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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Jun 10. 2022

제 점수는 요!

약속을 할 때 식당이나 카페 검색을 하게 된다. 방문자들의 후기가 줄줄이 나오고 슥슥 읽어본다. 맛에 대한 후기가 제일 많고 지도와 메뉴판 그리고 음식 사진들이다. 그 정보만으로 선택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때론 그렇지 않다. 


화장실의 청결 상태를 미리 확인하고 싶기도 하고 파스타에 김치가 반드시 나와야 하는 사람도 있다. 바닥인지 의자인지 알아야 할 때가 있다. 당사자의 입장이 돼보지 않고는 내부사진이 필요 없을 이유는 사실 충분하긴 하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는 프리랜서라 일이 없을 때가 있다. 한 달 이상을 놀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혼자 카페에  가서 붙박이처럼 앉아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좌석 독점하는 암체 ‘카공족’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추가 주문을 하곤 한다. 한 곳을 정해놓고 가는 편이었는데 그러다 직원 또는 사장님과 얼굴이 익혀지고 한국 특유의 ‘아는 체하기’ 문화가 발동한다. 곧 말을 섞게 되는 분위기에 처해지면 가기 싫어졌다. 


카페를 옮겨 다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동네 카페를 다 가볼까’ 느닷없는 목표가 생겼다. 그래서 다니다 보니 비교되고 신경 쓰이는 카페들의 특징들이 있었다.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카페 정보, 누군가에게는 아무 쓰잘데기없지만 어쩌면 누군가는 알고 싶어 할지도 모를 그런 게 있다. 그 목록을 만들었고 채점을 매기기 시작했다. 물론 점수가 높고 낮음은 나만의 관점이다. 그 채점 목록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큰 카페가 더 시끄러울 것 같지만 실제로 꼭 그렇지가 않다. 카페가 넓으면 건너 테이블 손님들의 대화는 웅성웅성하는 소리로, 화이트 노이즈가 되어서 오히려 나의 대화나 독서에 집중이 잘되게 해 준다. 처음에 네다섯 테이블 정도 되는 규모의 아담하고 예쁜 로컬 카페를 다녔을 때인데, 옆 테이블의 대화가 직접적으로 고대로 들려서 서로 불편했다.


두 번째, 나의 경우는 의자보다는 탁자에 예민하다. 우선 원형 테이블은 여러 권의 책과 노트를 늘어놓기에 부적합해서 사각 테이블을 선호한다. 상판 말고 테이블 다리와 기둥의 종류는 더 다양했다. 다리를 꼬아 앉을 경우 가운데 기둥식은 발이 걸리적거려서 가장자리 다리 4개짜리에 점수를 더 주었다. 불편한 의자나 테이블 기둥을 보면 오래 앉아있지 말고 빨리 나가라는 사장님의 무의식 시그널 같다는 생각도 했다.


세 번째, 책을 가지고 카페를 간다면 일단 가사를 잘 모르겠는 음악이 나왔으면 좋겠다. 추억의 ‘8090’ 노래가 나오면 그날은 가사 따라 하며 추억에 젖느라 책이 있으나마나이다. 또 신나는 음악이 싫은 건 아니지만 락이나 랩 음악을 주로 틀어놓으면 다음에 가지 않았다, 


네 번째, 요새 대부분 카페는 스마트폰 충전기를 종류별로 거의 비치해놓은 듯하다. 게다가 무릎담요까지 반듯하게 개어 놓여있으면 주인장의 따듯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겨울은 물론 에어컨 충만한 여름에도 무릎담요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 게다. 내 동그라미가 커진다. 처음 가는 카페는 정보가 없어서 나는 차에 있는 무릎담요를 무조건 들고 들어가야 한다.


다섯 번째, 화장실에 가방걸이가 없으면 정말 난감하다. 남자와는 다르게 여성고객은 핸드백을 거의 들고 다니는데 화장실에서 어쩌란 것인지. 변기 주변에도 세면대 주변에도 문 위에도 어디에도 없는 경우가 정말 많다. 볼일을 보고 손을 씻고 하는 동안 가방을 들쳐 매고 있기가 일쑤다. 


한 번은 단골 대형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였다. 어느 날 고민 고민 머뭇머뭇하다가 정중히 직원에게 화장실 가방고리에 대하여 말을 하고 말았다. 그다음에 가보니 없던 뭐가 생겼다, 구둣주걱 걸기에 적당한 아주 작은 고리가 세면대 거울 옆에 붙어있었다. 성공은 했다.


가방걸이에 공감하는 고객이 분명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나의 행태가 까탈스러운 블랙 컨슈머일까? 경기도 안 좋은데 그런 사소한 거가 눈에 들어오겠냐, 자영업자들의 진정한 속사정은 그게 아닌데...... 역지사지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나인가?


여하튼 그 대형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은 정작 변기 주변까지는 신경도 못썼으며 여자들 가방은 구둣주걱 정도의 무게라고 아는 사장인가 보다 생각하자 했다. 식사시간에 비하면 겨우 고작 몇 분 들르는 곳일지라도, 혹은 식사만 하고 가기도 하겠지만, 본인 식당에 밥을 먹으러 오는 고객이 화장실에서 무엇이 불편할지를 궁금해하지 않는 이유를 나는 알고 싶다. 


여섯 번째. 아기자기한 로컬 카페에 가면 내부가 아늑하고 손님도 없고 음악도 좋고...... 그런데 바리스타가 내 커피를 내린 후 뒷문에 나가 잠깐 흡연을 하고 들어오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한가하니 그럴 수 있지. 그런데 들어와서는 손을 안 씻고 그대로 다음 손님 커피를 내리는 것을 보고는 내 목록 카페 이름 칸에 x를 찐하게 그어놓은 적도 있다.


그 외에 화분이 많은 카페에서 모기에 물려 긁적거려가며 차를 마신 경우도 점수를 깎았다.  불면증에 커피를 안 마시고부터는 메뉴판 앞에서 한참을 서있기 일쑤다. 전통찻집이 아니어도 한방차가 있었으면 하는 건 좀 지나친 바람 같기는 하다.


그래서 또 새로 드는 생각 하나 ‘전통찻집 투어를 해 보까’. 찻집 별로 대추차의 농도 순위를 매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위가 매겨지면 블로그에 한번 올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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