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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찌기 Jun 20. 2022

운동 유목민의 운동 정착기


운동을 싫어하는데 운동을 갈망하는 사람을   있는가.  무슨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소리인가 싶지만  모순 덩어리가 바로 나다. 누워 있는  세상 좋아하고, 체력도 부족하고, 끈기도 없어서 지레 포기하는 나지만 돌이켜보니 신기하게도  해본 운동이 없더라. 초등학교 CA 시간에 했던 아이스 스케이트부터 접영까지 배운 수영, 엄마 친구가 선생님인 수업에 끌려가서  좋은 자세의 사례로 전시되기도 했던 요가, 여기에 에어로빅, 방송 재즈 힙합 댄스, 스노보드, 인라인 스케이트, 스쿼시, 배드민턴, 헬스 피티, 러닝, 등산, ! 승마도 한적 있었다.


어쩌다 보니 마사회 알바하던 대학생 시절, 싸게 배울 기회가 있어서 3개월 동안 배운 적 있었다. 처음에는 승마의 운동 효과를 믿지 못했다. ‘아니 말이 힘들지, 내가 힘들겠냐고’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을 타본 첫날 알았다. 편견이었다는 것을! 말 위에서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하다 보니 사람도 땀에 흠뻑 젖게 되더라. 마치 스쿼트를 30분 연속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난폭한 말을 만나면 중심 잡기가 더 힘들어서 평소보다 허벅지가 더 얼얼하곤 했었다. 그때 나를 싫어했던 말 이름이 ‘토르’였는데, 이름대로 놀던 애였다.


살을 빼고 싶어서, 건강해지고 싶어서, 정말 좋아해서 등등 운동을 하는 이유가 대부분 이러할 텐데 나는 조금 애매한 이유로 시작하곤 했다. 물론 다이어트가 이유의 90%였지만 그보다는 변덕과 팔랑귀가 운동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요소를 차지했다. 우연히 누군가 하는 것을 발견하거나, 티비에 나왔거나, 동네에 있는 멋있는 간판을 보거나 하면 갑자기 그 운동을 하고야 말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장렬하게 등록하고, 장렬하게 질려서 그만둔다. 뭐하나 진득하게 한 게 없었다.


내 주변에는 몇 년째 요가 수업을 들으며 요가를 마스터한 후 이제는 정규 수업을 듣지 않고 숲 속, 루프탑, 스튜디오 등 고수들을 위해 마련된 장소에서 진행하는 스페셜 클래스만 찾아다니는 친구가 있는데 보면서 참 부러운 마음이 들곤 했다. 내가 지금까지 운동의 맛만 보며 탕진한 시간 동안 하나의 운동에 집중했다면, 나도 저렇게 하나의 분야에 고수가 되었을까라는 아쉬움과 후회가 들면서 ‘에잇 이번 생은 망했어!’라고 외치며 벌렁 누워버리고 만다.


주변을 부러워하며 운동 자체에 회의감이 들 무렵 코로나가 터졌고, 굳이 내 의지가 아니더라도 온 우주가 나를 운동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살도 찌고, 의욕도 사라지고, 술만 마시고 고만고만하게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그즈음 있었던 건강검진 때 ‘일주일에 몇 회 흠뻑 땀을 흘리는 운동을 하시나요?’라는 질문에 심각하게 고민하다 0회를 체크하는 나를 보고, ‘내 나이 33살, 이렇게 운동 안 하고 술만 먹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거야’라는 생각에 다시 운동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운명처럼 동네에 새로 오픈한 스피닝 센터를 만나게 되었다. 미드를 보면 꼭 다이어트를 결심한 여주인공들이 스피닝 센터를 간다. 그만큼 다이어트에 대한 강한 의지, 격한 운동으로 살을 단기간 빼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는데 스피닝만 한 운동이 없는 것이다. 자전거 타면서 춤추고 흔드는데 살이 안 빠지고 배기겠냐고. 나의 의지박약은 내가 제일 잘 알았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 1, 센터가 클럽같이 재미있어 보였다는 생각 2, 집에서 아주 가깝다는 생각 3의 조합으로 스피닝을 ‘한 달만’ 등록했다.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고


처음 3주는 열등생도 이런 열등생이 없었다. 스피닝은 엉덩이를 들고 페달을 밟으며 동작을 해야 하지만, 일단 엉덩이를 들지도 못했고, 페달도 5분 밟으면 지쳐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3주만 지나면 괜찮을 거예요’라는 지속적인 선생님의 말에 최면이라도 걸렸는지, 3주가 지나니 정말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페달도 리듬에 맞춰 조금씩 돌려주니 힘도 덜 들었고, 리듬을 맞출 수 있으니 일어나서 하는 손동작도 곧잘 따라 하게 되었다. 익숙해지니 재미있어졌다. ‘한 달만 등록해보자’ 했던 게 어느새 두 달, 세 달이 되었고 이사를 하며 처음 센터는 떠났지만 지금 동네에서 새로운 스피닝을 찾아서 하게 되었다. 이 운동 의지박약이 무려 5개월 동안 같은 운동을 연속해서 하게 된 것이다.


곰곰이 왜 내가 스피닝은 질리지 않는지 생각해 보았다. 스피닝은 5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압축률 높게 진행되는 운동이다. 일단 페달에 앉으면 50분 동안 탈출할 수 없고, 꾀부린다고 해서 운동량이 줄지도 않는다. 일단 발은 어떻게든 페달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양 옆, 앞 뒤로 들이찬 사람들이 미친 듯이 페달을 돌리고 소리 지르고 흔든다. 애초에 내 페이스대로 운동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운동인 것이다. 그리고 현란한 조명, 90년대 케이팝 음악, 여기에 빵빵한 안개구름 효과까지, 술 대신 생수만 마실 뿐이지 클럽이 따로 없다. 너무 재미있다. 그리고 50분 동안 모든 번뇌가 사라진다. 힘들게 헥헥 대며 페달을 밟다 보면 하루 종일 고민했던 모든 것들이 쓰레기처럼 느껴진다. 몸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이롭다. 그리고 운동 끝나고 집에 오면 뭐 먹을 기운도 없이 바로 잠에 든다. 스피닝 하기 전에는 하도 잠이 안 와서 불면증 센터를 가야 하나 싶었는데, 괜히 헛돈 쓸뻔했다. 모든 게 다 운동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을.


기본 400칼로리 이상! 1시간에 이만큼 칼로리 쓰는 운동 거의 없다.


그동안 운동 유목민으로 살아왔던 이유는 내가 나를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변덕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내 성향을 몰랐기에 금방 질려버렸던 것이다. 이제 내가 어떤 운동을 좋아하고, 어떤 상태를 좋아하는지 알았다. 유목민 시절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백날 말해도 절대 알 수 없다. 무엇이든 경험하고 그만큼 돈도 써봐야 그제야 알 수 있다. 열심히 이 운동, 저 운동 찔러본 덕에 지금의 정착을 할 수 있었다고, 나름 잘 쓴 돈이었다고 애써 합리화를 해본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확실하게 말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재미가 덜 해지고, 세상을 다 알았다는 착각이 드나 보다. 하지만 그동안 유목민으로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인지 취향이 확고해지는 지금의 과정이 난 좋다. 그리고 내 취향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분야를 더 많이 늘려가고 싶다. 이 취향이 아집, 고집으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할 시기는 아직 아니지 않을까. 일단은 내 취향의 것들을 운동 외에도 더 넓혀가기로!



2022.6.2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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