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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트 하우스에서 만난 진짜 부자의 비밀

부와 공간 연결의 비밀

by 운채
실장님도 여기 대출받아서 분양 하나 받아요! 50평 정도만 받아도 2~3년 후엔 지금의 배 이상은 벌 수 있을 거예요...!



2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그 말, 과연 나는 그때 대출을 받아 분양을 받았을까?

이 이야기의 끝에서 답을 공개하겠다.



벼락부자들의 시대가 열리다.

80년대에서 90년으로 이어지는 경제 호황기는 인테리어 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을 불러왔다. 신도시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새로 지어지는 고급 아파트 들은, 분양 첫날부터 치열하게 경쟁을 하며 전국에 부동산 붐을 부추겼다.


2000년 초반, 세상을 들썩이게 만든 특혜 의혹의 중심에 선 그 유명한 아파트. 바로 그곳에서 나는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의뢰인은 강남 번화가에 20년 장기계약으로 땅을 임대하고 있는 부동산 임대사업자였다. 잠실에서 끈기 있게 누에밭을 지켜 온 부모님 덕분에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신흥 부호였다. 이른바 '벼락부자'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모자는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삶의 여유를 느끼고 싶어 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집 곳곳에 던져진 명품 가방들, 바닥 여기저기 흩어진 채 버려진 듯 널브러진 명품 액세서리들을 보면서 나는 깨달았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돈에도 전통과 품격을 입히는 것이구나.."

화려한 재력과 대비되는 공간의 무질서는 돈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음을 직감하게 했다.


할머니의 마지막 궁전

펜트 하우스는 2세대가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나의 미션은 90세가 넘은 할머니의 공간을 가장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었다.


"딸 같은 당신이 꾸며주니까 믿고 맡겨 볼게요" 무뚝뚝해 보이는 할머니는 새로운 공간에 대한 기대감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할머니는 나와 함께 이것저것 원단이며 제품을 고르면서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누에 밭이던 잠실 땅에서 성실하게 뽕나무를 키웠던 이야기며, 주변 사람들이 갑자기 올라버린 땅을 팔고 이사를 가던 그 시기에도 자신은 끝까지 누에 키우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진심 어린 이야기까지. 그녀의 삶은 한국의 50~60년대를 겪은 사람들이라면 흔히 들을 수 있는 성실함의 역사였다.


할머니의 역사를 듣고 보니, 이제는 부러울 것 없는 그녀의 위치에 걸맞은 생애 마지막 사치를

선물하고 싶었다.


핑크색과 황금색으로 자수가 놓은 보료세트와 형형색색의 자개장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벽 파티션,

수입산 페이즐리 무늬가 프린트된 청록색과 골드 포인트의 도배지로 보료의 머리맡을 장식해 드렸다.

"뒤쪽 쿠션에도 화려한 자수를 놓아주세요!" 할머니의 요청에 나는 광장시장까지 뒤지며 화려한 자수원단을 구했다. 로만 쉐이드 스타일의 커튼도 전통적인 매듭으로 장식을 주었고, 그렇게 특별한 할머니의 궁전이 완성되었다.


돈이 만든 신분 상승의 기적

할머니는 그 아름다운 공간에서 3년을 조금 더 사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그 후 이 집에는 더욱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병원비로 몇억을 날려서 별명이 '억순이'라 불리던 손녀는 유명 기업의 손자와 결혼했고, 전문대 졸업이라는 학벌 콤플렉스를 가졌던 아들은 사위 집안과의 연결 고리로 유명 외국대학 졸업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하늘에서 3대가 덕을 쌓아야 내려온다는 벼락부자의 삶' 나는 그들을 통해 '돈'이 기회가 되어 신분 상승을 만드는 역사적인 흐름을 목격했다. 물론, 지금이야 유튜브나 온라인 사업으로 꽤 많은 돈을 버는 젊은 부자들도 많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땅'이 기회가 되어 '부자'가 되는 일이 더 비일비재했으므로, 나에겐 그 시절의 부자의 기준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부의 진실을 깨닫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부'란 나의 노력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의 노력'으로 '최소한의 부'를 누릴 수 있다는 것.


지금도 그 카페거리는 셀럽들이 일상을 누리는 핫한 거리가 되었지만, 그 거리를 지날 때마다 그들이 떠오르고는 한다.


'부'란 내 주변의 것을 잘 활용하는 것, 그리고 그런 것이 없다면, 나의 땀으로 만들어진 '노동의 대가'를

잘 활용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부를 이동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때 분양을 받았을까? 자, 이제 약속한 대답을 해야겠다.

아니, 나는 그때 분양을 받지 않았다! 대신 나는 더 중요한 것을 얻었다. 진짜 부자들을 관찰하며 깨달은 부의 본질과, 오행 인테리어라는 나만의 전문성을 더욱 갈고닦을 시간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그때, 분양을 받지 않은 것이 후회로 남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때 나의 선택은 내 경험이야 말로, 내 삶에 더 많은 풍족함을 주고, 더 오래 남을 거란 막연한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때로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 더 큰 기회를 잡는 길이 되기도 한다. 그 집 할머니가 마지막 3년을 행복하게

보내실 수 있도록 도운 그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


할머니의 궁전은 단순한 사치가 아니었다. 35년의 고단한 삶의 서사가 담기, 그분만의 '기운(氣運)이 응축된 공간이었다. 나는 그 공간이 그 가족에게 새로운 운명적 조화(오행적 균형)를 가져왔음을 확신한다.


다음 장에서는 제가 밀레니엄 시대에 처음으로 완성한 데뷔작을 통해, 유행을 초월하는 공간의 힘과 그 속에 숨겨진 오행의 원리를 자세히 알려드립니다.


#오행 인테리어 #운이 바뀐 집사람이야기#부동산투자#부동산붐#인테리어디자이너일기#펜트하우스#부자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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