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냄새 속에 피어난 사랑의 기억
프롤로그 : 뉴스 한 줄이 불러온 기억
며칠 전 아침, 무심코 컴퓨터 스크롤을 내리다 멈춰 섰다. "한국의 꽈배기, 세계 거리음식 4위 선정." 단 몇 초 만에 읽어버린 그 짧은 문장이 이상하게도 한참 동안 내 눈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꽈 배 기'
그 단어를 읽는 순간, 마치 타임캡슐이 열리 듯 오래된 기억 하나가 불쑥 피어올랐다. 끓는 기름냄새, 하얗게 날리던 밀가루 가루, 그리고 따뜻했던 아버지의 손, 그날 아버지가 만들어 주셨던 꽈배기의 온기가, 수십 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다시 내 가슴을 뜨겁게 적셨다.
열여덟 살 아버지의 첫 장사
아버지는 그 시절, 많은 이들이 그랬듯 가난한 청춘을 보냈다. 술과 노름에 빠진 할아버지는 가장의 자리를 일찍이 내려놓으셨고, 아버지는 고등학교 졸업장도 받기 전에 집안의 기둥이 되어야 했다. 열여덟, 아직 누군가의 자식으로 살아도 될 나이에, 아버지는 가장이 되어야 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 손을 잡고 5일장을 따라다니던 아버지는 장터 한편에서 꽈배기를 만들어 팔던 아주머니를 문득 떠올리셨다고 한다. 뜨거운 솥 옆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반죽을 하던 그 아주머니의 모습. 그리고 그 아주머니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
"이거? 별거 없어. 밀가루, 기름, 설탕만 있으면 돼."
그 한마디가 아버지 인생에서 첫 장사의 시작이었다. 집안의 낡은 가구며 그릇들을 엿장수와 바꾸고, 이웃동네까지 돌아다녀 겨우 낡은 솥 하나와 궤짝, 그리고 큼직한 반죽통을 마련했다. 밀가루와 설탕, 기름을 구하려고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맸다. 레시피라고는 어렴풋한 기억과 몇 번의 시행착오가 전부였다. 그렇게 준비한 첫날, 열여덟의 아버지는 열 살 아래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처음으로 장터 한편에 솥을 걸었다. 첫 반죽을 기름에 넣는 순간을 아버지는 평생 잊지 못하셨다고 한다. 뜨거운 기름 위에서 반죽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노릇하게 부풀어 오르자, 고소한 냄새가 순식간에 장터를 가득 메웠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하나 둘 그 냄새를 따라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거 얼마예요?"
"하나 주세요!"
"세 개 주시고 덤으로 하나 더요!"
첫날 만든 꽈배기는 해질 무렵 모두 팔렸다. 손에 쥔 돈을 세며 아버지는 어린 동생을 바라보았다.
동생은 장작을 나르고 반죽통을 옮기며 추운 겨울날 시퍼렇게 언 작은 손으로 기름에 튀겨지는 꽈배기를 봉투에 담아 손님들에게 건네고 또 건넸다.
"형아, 우리 잘한 거지?"
동생의 그 말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우리 잘하고 있어."
장터의 겨울, 그리고 시퍼런 손
그날 이후 장사는 나날이 번창했다. 5일장마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새벽같이 일어나 반죽을 준비했다. 밀가루를 체로 치고, 물과 설탕을 넣어 다시 치대고, 따뜻한 아랫목에서 발효시키는 일, 그리고 무거운 솥과 기름통을 지게에 지고 장터까지 걸어가는 일. 모든 것이 고되었지만, 두 소년은 견뎌냈다. 하지만 가장 힘든 것은 겨울이었다. 매서운 바람이 허허벌판의 장터를 휩쓸고, 사람들은 외투 깃을 세우고 빠르게 지나갔다. 그런 날에도 솥에서 기름은 끓어야 했고, 불은 지펴야 했다. 작은 아버지는 동상에 걸려 손가락이 퉁퉁 부어올랐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밤에 할머니가 물 한 대야를 데워주면, 그 안에 손을 담그고 조용히 울었다. 아버지는 그 소리를 들었다. 작은 방 저편에서 들려오는 동생의 숨죽인 흐느끼는 소리.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버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을 훔쳤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자!!"
그렇게 아버지는 하루하루를 견디고, 또 버텨냈다. 꽈배기를 팔아 모은 돈은 한 푼, 한 푼 소중했다. 할머니께 드릴 쌀 한 가마, 동생의 낡은 신발을 바꿀 새 운동화, 그리고 언젠가는 제대로 된 가게를 차릴 밑천.
덤프트럭과 택시, 그리고 침묵
세월이 흘렀다. 아버지는 장터에서 모든 돈으로 운전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낡은 중고 덤프트럭을 한대 샀다. 자동차 정비도 자연스럽게 배우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흙을 나르고, 자갈을 실었다. 손은 굳은살로 뒤엎였고, 어깨는 늘 결렸다. 하지만 돈은 조금씩 모였다. 그렇게 서울로 올라왔다. 중고 택시 몇 대로 작은 택시회사를 차렸다. 기사들을 고용하고, 차량을 관리하며 아버지는 사업가가 되어갔다. 가난했던 시절이 점점 멀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그 시절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으셨다. 특히 꽈배기 장사 이야기는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으셨다. 엄마도 우리도 그 이야기를 전혀 몰랐다. 아마도 아버지에게 그 시절은 자랑이 아니라, 아픔이었던 것 같다. 끓는 기름 냄새, 밀가루 가루가 날리던 장터, 그리고 무엇보다 동생의 시퍼렇게 언 손, 그 기억들은 아버지의 가슴 한편에 곪은 상처처럼 남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린이날 꽈배기
그러던 어느 해 어린이날이었다. 우리는 으레 그렇듯 드라이브를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갈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뜬금없이 말씀하셨다.
"오늘은 아버지가 직접 꽈배기 만들어줄게."
우리는 영문을 몰랐다. 어린이날에 꽈배기라니? 갈빗집도 많고 뷔페도 있는데 굳이? 하지만 아버지의 표정이 묘하게 진지해서 아무도 반대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주방에 들어가시더니 밀가루를 꺼내셨다. 그리고 마치 오랜 기억을 더듬 듯 천천히 재료를 준비하셨다. 물, 설탕, 이 스트, 소금. 손은 기억하고 있었다. 밀가루를 체로 치고, 반죽을 치대고 발효를 기다리는 모든 과정을. 우리는 신기하게 주방 문틈으로 아버지를 지켜봤다. 아버지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집중하셨다. 반죽을 길게 늘이고, 꼬고, 다시 꼬아 꽈배기 모양을 만드셨다. 그리고 큰 냄비에 기름을 가득 붓고 끓이셨다. 흰 밀가루 반죽이 기름에 닿는 순간 시작되는 그 경쾌하고 힘찬 소리는 온 집안을 가득 채우며 고소함을 남겼다.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 진짜 꽈배기다!"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꽈배기를 접시에 담아내시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묘한 표정이 어려 있었다. 뿌듯함과 동시에, 어딘가 쓸쓸한 표정, 우리는 그 표정의 의미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세상 어떤 빵집, 어떤 제과점의 꽈배기보다 맛있었다. 바삭한 겉면과 쫄깃한 속살, 은은한 단맛. 그런데 이상했다. 그저 맛있다는 느낌을 넘어서, 묘하게 마음이 뭉클했다.
"아빠, 진짜 맛있어요! 또 만들어 주세요!"
우리는 연신 웃으며 말했고, 아버지는 수줍은 미소로 우리를 바라보셨다. 그 눈빛 속에 무언가 깊은 것이 담겨있었지만, 우리는 아직 어려서 알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다시는 꽈배기를 만들지 않으셨다. 우리가 아무리 졸라도 "다음에' 하고 웃으셨다. 그 한 번의 꽈배기는, 어쩌면 아버지가 과거의 자신과 마주한 유일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열여덟 살의 자신, 그리고 여덟 살 동생과 함께했던 그 시절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장례식 날의 고백
세월은 가혹하게 작은아버지는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식장은 조문객들로 붐볐고, 아버지는 영정 사진 앞에 오랜 시간 서 계셨다. 그날 밤, 장례식장을 지키던 아버지와 나는 단 둘이 복도 벤치에 앉아 있었다.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아버지가 처음으로 입을 여셨다.
"너 어렸을 때... 아버지가 꽈배기 만들어 줬던 거 기억하니?"
"네 기억해요. 진짜 맛있었어요."
아버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셨다. 그리고 천천히, 마치 오래 묵은 이야기를 꺼내듯 말씀하셨다.
"그거 있잖아... 아버지가 열여덟 살부터 네 작은아버지랑 장에서 팔던 거야. 그때, 작은 아버지가 겨우 여덟 살이었어. 추운 겨울에도 매일 나가서... 얘가 불 피우고, 장작 나르느라 손이... 시퍼렇게 얼었어."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손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너무 작았어, 손이 그런데 그 작은 손으로 장작을 집고, 불을 지피고... 한 번도 아프다고 안 했어. 그냥... 형이 걱정할까 봐 참았던 거지."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다. 그 눈물엔 지난 수십 년의 무게가, 동생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이, 그리고 먼저 보낸 슬픔이 모두 담겨 있었다.
"미안하다... 형이 미안하다..."
아버지의 그 말은 영정 속 작은 아버지가 아니라, 여덟 살의 그 아이에게 하는 말이었다. 추운 장터에서 시퍼렇게 언 손으로 불을 지피던, 그 작은 아이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아버지 곁에 앉아 함께 울었다.
기억 속에 살아있는 것들
이제 아버지도, 어머니도, 작은 아버지도 모두 그곳에 계신다. 그들이 살았던 시간, 견뎌냈던 순간들은 이제 나의 기억 속에만 남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분들의 마음은 아직도 내 안에서 따뜻하게 살아 숨 쉰다. 특히 그날의 꽈배기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가난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열여덟 살 소년의 악착같은 의지, 형을 따라 추위 속에서도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해낸 여덟 살 아이의 용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아버지 사랑이. 며칠 전 본 그 뉴스, "한국의 꽈배기, 세계 거리음식 4위 선정"이라는 그 문장은 나에게 단순한 정보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함께 만들어냈던 기적 같은 시간, 그 겨울 장터의 기름 냄새, 그리고 사랑의 기억을 다시 불러낸 주문이었다.
에필로그 :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던 꽈배기
지금도 가끔 꽈배기를 본다. 길거리 가판대에서, 마트에서, 빵집에서, 하지만 그 어떤 꽈배기도 그날 아버지가 만들어 주셨던 것만큼 맛있지 않다. 왜일까? 아마도 그 꽈배기 속에는 레시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임의 냄새, 가족의 온기, 시퍼렇게 언 손의 기억,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
이제야 알게된것은, 아버지가 그날 우리에게 만들어 주신 건 단순한 꽈배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청춘이었고, 작은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간이었고, 견뎌낸 삶의 증거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기름 냄새와 함께 한 접시 위에 담겨, 우리 앞에 놓였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던 꽈배기.
밀가루, 기름, 설탕만 있으면 돼.
그 한마디가 만들어 낸 것은 꽈배기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가족의 생존이었고, 두 형제의 사랑이었으며,
지금까지 이어진 삶의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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