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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진 Jun 18. 2021

덕업일치, 성덕의 기회.

방송작가를 꿈꾸는 이들 중에 좋아하는 유명인과 함께 일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나의 우상이었던 유명인,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 꼭 한 번 보고 싶던 나만의 스타. 나도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섭외한 유명인이 내가 쓴 구성안대로 촬영을 하고, 내가 쓴 대본을 읽어주는 상상. 그리고 그 상상은 가끔은 현실로 일어난다. 


나는 교양프로그램을 주로 맡았기 때문에 상상과는 달리 유명인보다는 아나운서, 전문가 분들을 주로 만나고 섭외해왔다. 물론 그들과 일하는 것도 매우 즐거웠지만 마음 속 한 구석에는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과 일해보고 싶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2015년 <문제적 남자>를 기획할 때 기회가 왔다. 


지금은 아주 유명해지고 장수하는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문제적 남자>는 똑똑한 지식인의 면모를 가진 셀럽들을 섭외해 퀴즈쇼를 해보자 하는 기획이었다. 나는 KBS <퀴즈 대한민국>을 오래 담당하면서 그 경력이 인정받아 기획단계에 투입되었다. 퀴즈를 내는 건 다양한 인터넷 서치와 문제집,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으면서 가능했지만 출연자를 결정하는 것이 난항이었다. 우리가 아는 똑똑한 셀럽들은 아주 바쁜 사람들이었다. 스케줄도 맞지 않았고 지식 퀴즈쇼라는 말에 혹시나 활약을 하지 못할까봐 우려하는 부분들도 있었다. 


회의실 한쪽 벽에는 아이큐가 높거나, 좋은 대학을 나왔거나, 시사상식이 높다고 알려져 있는 연예인들의 리스트가 쭉 적혀있었다. 또 다른 출연자를 물색하던 때 나는 그 명단을 쭉 훑어봤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 사람은 바로 페퍼톤스의 이장원 씨였다. 이장원 씨는 과학고를 나와서 카이스트를 다닌, 친구 신재평씨와 페퍼톤스 활동을 하던 가수였다. 페퍼톤스의 팬이었던 나는 이장원, 신재평 두 사람을 바로 떠올렸지만 과연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지 몰라서 망설였다. 그러다가 도저히 신선한 출연자 리스트가 나오지 않자 슬쩍 운을 띄웠다. 


'페퍼톤스에 이장원, 신재평이라고... 과학고에 카이스트 나온 분들이에요.'

'페퍼톤스? 재밌는 사람들이야?'

'저한테는 최고의 개그맨...(아니 가수인데) 전 이 분들이 제일 재밌어요.'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던 사람들도 페퍼톤스가 나왔던 라디오, 몇개의 방송 클립들을 보고 섭외 연락을 드렸다. 그 뒤로 섭외 과정은 담당 피디님이 맡았고 결국 출연자로 이장원 씨가 확정됐다. 그 때부터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내가 하는 프로그램에 섭외했다. 그 사실만으로도 벅찼다. 만나서 내가 당신의 팬이에요. 내가 당신을 출연자로 꼭 모시고 싶었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개인사정으로 나는 기획 단계 이후 프로그램을 하차했다. 그 뒤로 방송이 런칭되고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꽤 뿌듯했다. (물론 나만 아는 오빠가 유명해지는 건 슬픈 일이기도 했다.) 


그 뒤로 내가 페퍼톤스를 만난 건 페스티벌과 콘서트장 뿐이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지금은 코로나로 페스티벌도, 콘서트도 갈 수 없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만나게 되도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 할 수 없겠지만 나 혼자만의 행복으로 간직하고자 한다. 


물론 이후의 프로그램들에서 좋은 연예인 출연자들도 많이 만났다. 수많은 출연자들을 만나면서 여전히 떨리고 설렌다. 방송에서만 보던 사람들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환상도 갖던 나였지만, 그들도 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고 생각보다 훨씬 좋았던 분들도 많이 있었다. 어느샌가 무뎌지기도 했지만 언제나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일을 떠올리면 설렌다. 이 설렘을 모든 방송작가님들이 누려보셨으면 좋겠다. 


덕업일치를 꿈꾸는 작가님들, 언젠가 이루어질 수 있으니 그 희망을 잃지말고 오래오래 존버하시길! 모두 성덕길만 걸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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