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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Gibran Oct 25. 2020

살아가는 힘

오후 4시쯤 119 공동대응으로 신고가 내려왔다. 목맴 환자가 있다고. 

한 생명이 저무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후배 직원과 함께 갔다. 

현장은 지상 4층 건물의 원룸으로 3층이었다. 1층에 119 구급대 차량이 서 있었다. 구급대원의 안내를 받아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갔다. 건물 1층에 들어서는 순간, 절규가 들려왔다. 마치 고통을 토해내는 듯 소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그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슬픔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내 마음이 요동친다. 그 소리의 파동에 따라. 

먼저 출동한 구급대원은 방호복을 입은 채 우리에게 설명을 했다. 그 설명을 들으려는 데 그 절규는 내게 왜 이제 왔냐고 하소연을 한다. 애써 무시하고 설명을 들었다. 출동해서 보니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전문의사에게 연락하여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있는지 물었으나 아무것도 없다며 사망한 것 같다고 했다. 119에서는 전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한다. 아들을 병원으로 옮겨달라는 신고자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도록 내게 아주 친절히 설명했다. 이제부터는 경찰이 해야 할 일이라고. 


조금 열린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그녀의 절규를 보았다. 하나의 죽음을 보았다. 쓰러진 청춘을 보았다. 어찌할 수 없는 좌절을 보았다. 

사망한 지 시간이 좀 된 듯. 수사학 교재에 실려 있는 '목맴사'의 전형적인 모습. 혀는 돌출되어 있었고, 시반이 보였고, 힘없이 축 늘어져 방문객을 맞는 듯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젊음은 운동하려고 설치한 철봉에 줄을 연결하여 자신의 목을 걸었다. 맨 먼저 발견한 이는 다름 아닌 그를 낳고 길러준 어머니였다. 축 늘어진 그의 심장에 절규를 보내고 있는 오로지 아들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어머니, 그 어머니는 줄에 매달려 있는 아들을 발견하고, 그 줄을 가까스로 끊었다. 그로 인해 아들은 무릎이 꿀린 채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그 순간 그 줄을 끊어야 했던 어머니는 어떠하였을까? 내게 빨리 응급실로 보내달라고, 조치를 취해달라고 울부짖는다. 땅에 주저앉아 소리만 지른다. 그럴 수밖에 없음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어머니에게 물었다. 바로 대답하지 않고 계속 울부짖으신다. 아들의 이름과 나이를. 

"25살."내 아들보다 한 살 많았다. 

내게도 갑자기 울음과 슬픔이 엄습해왔다. 마스크를 써서 가릴 수 있었다. 그 아들은 제대하고 복학하여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타지에서 부산으로 유학을 와서 혼자 살았다. 

지금 내 앞에서 쓰러진 어머니는 지난밤부터 아들과 연락이 되지 않아 건물 주인에게 확인을 해달라고 간곡하게 요청을 하셨다고 한다. 바로 확인을 해주지 않고 하룻밤이 지난 오늘 낮 12시에서야 확인을 하고, 아들이 이상하다는 말만 듣고 택시를 타고 곧장 오셨다. 맞이한 것은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니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는.  


내게 딸에게 연락을 해달라고 했다. 딸은 알고 있었다. 동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바로 갈 테니 내게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을 했다. 내게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 제발 응급실로 동생을 옮겨 달라고. 나는 매정하게 동생은 이미 죽어서 응급실에 가는 것은 소용이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빨리 내려와서 동생을 보라는 말밖에. 


형사들과 과학수사팀에서 나왔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아 아들을 부르는 어머니에게 나와 같이 차가운 질문을 한다. 정확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아들이 그렇게 할 애는 아니라며 울고 또 우신다. 형사들이 아들만의 외로운 공간에서 신분증을 찾아 우리가 필요한 정보는 모두 찾았다. 살리지 못하고 삭제해야 하는.   

 

검안을 하니, 사망한 지 하루는 되었다고 한다. 혼자 사는 원룸에서 그는 홀로 갔다. 아버지, 어머니, 누나가 있는데 그 가족이 생각나지 않았을까? 근육을 키우기 위해 설치한 철봉에 자신의 절망을 매달았다. 

함께 하는 이가 있었다면 하는 한숨이 나왔다. 

그저 사람이라는, 그저 경찰관이라는 틀을 느꼈다. 

그렇게 그는 한 장의 변사발생보고로 내게 남았다. 


퇴근했다. 가족들과 삼겹살을 구워 소주를 마셨다. 아내는 깨끗하게 상추를 씻었고, 딸은 소주잔에 웃음을 채웠고, 아들은 아주 잘 구워주었다. 

낮에 보았던 죽음 얘기를 했다. 왜 그랬을까? 하는 마음을 우린 가졌다. 남겨진 가족들은 어떨까? 

분명 그 가족들은 슬픔에 젖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오로지 허망하게 보내지 못하는 마음만 먹었을 텐데. 

내 앞 접시에 구운 고기를 놓아주는 아들의 손톱 끝이 빛났다. 

나를 두르고 있던 슬픔과 우울이 희미해졌다.

 

책상에 앉아 취기가 있는 손이 한 문장을 집어 들었다. 

"결국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 중에서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시인 박재삼의 '어부'중에서.


이렇듯 우리는 한 문장의 힘으로 사는 듯하다. 더불어 함께 하는 이의 말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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