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 GOING!
흙은 시간이, 세월이 오래될수록 단단해진다.
햇빛과 바람, 비와 추위를 견디며 더 깊은 온기를 품는다.
처음 빚어진 흙은 무르고 약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건조되고, 구워지고, 수 없이 많은 계절을 견디며 단단해진다.
도면을 보고, 시공팀과 회의를 하고, 클라이언트의 꿈을 공간으로 번역하고 펼치는 순간들. 그 시간만큼 나는 그저 '35년 차 디자이너'일뿐이다. 내 나이의 숫자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30년 넘게 쌓아온 경험과 감각, 그리고 여전히 새로운 공간을 설계할 때 느끼는 설렘만이 존재할 뿐이다. 벽면의 질감을 고민하고, 빛이 들어오는 각도를 계산하고, 공간이 사람에게 줄 감정을 그려내는 그 시간, 나는 온전히 살아있다. 그렇게, 현장에서의 나는 아직 풋내기 '디자이너'처럼 자유롭고, 행복하다.
그러나, 세상밖에서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빛을 마주한다. AI 비즈니스 세미나장에서, 최신 디지털 툴 교육장에서, 새로운 사업 미팅 테이블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먼저 내 나이를 읽는다. '대표님'이 아니라 '어르신'으로 호명되는 순간의 당혹스러움. '이 나이에도 배우시려고 하세요?'라는 선의로 포장된 의아함. 그 시선들이 모여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든다. 보이지 않지만 단단한,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투명한 벽.
가끔은 화가 난다. 왜 내가 무엇을 배우고 도전하는지 묻지 않고, 오직 나이만으로 나를 재단하는지.
가끔은 억울하다. 아직도 현장에서 프로젝트를 이끌고, 어제보다 나은 디자인을 고민하는데, 세상은 내가 '쉬어야 할 나이'라고 정해놓았다는 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한다. 젊은 친구들처럼 빠르게 반응하지 못할 때가 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익히는 속도가 더딜 때도 있고, 밤샘 작업 후 회복이 예전 같지 않을 때도 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머뭇거릴 때, 머릿속으로는 명확한데 화면에서 길을 잃을 때, 몸이 먼저 '이제 그만'이라고 말할 때, 그때마다 마음 한 구석에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다.
'이제 그만해도 되는 거 아닐까'
'충분히 살지 않았나'
'이제 쉬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더 힘든 건 신체적 한계가 아니다. 세상이 정해놓은 '나이의 의미'가 내 마음 안으로 스며드는 것
'아직 할 수 있어'라고 다짐하면서도, '이 나이에 괜히 무리하는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고개를 든다.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면서도 '지금 시작해도 될까' 하는 주저함이 생긴다. 당당했던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작아진다.
마치 누군가 내 마음에 지우개를 대고 조금씩 나를 지워가는 것처럼
나는 내가 아직 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젊음이 숫자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열정이 살아있는 한 청춘이라는 것을. 현장에서 느끼는 그 자유로움이, 일을 사랑하고, 계속 성장하고 싶어 하고, 다음 프로젝트를 꿈꾸는 이 마음이 진짜 '나'라는 것을 잘 안다.
60년을 살았다는 건, 60년의 경험과 통찰과 실패와 성공이 내 안에 쌓여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어떻게 나의 약점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의 시선은 나를 정의할 수 없다 아니, 정의할 수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세상의 시선과 부딪칠 때마다 숨고 싶어진다. 작아진 마음을 감추고 싶어진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할까"
"나이 든다는 것이 왜 이렇게 외로운 일일까."
그럴 때마다 글을 쓴다. 흙을 만지듯 천천히, 단어 하나하나를 빚어내며 내 마음을 다시 펼친다.
글을 쓰면서 나를 다독인다 "괜찮아, 천천히 가도 돼" "내 속도로 가면 되는 거야" "세상은 너를 기다리지 않아.' " 네가 결승점에 들어왔을 때 그때 너를 주목하는 거야. 그러니 그동안은 묵묵히 너의 길로 꾸준히 가면 되는 거야." 하지만, 글쓰기에도 한계가 있다는 걸 느낀다. 글로 정리한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위로가 되어도, 현실은 여전히 단단하니까. 그래서 나는 사회적 시선에서 벗어나 내 마음을 다시 펼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버티려 하는지. 왜 편하게 쉬지 못하고, 왜 자꾸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고, 왜 나이가 들어서도 30,40대처럼 살아가려 하는지. 그건 아마도 , 아직 다 하지 못한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받은 재능, 쌓아온 경험, 만나온 사람들, 견뎌온 시간들. 그 모든 것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아직 세상에 내놓지 못한 공간들이 있고, 아직 나누지 못한 지혜가 있고, 아직 시작하지 못한 도전이 남아있다.
나에게는 사명이 있다. 거창한 사명이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을,
내게 허락된 이 재능을, 끝까지 다 쓰고 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라는 것.
그래서 나는 계속 가기로 했다. 계속하는 것 배우고 싶으면 배우고, 시작하고 싶으면 시작하고 도전하고 싶으면 도전하는 것. 느리고, 실수하고, 남들보다 시간이 더 걸리면 어떤가. 세상이 정해놓은 나이의 틀에 나를 가두지 않기로 했다. 나이 들었으니 쉬어야 한다는 공식을 거부하기로 했다. 70이 되어도 30처럼, 40처럼 살아가기로 했다. 아니, 그래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사는 방법이다. 그것이 내 사명을 다하는 길이다.
현장에서 나이를 잊고 일할 수 있듯이, 세상 밖에서도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연습. 지금은 그 연습이 필요하다. 그것이 내 사명을 다하는 길이다, 타인의 시선을 바꿀 순 없지만, 그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내 중심을 단단히 한다. 나를 작게 만드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흙은 시간이, 세월이 오래될수록 단단해진다. 햇빛과 바람, 비와 추위를 견디며 더 깊은 온기를 품는다. 처음 빚어진 흙은 무르고 약하다. 시간이 지나며 건조되고, 구워지고, 수 없이 많은 계절을 견디며 단단해진다. 그 과정에서 흙은 금이가 기도 하고, 일부는 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견뎌낸 흙만이 진짜 온기를 품을 수 있다. 나이 듦도 그런 게 아닐까...
60년을 살아온 이 시간이 약점이 아니라 자산이고, 금이 간 자리마다 깊은 이야기가 있고, 여전히 배우고 도전하는 이 마음이 청춘의 증거라는 것. 작아진 마음은 다시 펼쳐진다. 조금 느리더라도, 조금 서툴더라도, 흙의 온도처럼 따뜻하고 단단하게. 오늘도 나는 디자이너로, 학습자로, 도전자로 살아간다 세상이 뭐라 하든, 내 속도로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한다.
"괜찮다, 너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아, 70이 되어도, 80이 되어도, 네가 숨 쉬는 그 순간까지 너는 청춘이야.
세상이 네 나이를 보더라도, 너는 네 열정을 봐, 세상이 네 한계를 말하더라도, 너는 네 가능성을 믿어. 천천히 가도, 넘어져도 돼, 다만 멈추지만 않으면 돼. 흙처럼, 오래될수록 단단해지고 깊은 온기를 품는 그런 사람이 되면 되는 거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여전히 꿈을 설계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며, 다음 사업을 준비하는 모든 분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자 한다.
우리는 아직 젊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다 하지 못한 사명이 있으니까.
그 사명을 다 할 때까지,
흙의 온도로, 천천히 단단하게 살아가면 됩니다.
#작아진 마음 #나이 듦의 지혜 #인생이모작 #시니어창업 #평생학습 #나이는 숫자 #중년의 도전 #액티브시니어 #인테리어디자이너 #자기 성장 #삶의 사명 #나를 찾아가는 여행 #흙의 온도 #천천히 마음이 자라다 #브런치작가 #일상의 깨달음 #마음성장 #삶의 태도 #내면의 목소리 #위로와 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