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만 Jun 27. 2021

시간과 함께 달라지는 영화, <살인의 추억>


내가 <살인의 추억>를 처음 본 것은 이 영화가 개봉하던 해인 2003년, 열여섯 살 때였다. 그때 이 영화가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걸 내가 알고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다만, ‘그래서 박해일(박현규 역)이 범인이야, 아니야?’하는 궁금증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것은 기억한다.


이후, 성인이 된 후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컷을 분석하기 위해, 카메라의 움직임을 확인하기 위해 최소 다섯 번은 더 영화를 보았다. 하지만 이 영화를 여러 번 보게 된 가장 강력한 동기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에 있었다. 2010년대의 나에게 이 영화는 형사 버디 무비의 표본이었다. 영화는 육감을 믿는 시골 경찰 두만(송강호)과 과학 수사를 믿는 서울 경찰 태윤(김상경)이 계속되는 사건 속에서 서로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형사 버디 무비로서의 살인의 추억


하지만 2021년 다시 한번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그런 영화 안의 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미제 사건으로 남았던 이 사건의 범인이 잡힌 현재, 이 영화가 어떻게 읽힐까 하는 궁금증이 들어서였다. 사건 현장에서의 롱 테이크, 범인의 시점 숏, 누아르적 조명 활용 등 영화의 만듦새와 이야기의 짜임새는 여전히 훌륭했다. 하지만 영화에서 받는 느낌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 영화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미지의 것에 대한 무력함, 공포 등을 주제로 한다고 볼 때, 영화 속 사건에 대한 두려움과 의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해갈 수밖에 없다. 2010년대 이 영화를 다시 볼 때, 이 사건은 이미 이십 년이 더 되었고, 범인에 대한 궁금증과 그 범인이 아직도 우리 곁에 평범한 인상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은 이 영화에 어떠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미치도록 잡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포스터 속 문구와 같이 어떤 주술적인 욕망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염원은 결국 진범이 잡힘으로써 동시에 사라지게 되었다. 더 이상 이 사건이 미지의 것이 아닌 시점에서 영화는 그 주술적 힘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주술적 의미의 살인의 추억


물론 이 영화가 좋으냐는 질문에는 좋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이전과 같은 의미로 또는 감정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이것은 <살인의 추억>을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영화’라는 독특한 위치에 놓이게 한다. 이 영화의 배경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을 때-이를 테면 십 대의 나 또는 외국인이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또는 이 사건이 여전히 미제로 남아있을 때, 혹은 범인이 잡힌 후 이 영화가 관객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확연히 다를 것이다.


2021년 이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 영화는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분명 나와는 같지 않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