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영화를 보았습니다.
지난해 책 모임에서 클레어 키건의 원작 소설을 읽었던 지라 영화를 보면서 자꾸 원작과 비교하게 되더라고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테마라고 느꼈던 것들이 영화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거나 너무 희미하게 지나간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아일랜드의 소도시, 그 작은 마을의 경제, 종교, 교육 등 일상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수녀원이 있습니다. 주인공 빌 펄롱은 그곳에서 소위 '문제 있는' 소녀들에게, 교화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학대를 목격합니다. 빌 펄롱은 그 상황에서 도움을 구하는 '세라'라는 소녀를 구해줄 것인지, 무시할 것인지 갈등합니다.
소설에서 보면, 이 마을 사람들은 수녀원의 부정을 어느 정도 이미 알고 있지만 모두 외면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러지 못하고 결국 소녀에게 도움을 주기로 '선택'합니다. 그 선택까지의 갈등과 주인공이 왜, 또는 어떻게 '이처럼 사소한' 친절을 보이게 됐는지가 이 소설 또는 영화의 주된 이야기입니다.
빌 펄롱은 미혼모의 자식이었습니다. 만약 윌슨 부인이 펄롱의 어머니를 하녀로 받아주지 않았다면 그녀 역시 수도원의 '문제 있는' 소녀들과 같은 운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빌 펄롱은 마을에서 이질적인 존재인 윌슨 부인에게 '사소한' 친절을 받았습니다.
윌슨 부인의 친절은 과하지 않습니다. 윌슨 부인과 빌 펄롱은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런 관계도 아니며, 윌슨 부인이 그런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것도 어쩌면 그녀가 돈 많은 과부에, 마을 사람들과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었던 덕이었을 것입니다. 그녀의 친절은 최소한의 프로테스탄트적 윤리였습니다.
하지만 그 사소한 친절의 경험이 있었던 주인공은 자신의 어머니와 이름이 같은 소녀 '세라'를 만나 자신 역시 친절을 베풀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에서는 윌슨 부인과 빌 펄롱의 이러한 관계가 잘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더불어 어린 펄롱의 '아버지 찾기' 테마도 영화에서는 거의 사라져 버려 소설의 깊이가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부분이 빠지면서 빌 펄롱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가 줄어들게 되고 제목인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의미가 잘 드러나지 못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을의 분위기와 수녀원의 관계 등도 영화 전반에는 나오지 않아 주인공이 고민하는 이유나 그 깊이를 느낄 수 없었던 점도 큰 아쉬움이었습니다.
또한 한 인물의 내면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고민하는 얼굴을 잡는 것 이외에 그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던 것도 안타까웠습니다.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면서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더라도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이미지'로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나 기법을 좀 더 고민해 봤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본 후 함께 본 분들과 감상을 나누며 어느 분이 던진 두 가지 질문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사실은 사소한 것이 아닌 것처럼, 어떻게 우리 일상에서 이런 친절을 베풀 수 있을지. 그러니까 불의를 알면서도 침묵하는 마을 주민들과는 달리 빌 펄롱 같은 선택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왜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 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맥락에서 나온 질문이긴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 두 질문은 결국 같은 것이었습니다.
빌 펄롱은 과거 자신의 어머니가 이 소녀와 같은 운명에 처할 수 있었던 상황에 있었고, 누군가의 사소한 친절이 한 인간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앎'은 그가 겪고, 또는 겪을 수도 있었기에 타인의 것이 아닌 진짜 자신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앎'은 추상적인 것이 아닌 경험과 체험이 동반된 앎이었습니다. 그런 '앎'은 빌 펄롱이 다른 '행동'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슬픔, 모든 고통을 경험할 수는 없지만, 공부를 통해 그 앎에 가까워져야, 앎이 행동으로 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타인의 슬픔을 제대로 알고 싶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신형철 평론가의 말을 마지막으로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앞으로 그와 나에게 오래 슬퍼할 만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그곳에 우리가 꼭 함께 있었으면 한다. 그 일이 다른 한 사람을 피해 가는 행운을 전혀 바라지 않는다. 같이 겪지 않은 일에 같은 슬픔을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고, 서로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우리는 견딜 수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