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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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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유주 Oct 13. 2020

23. 다들 이렇게 아프면서 크는건가봐.

진정한 공감에 관하여

통통 튀며 달리던 하레가 오뚜기처럼 기우뚱하며 얼굴이 아래쪽으로 향하게 넘어졌다.

"일어나~! 아이고 씩씩하다!"하고 평소처럼 대수롭지 않게 다가가서 손에 먼지도 '탈탈'털라고 시키려는데, 왼쪽 눈 옆이 꽤 넓은 면적으로 긁혀 있었다.

넘어지면서 울퉁불퉁한 놀이터 바닥에 얼굴을 갈았던 모양이다. 

세로 5센티미터정도의 얇게 표면 껍질이 벗겨진 상처가 나 있었다. 


정말 '눈깜짝할 사이'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다칠 수가 있는거지?

너무 놀라서 하레를 안은채 낮잠 이불, 어린이집 가방까지 들쳐 메고 집까지 뛰어 왔다.

조금만 부딪혀도 '아야'하면서 밴드를 붙여달라고 엄살을 떨던 하레는 막상 얼굴이 심하게 까진 상황에서는 의외로 의연했다.


집으로 가는 내내 아이가 놀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하레야, 집에가서 약바르자! 고모가 약발라줄께!"라고 말을 걸었고 하레는 "으응~"하면서 침착하게 대답했다.

구급상자를 꺼내서 떨리는 손으로 소독부터 하고(엄청 따가웠을텐데 잘 참았다.) 메디폼을 넓게 잘라서 붙여줬다.

푸르스름하게 멍이 들기 시작했다.


하레는 아파서 놀라고 당이 떨어졌는지 젤리와 포도사탕을 달라고 해서 야무지게 깨물어 먹고는 또 잘 놀았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귀여운 얼굴에 흉터가 남으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이 됐다.

그러다가도 가끔 통증이 올라오는지 하레가 '아프다'고 하면 이번엔 내가 갑자기 의연해져서 "괜찮아. 금방 나아. 별 거 아니야."하고 둘이 서로 의연함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저녁에 하레 아빠가 집에 왔는데, 미안해서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쩔 수 없긴 했지만, 왠지 내 잘못 같아서.

하레아빠는 애들 보다보면 그럴 수 있다면서 "젊어서 금방 나아. 괜찮아."라고 웃으며 나를 위로해줬다.

나는 저녁에 불고기를 구워서 "먹고 빨리 나아"하며 하레의 아기새같은 입 안에 쏙쏙 넣어 주었다.




3일 뒤 월요일 아침,

하레는 목을 가리키며 "매와.(매워.)"라고 하며 기침을 했다.

콧물도 나오고 가래가 안에 꽉 막혀 있는 것 같은데도 기분좋게 잘 놀기는 했다.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병원에 들렀다.

접수를 마치니, 대기인원이 17명 있었다.

동화책도 읽고, 정수기에 가서 물 받아서 먹기 놀이도 하고, '이게 뭐야' 대잔치도 하다가 급기야 지루해진 하레는 '개구리처럼 높이 점프를~'노래를 하고 개구리 흉내를 내며 온 병원 바닥을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어휴 어쩔 수 없지 싶어서, 비장의 마취총 유튜브를 틀어주고 아이를 자리에 앉혔다.


그런 하레를 보면서, '사실'과 '내 생각'을 잘 구분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사실: 아이가 네 발로 바닥을 기고 있다.

생각: 병원에선 그러면 안 되는데, 도대체 왜 그러니!!!!

에 대한 반응으로 '화'나 '당혹감'이라는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 감정이 '정당하다'고 믿을때, 아이에 대한 '폭발'이 일어나는 거구나.


아이는 그냥 재밌으니까, 그리고 네 발로 기면 왜 안되는지 모를 뿐이니까 "병원에서는 네 발로 기어다니면 안 돼."라고 가르쳐주거나, 아직 어려서 이해를 못한다면 그냥 못 기어다니게 조치를 취하면 되는거구나.


진료를 마치고 아이가 울고 짜증을 내고, 약국에 가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하고, 공룡 비타민을 한 알 더 달라며 울어도, 그냥 아이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하자 '화', '당혹'같은 감정이 내 안에서 전혀 일어나지 않는 걸 관찰했다.

이 기분과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할텐데.

앞으로 하레가 발달하고 성장하면서 해나갈 수많은 일들에 이렇게 차분하게 대응해 주어야 할텐데, 하고 생각했다.   


기관지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컨디션도 좋고 심각하지는 않으니, 어린이집에 가도 될 것 같다고 하셨다.




아침부터 병원에 가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돌아오니, 이번엔 쑥대밭이 된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엔 대청소를 하고, 점심을 먹고, 일주일치 식단을 짜고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나니 오후 3시반쯤이 됐다.

1시간정도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 하며 한숨을 돌리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휴대폰 화면을 보니 '어린이집'이다.

어린이집에서 왜 전화가??

어쩐지 쌔한 기분이 들었다.


담임 선생님이셨는데, 하레가 오전엔 잘 놀았는데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볼이 빨개서 열을 재보니 37도라고 하셨다. 

어린이집에 해열제가 없으니, 병원에 데려가든 해열제를 먹이든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고.

'볼이 빨갛고, 37도, 병원' 이 키워드가 내 귀에는 심각하게만 들려왔다. 

"제가 지금 바로 갈께요!"하고는 극세사 담요, 유모차, 지갑을 챙겨서 냅다 뛰어 나갔다.


하레는 커다란 메디폼을 붙이고 열이 올라 시뻘건 얼굴로 웃으면서 통통 튀어 나왔다.

집에 가는 게 마냥 좋은듯했다.

이마를 만져보니 정말 뜨끈뜨끈했다.

아이가 열이 나면서 아픈 상황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하지...하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때 옆에 있던 ㅇㅇ이 엄마가 "ㅇㅇ이도 기관지염에 걸려서 열이 41도까지 올랐었어요. 그런데 이틀정도 지나니까 괜찮던데?"하고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이 쿨하게 말했다.

담임 선생님께 열이 날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여쭤보자 '옷을 시원하게 입히고, 열패치나 수건을 이마에 올려주고 해열제를 먹이면 된다'고 마치 '목이 마를 땐 물을 마셔요.'하듯 거침없고 태연하게 말했다. 


그 날 ㅇㅇ이 엄마랑 담임선생님이 내 눈엔 얼마나 멋져 보였는지.

인류 최초로 달에 다녀온 우주 비행사를 보는 듯한 종류의 경외감까지 들었다.

이 상황에서 어쩜 저렇게 차분할수가 있지?

담임 선생님은 아침에 병원을 다녀왔으면 굳이 병원을 또 가야할 필요가 있냐, 집에가서 해열제를 먹이면 될 것 같다고 하셨지만 혹시 내가 뭘 잘못할까봐 겁이나서 다시 병원으로 갔다.


대기 인원 20명. 

1시간 30분이 넘는 대기 시간 동안 아침과는 달리 열이 나서인지 하레는 얌전히 잘 기다려줬다.

잠깐 나가서 복도를 걸어 다니고 화장실에 다녀온 것 빼고는 나에게 폭 안겨 있거나, 의자에 잘 앉아 있었다.

우리 뒤에는 하레보다 조금 더 큰 아이가 있었는데, 자꾸 울고 구르고 난리가 나서 엄마가 '욕조 괴물이 나온다',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준다','사탕을 사주겠다'는 협박과 회유가 난무하고 있었다. 아픈 아이들이 고생이 참 많다.


의사 선생님은 해열제를 처방해주면서 담임 선생님과 같은 말을 해주셨다.

집에 온 하레는 기운은 좀 없는 듯 했지만, 준비된 간식도 다 먹고 잠깐 누워 있다가 평소랑 다름없이 잘 놀았다.

혼자서도 잘 놀아서 저녁 준비를 하려고 하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환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두 팔을 벌리고 "아파..."하면서 자꾸 자기를 안으라고 한 거만 빼면.


아이를 재우고 생각해보니, 말 그대로 기관지에 염증이 생겨서 면역계가 싸우려고 열도 나고 그러는거네.

아이가 '아프다'는 생각에 패닉 모드가 되서 혼자서 호들갑을 피웠구나, 싶었다.

아직 어리니까 면역력이 갖춰지며 커가는동안 아프기도 하는거다,하고 마음을 추스렀다.

정말이지 긴 하루였다.




다음 날, 다행히 열은 내렸다.

아침 5시반에 일어난 것 치고 기분도 컨디션도 좋았지만, 아침으로 먹은 음식을 기침하며 다 토해냈다.

10시쯤 되자 칭얼거리던 하레는 내 무릎을 베고 눕더니 마치 누가 스위치를 끄기라도 한 듯 급작스럽게 잠이 들었다.

기침 때문에 푹 못자고 계속 자다 깨다 하면서 나도 옆에 같이 누워있으라고 했다.

내가 일어나려고 하면 깨서 울었다.


하레 옆에 계속 누워 있다가 오후 1시가 넘어가자 너무 배가 고파서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바깥으로 나왔다.

하레는 입맛이 없는지 평소 좋아하던 간장계란비빔밥도, 닭고기 덮밥도, 김도 안 먹겠다고 하고는 요거트 한 통만 겨우 먹고는 또 칭얼거렸다.


하루종일 아픈 아이를 돌봐야 하니, 나라도 잘 챙겨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는 아이를 품에 끌어안고 달래면서 씩씩하게 밥을 먹고, 후식으로 딸기랑 커피도 챙겨먹었다.

그리고 나서 배도 부르고 기운도 충전되고 기분도 좋아져서 하루종일 하레가 온갖 짜증을 부려도 같이 무너지는 일 없이 잘 받아줬다.


우는 아이를 품에 안고 밥을 먹으면서 문득 진정한 '공감'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깨달았다.

공감은 그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고 그에 맞는 배려를 해주는 것이지, 그 사람의 괴로움과 고통을 함께 느끼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까지 나는 괴로움을 가진 상대를 만나면 그저 상대의 괴로움에 동조되어 어쩔줄을 몰라하며 같이 괴로워하며, 외면하고 싶어했다.


이 날 나는 어쩌면 생애 처음으로 '진짜 공감'을 했는지도 모른다.

하레의 괴로움과 아픔, 짜증에 진심으로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동조되지 않고, 나를 먼저 돌보고 힘을 내서 하레도 돌봤다.


저녁에 하레 얼굴의 밴드를 갈아 주면서도 다시 한 번 느꼈다.

밴드를 뗄 때, 하레가 아파하면 떼다말다 하며 같이 괴로워할 게 아니라 최대한 안아프게 하지만 잽싸게 뜯어내고 대신 '잘 참았다'고 위로하고 칭찬해 주었다.

어설프게 같이 '아프겠다...'하면서 마음 아려해봤자 하레만 더 고통스러울 뿐이니까.




1년 뒤,

하레의 예방접종을 하러 병원에 갔다가 어린이집을 같이 다니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약국에 들른 친구 엄마는 처방전 약과 잘크톤에 이런 저런 앰플을 섞어서 같이 구매했다.

그리고는 얼굴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하레를 바라보며 부럽다는 듯 말했다.

"아휴, 우리집 애는 입이 짧아서 크지도 않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렇게 밥을 잘 먹는거에요?"


그 순간, 그러고보니 나도 잘크톤에 이런저런 앰플을 섞어서 먹이면서 '김만 먹는 아이'를 보며 전전긍긍하던 때가 있었구나!하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까마득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뭘 딱히 '잘한 건' 없는 것 같았다.

아이가 좋아할만한 걸 이것저것 줘보고 그 중에 특히 잘 먹는 걸 주고, 때가 되니 입맛이 도는건지 자기가 알아서 잘 먹었다.

또 하레는 엄마,아빠 이혼 후 '잠시' 식욕이 없었던 거지, 애초에 먹성이 좋은 아이였다.


"생각해보니까 제가 뭘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애가 밥을 잘 먹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요. 아무리 편식 심한 애도 좋아하는 게 한 두가지는 있대요. 그거라도 잘 먹이면 크게 영양결핍은 안온다고 하더라구요."

열 37도에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병원으로 달려가던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날이 올 줄이야.

그 날, 그렇게 멋져 보이던 엄마들의 여유도 다 이렇게 산전수전 겪고 나왔었던 거구나.




성공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공감은 중요하지만 연구원은 타인의 부정적 감정을 과도하게 공유하는 것 또한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쉽지 않고 소진 상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공감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타인의 고통을 느낀다. 

'당신 마음이 아프면 내 마음도 아프다'는 식이다. 


이는 '공감에 따른 피로', 즉 의료진이나 간병인이 환자의 감정과 자신의 감정을 구별하지 못하고 괴로움을 과도하게 공유하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
도와주는 사람이 상대방의 괴로움을 해결해줘야 한다고 느낀다면 이러한 감정은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전염된다. 

하지만 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괴로움은 '해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략)

연민은 공감에 따른 피로를 완화할 수 있다. 연민은 "내가 너의 고통을 해결해주진 못하지만 네 곁에 있으면서 함께 그 원인을 찾고 함께 더 나은 결과를 향해 걸어갈게"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 많던 상처는 누가 다 먹었을까? The connection> - 데이비드 라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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