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빠졌다. 늘 높은 공감성 수치로 (평소에는 공감 능력이 없으면서 드라마 볼 때만 심하게 발현됨) 드라마를 잘 못 봤는데 이 드라마는 착한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이 풀어내는 이야기가 참 재미있더라. 자폐를 가진 변호사 우영우는 한 번 본 책은 모두 기억하는 천재지만 회사 앞 회전문은 통과하지 못해서 스스로를 바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에 흐뭇한 마음이 들 때쯤 잊고 있던 학창 시절의 에피소드가 하나 떠올랐다.
어렸을 때는 학교에 꼭 한 명씩 자폐아가 있었다. 초등학교 우리 반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 남자아이는 또래보다 큰 키에 외모도 어른스러웠지만 늘 맹한 표정으로 이상하게 걸었으며,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해 돌아다니기 일쑤였고, 말투는 어눌했다. 가끔은 소리를 지르며 교실을 뛰쳐나가기도 했다. 당시 내 친한 친구는 학교에서 소문난 착한 아이였다. 그리고 선생님은 내 친구에게 자연스럽게 그 아이와 짝꿍을 하게 하고, 학교 생활 관리를 맡겼다. 이것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학교에는 그 아이를 전담할 선생님이 없었고, 그 아이의 부모님도 매번 올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바쁘고 귀찮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어린아이에게 맡기는 일이 정답이었을까?
착한 아이의 굴레에 갇힌 내 친구는 그 아이를 계속 챙겼지만 무척 힘들어했다. 친구들과 마음대로 놀 수도 없었고, 늘 자신을 쫓아다니는 그 아이가 버거웠다. 그 아이는 내 친구를 좋아했다. 늘 ‘ㅇㅇ야~ ㅇㅇ야~’ 하면서 헤벌쭉 웃었고, 나는 옆에서 그걸 째려봤다. 그 아이는 나를 알고 있었지만 내 이름을 부르진 않았다. 나는 내 친구를 힘들게 하는 그 아이가 미웠고, 나서서 친구를 빼오기도 했다. 내가 싫어하는 걸 그 아이는 알았다. 그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그 아이는 내 기억에서 잊혀졌다. 여전히 같은 동네였기에 엄마를 통해서 그 아이가 인문계 학교를 다니고 있고, 키가 크고 힘이 세서 괴롭힘은 안 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거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뺑뺑이 추첨에서 더럽게 안 좋은 운으로 10지망 고등학교에 붙은 나는 남들은 걸어서 학교 갈 때 버스를 2번 갈아타며 먼 학교를 가고 있었다. 해가 질 무렵이었다. (야자가 없는 날이었나 보다)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우연히 창문 너머를 봤는데 바로 옆에 그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엇’ 하던 때에 버스는 출발했고 창문을 돌아보니 그 아이가 나를 보면서 자전거로 쫓아오고 있었다. 미. 친. 듯. 이.
‘하하 우연이겠지.’ 싶어서 다시 뒤를 봤는데 그 아이는 여전히 맹렬하게 버스 뒤를 쫓았고, 버스가 두 정거장을 지나 우리 집 정거장까지 오는 동안 추격은 계속되었다. 그 아이는 초등학교 때보다 더 덩치가 크고 얼굴도 무서워 보였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쫓아오는 그 아이가 너무 무서웠고 상가 2층으로 도망쳤다. 2층 구석에 조용히 숨어있었는데, 그 아이가 자전거에서 내리는 소리와 함께 계단을 올라오는 둔탁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계속 나를 찾는 듯했다. 하지만 계속 내가 안 보이자 그 아이는 떠났다. 갑자기 벌어진 한낮의 추격전은 당시 17살이었던 나에게 공포영화로 다가왔다. 그때 뛴 심장 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자, 이제 이 글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후회와 반성? 아마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무서움에 또 도망치지 않았을까. 장애인에 대한 사상의 전환? 그런 깊고 거대한 담론을 말하기에는 내가 아는 게 너무 없다. 그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기 전까지는 잊고 있었던 이 에피소드가 갑자기 떠오른 이유가 뭘까. 드라마에서 우영우의 병명은 ‘자페 스펙트럼 장애’다. 스펙트럼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자폐는 하나의 증상과 수치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고 드라마에서 말한다. 우영우처럼 자폐아 중에는 천재적인 두뇌로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6~7세의 지능으로 대화는커녕 감정도 읽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 아이는 천재는 아니었지만(오락실 끝판왕을 늘 단시간에 깨긴 했다) 6~7세 정도도 아니었던 것 같다. 계속해서 튀는 행동을 하고 자신의 감정은 잘 전달하지 못했지만 인문계 학교를, 자전거를 타며 다니고 있었고, 초등학교 시절 나를 기억하고 쫓아오기도 했다.
많은 아이들이 그 아이를 놀리거나, 피하거나 둘 중 하나만 했다. 누구도 그 아이와 감정적인 교류를 시도하지 않았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아이는 누구보다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감정을 알만큼 자페의 경도가 낮았던 게 아닐까. 그래서 내가 자신을 싫어했던 것은 알지만 자신에게 유일하게 친절했던 친구의 친구를 기억하고 그렇게 쫓아온 게 아니었을까. 그때 ‘엇 안녕 나 기억해?’라고 말을 건넸다면 지금 내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을까.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그 일은 여전히 내 마음에 짐으로 남아있나 보다. 기억력 안 좋기로 소문난 내가 그 아이의 이름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 아이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마음을 나눌 사람이 가족 외에 또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밤이다.
2022.7.11.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