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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Gibran Aug 25. 2020

아들의 여친

일요일 저녁, 가족들과 모처럼 외식을 하기로 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 독립을 외치며 나간 아들을 보고 싶기도 했고, 각자 개인 생활을 하다 보니 함께 모이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조금 비싼 레스토랑에 가야지만 시간을 낸다. 다들 

딸은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들과 함께 2박 3일 동안 여행을 갔다 오는 날이라 피곤하다며 불참 의사를 밝혔다. 평소 가고 싶다고 외친 식당이지만 피곤을 이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흔쾌히 참석하겠다고 한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혹시 다른 약속이 생겨 못 온다고 할 것 같았다.

내 예상과 달리 여자 친구가 있다며 데리고 가도 되냐고 묻는다.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을 눈치는 챘지만 가족 식사 자리에 데리고 온다고 하니까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떤 아이인지 알고 싶었고, 아들이 처음으로 여자 친구를 내게 보여주는 것이라 머뭇거림 없이 좋다고 했다. 

그만큼 둘 사이가 가까워졌는지 궁금했다. 내 기준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먼저 도착하여 자리를 잡았다. 고개를 돌리면 출입구를 바로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일부러 그곳을 정했다. 아들보다는 아들의 여자 친구가 더 궁금해서 몸은 나도 모르게 그 출입구를 향해 있었다.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 한 소녀가 웃는 모습으로 아들을 보고 있었다. 둘은 손을 잡고 들어왔다. 

계속 서로를 보며 웃었다. 누가 보더라도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사이로 보였다. 

내 앞에 나란히 앉았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많은 것을 물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같이 알바를 하면서 친해져 사귄 지 이제 21일째라고 한다. 90년대생에게는 아주 긴 시간인 듯하다. 

아들이 여친을 나에게 소개한 것은 처음이라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많이 맛있게 먹자라는 말만 했다. 

뒤늦게 온 아내는 아들과 아들의 여친이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눈이 휘둥그레 졌다. 

내게 눈짓을 한다. 그래, 아들 여친이 맞다고 신호를 보내주었다. 

아내는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것저것 물어본다. 아들이 눈을 흘긴다. 

아내는 더 이상 묻지 못하고 나처럼.  


아들이 의젓해 보였다. 여친이라고 먹을 것을 챙겨준다. 여친과 동갑인 여동생에게는 하지 않는.

아들이 고마웠다. 얼마 전 아들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었다. 

"어떤 일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아빠한테 얘기를 해주면 좋겠다. 선택은 결국 네가 하는 것이고, 아빠는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인생 선배로서 조언을 하겠다."라는.

그래서일까? 아들은 내게 여자 친구를 얘기해주었다.  


서로 음식을 가져와 나눠 먹는 모습이 예뻤다. 나와 아내는 어색함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식사 자리가 끝나고 헤어지는데 참 예쁘게 인사를 한다. 

그 나이에 어울리는 수줍음이 보였다. 당당함도 함께


돌아서서 가는 여린 두 존재의 뒷모습에서 

하늘의 두 별을 보았다. 

너무 가까우면 부딪쳐 깨지고, 

너무 멀어지면 그대로 벗어나는 순간의 별이 아닌,  

중용의 거리에서 서로에게 빛을 비춰 더욱 밝게 빛나게 하는, 


칼릴 지브란의 사원의 두 기둥을 보았다. 

서로 떨어져 서로의 지붕을 받치고 있는, 

서로의 공간을 인정해주는,


바라보며 바란다.   


내 나이 20살의 파릇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그 소녀는 어디에 있을까?

이 얘기를 아들에게 해줘야 할까?

그저 생각만 할 뿐

내 손을 잡고 있는 아내에게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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