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mi Nov 14. 2021

올레8코스와 유독 좋았던 9코스

단기여행자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코스

유독 기분좋았던 나무그늘

지난번에 끝마치지 못했던 8코스 절반을 돌았다. 지난번에는 맥도날드 중문점을 지나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보고 포기했었는데, 막상 걸어보니 오르막길은 생각보다 짧았다. 그리고 그 오르막을 살짝 지나니 양옆으로 나란히 서있는 나무들이 기분좋은 그늘을 만들어주는 반가운 길이 나왔다. 그래서일까. 올레길 트래킹을 시작하는 발걸음이 다른 때보다 유독 가벼웠다. '계속 이런 길이면 좋을텐데-' 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그런 구간은 기대보다 짧았다. 마치 일주일 내내 기다렸던 주말이 순삭되는 것과 같은 기분. 거참.

8코스에서 만난 오잎크로버

올레길은 역시나 어느 하나로만 단조롭게 구성되진 않는다. 코스마다 분명 특유의 색깔은 있지만, 한 코스 안에서도 해안가를 걷기도 하고, 관광지를 지나치기도 하고, 오름을 오르기도 한다. 그렇기에 좋은 길도, 좋지 않다고 느끼는 길도 결코 그 길만으로 계속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나는 매 순간 내 눈앞에 주어진 길들을 걸으며 제주를 온전히 음미해보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것이 나의 최선이다.

8코스에서 만난 코스모스 군락

10월 초, 제주도의 날씨는 아직 무덥고 거리엔 반팔을 입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계절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지, 이제 10월이고 가을이라며 코스모스가 곳곳에 피어 있었는데, 코스모스를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 이제 2021년도 절반 넘게 지나, 끝으로 가고 있구나. 한해를 마감하고 내년을 맞이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구나. 그렇게 시원섭섭한 감정을 느끼며, 여름과 가을 사이를 약 8km쯤 걸었을까.

벌써 8코스의 종점인 대평포구에 도착했다. 그간 올레길을 걷는게 좀 익숙해져서인가, 체력이 남은 느낌. 집에 가기가 좀 아쉬웠다. 분명 지난번과 비슷한 거리를 걸은것 같은데 왜 체력이 남는거지.

모든 올레길 코스의 종점은, 다음 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는데 다음 9코스 안내를 보니 6km로 상대적으로 매우 짧은 코스였다. 친구에게 다음 코스를 걸을지 물어보니 본인도 체력이 남았으니 하고 싶은대로 하라 한다. 호기롭게 바로 이어 9코스를 걷기로 했다. 이심전심이군!


올레9코스 (출처 : 사단법인 제주올레 홈페이지)

9코스는 대평포구에서 시작해 월라봉과 진지동굴을 지나, 화순금모래 해수욕장에 이르는 코스다. 전체 코스 길이는 6km로 짧지만 계속 오름을 올라야해서 난이도는 上으로 되어있다. 후기를 찾아보니 정말 힘들단 얘기도 좀 있고 살짝 걱정은 되었지만, '정말 힘들까? 어차피 걷는건데 오르막길이면 조금 천천히 가면 되지, 뭐가 힘들겠어!' 하면서 다음 코스인 9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9코스는 안내대로 꽤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내려오지만 생각보다 훨씬 좋고 수월했다. 일단 그늘이 많아서 좋았고, 그것보다 더 좋았던 건 담고있는 이야기들이 유독 다채로웠다.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것과 별개로, 포토스팟이 된 진지동굴

예를 들어서, 월라봉의 진지동굴은 제주도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었다. 말들이 지나다니지 못하도록 곳곳에 설치된 문들은 육지에서는 보지 못하는 것들이었고, 감귤밭 근처를 지날 때는 올레길을 걸으며 잠시 휴양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총총 걸음을 걸었고, 영화 속 한 장면의 주인공이 된 나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충돌주의 표지판

수확철에 감귤을 수확하기 위해 설치한 레일에 설치된 안전 안내판은 피식 웃음이 터지게 만들었다. '충돌주의'라는 안내 내용은 되게 중요하고, 진지한건데 왜인지 모르게 그려진 그림이 우스꽝스럽고 귀여웠다. 신기하기도 했다. 이렇게 산에 있는 감귤밭은 레일로 옮기는건 처음 알았다. 아직 귤들은 주황색보다, 푸른색을 띠는 것들이 많았는데 귤철에 9코스를 걸으면 탐스러운 주황색 귤이 레일에 가득담겨 내려오는걸 볼 수 있을 것 같다. 음, 역시 체험 목적으로 만든 제주도 여타의 관광지보다 이렇게 길 속에 녹아든 살아있는 제주를 느끼는게 나는 더 좋다. 이게 진짜 제주고, 제주살이지.

그렇게 진모르 동산을 지나, 8코스 절반과 9코스 완주를 했다! 개인적으로 올레길만 걷는 목적이 아니라면 여행자들이 비행기까지 타고와서, 짧은 여행 기간동안 올레길을 걷는건 조금 비추하는 편이다. 길 자체의 매력들은 다 있지만 가볍게 걷기엔 한코스 한코스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보통 평균 길이가 15km쯤 되고, 중간중간 쉬면서 걷는 것과, 이동시간을 고려하면 아침 8-9시에 출발해서 오후 3-4시쯤 일정이 마무리되는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올레길을 걷는 재미도 재미지만 올레패스포트를 채우는게 올레길 트래킹의 아주 중요한 요소인데 총 27개 코스를 다 돌으려면 매일 돌아도 한달이 꼬박 걸린다. 때문에 정기적으로 제주를 오거나, 제주한달살이를 하는게 아니라면 올레길 트래킹이 일회성 활동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런 일회성 활동으로 올레길을 걷는건 요새처럼 여가도 가성비를 따지는 세태 속에는 조금 맞지 않는 느낌이랄까.

귤밭과 말의 출입을 막는 문

그런데, 9코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하고 싶다. 일단 난이도는 있어도 거리가 짧아서 소요시간이 2-3시간 정도밖에 안되고 진지동굴, 귤밭 등 제주의 느낌을 느낄만한 것들이 꽤나 있다. 느린 여행의 일종인 올레길 트래킹을, 맛보기용으로 해보기엔 최적. 어찌됐든 나에게도 여러모로 알찬 코스를 걸어 기분이 좋았던 하루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난히 힘겨웠던 올레8코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