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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Gibran Aug 18. 2020

기적

부산의 어느 재래시장 입구에 낡은 건물의 파출소 

그 앞 화단에는 그 낡음에 어울리는 감나무 한 그루 

그 낡음에 어울리지 않게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감이 열린다.  

올 해도 많이 열렸다. 

먹지 않는다. 혀에 닿는 순간 얼굴을 찡그린다.  

잎은 떨어지고 

노오란 감은

흐늘 되는 가지에서 생의 의지가 숨 쉰다. 

떨어지면 처참하게 짓이겨져 행인들의 발에 짓밟힐 수 있으니 처절하게 매달려 있다. 


영하 10도까지 내려간 겨울

몇 개는 가지와 묶여 어느 집 하얀 벽에 

몇 개는 힘이 다하여 떨어져 사라졌다. 

몇 개는 서리가  접착제가 되어 붙어 있다. 


파출소 경찰관의 야간근무가 끝나가는 아침에 새 두 마리가 날아왔다. 

밤새 술이 덜 깬 사람이 아니라 

일찍 잠이 깬 존재라서 반갑다. 

새들은 가지에 차분히 앉아 두리번거린다. 

뾰족한 부리로 버려진 살을 뜯어먹는다. 

감사한다. 

다 먹지 않는다. 

먹을 만큼만 먹고 다시 날아간다. 


기적을

바라본다

기도한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우리에게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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