, 아빠의 이사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사 내려오기 전까지는 일주일에 한 번 장거리 밭농사를 하고 있다. 


나중에 나중에 엄마 아빠가 없으면 이 땅에다 농사 안 하고 나는 뭐 할 거냐고? 


‘글쎄, 딱 나도 그때까지만 살지 뭐. 오~ 이런 멋진 생각을 내가 하다니.’ 


이 말이 나오려다 목울대가 찌르르 아파왔다. 

밭에 가는 날은 엄마 아빠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애인이랑 데이트하러 가는 날처럼 좋다. 이 글은 밭농사 이야기이면서, 바다보다는 졸졸졸 시냇물 같은 인생 소풍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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