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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찌기 Jul 11. 2022

안녕, 오랜만이야!


요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빠졌다. 늘 높은 공감성 수치로 (평소에는 공감 능력이 없으면서 드라마 볼 때만 심하게 발현됨) 드라마를 잘 못 봤는데 이 드라마는 착한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이 풀어내는 이야기가 참 재미있더라. 자폐를 가진 변호사 우영우는 한 번 본 책은 모두 기억하는 천재지만 회사 앞 회전문은 통과하지 못해서 스스로를 바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에 흐뭇한 마음이 들 때쯤 잊고 있던 학창 시절의 에피소드가 하나 떠올랐다.



어렸을 때는 학교에 꼭 한 명씩 자폐아가 있었다. 초등학교 우리 반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 남자아이는 또래보다 큰 키에 외모도 어른스러웠지만 늘 맹한 표정으로 이상하게 걸었으며,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해 돌아다니기 일쑤였고, 말투는 어눌했다. 가끔은 소리를 지르며 교실을 뛰쳐나가기도 했다. 당시 내 친한 친구는 학교에서 소문난 착한 아이였다. 그리고 선생님은 내 친구에게 자연스럽게 그 아이와 짝꿍을 하게 하고, 학교 생활 관리를 맡겼다. 이것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학교에는 그 아이를 전담할 선생님이 없었고, 그 아이의 부모님도 매번 올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바쁘고 귀찮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어린아이에게 맡기는 일이 정답이었을까?


착한 아이의 굴레에 갇힌 내 친구는 그 아이를 계속 챙겼지만 무척 힘들어했다. 친구들과 마음대로 놀 수도 없었고, 늘 자신을 쫓아다니는 그 아이가 버거웠다. 그 아이는 내 친구를 좋아했다. 늘 ‘ㅇㅇ야~ ㅇㅇ야~’ 하면서 헤벌쭉 웃었고, 나는 옆에서 그걸 째려봤다. 그 아이는 나를 알고 있었지만 내 이름을 부르진 않았다. 나는 내 친구를 힘들게 하는 그 아이가 미웠고, 나서서 친구를 빼오기도 했다. 내가 싫어하는 걸 그 아이는 알았다. 그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그 아이는 내 기억에서 잊혀졌다. 여전히 같은 동네였기에 엄마를 통해서 그 아이가 인문계 학교를 다니고 있고, 키가 크고 힘이 세서 괴롭힘은 안 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거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뺑뺑이 추첨에서 더럽게 안 좋은 운으로 10지망 고등학교에 붙은 나는 남들은 걸어서 학교 갈 때 버스를 2번 갈아타며 먼 학교를 가고 있었다. 해가 질 무렵이었다. (야자가 없는 날이었나 보다)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우연히 창문 너머를 봤는데 바로 옆에 그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엇’ 하던 때에 버스는 출발했고 창문을 돌아보니 그 아이가 나를 보면서 자전거로 쫓아오고 있었다. 미. 친. 듯. 이.


‘하하 우연이겠지.’ 싶어서 다시 뒤를 봤는데 그 아이는 여전히 맹렬하게 버스 뒤를 쫓았고, 버스가 두 정거장을 지나 우리 집 정거장까지 오는 동안 추격은 계속되었다. 그 아이는 초등학교 때보다 더 덩치가 크고 얼굴도 무서워 보였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쫓아오는 그 아이가 너무 무서웠고 상가 2층으로 도망쳤다. 2층 구석에 조용히 숨어있었는데, 그 아이가 자전거에서 내리는 소리와 함께 계단을 올라오는 둔탁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계속 나를 찾는 듯했다. 하지만 계속 내가 안 보이자 그 아이는 떠났다. 갑자기 벌어진 한낮의 추격전은 당시 17살이었던 나에게 공포영화로 다가왔다. 그때 뛴 심장 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자, 이제 이 글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후회와 반성? 아마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무서움에 또 도망치지 않았을까. 장애인에 대한 사상의 전환? 그런 깊고 거대한 담론을 말하기에는 내가 아는 게 너무 없다. 그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기 전까지는 잊고 있었던 이 에피소드가 갑자기 떠오른 이유가 뭘까. 드라마에서 우영우의 병명은 ‘자페 스펙트럼 장애’다. 스펙트럼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자폐는 하나의 증상과 수치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고 드라마에서 말한다. 우영우처럼 자폐아 중에는 천재적인 두뇌로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6~7세의 지능으로 대화는커녕 감정도 읽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 아이는 천재는 아니었지만(오락실 끝판왕을 늘 단시간에 깨긴 했다) 6~7세 정도도 아니었던 것 같다. 계속해서 튀는 행동을 하고 자신의 감정은 잘 전달하지 못했지만 인문계 학교를, 자전거를 타며 다니고 있었고, 초등학교 시절 나를 기억하고 쫓아오기도 했다.


많은 아이들이 그 아이를 놀리거나, 피하거나 둘 중 하나만 했다. 누구도 그 아이와 감정적인 교류를 시도하지 않았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아이는 누구보다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감정을 알만큼 자페의 경도가 낮았던 게 아닐까. 그래서 내가 자신을 싫어했던 것은 알지만 자신에게 유일하게 친절했던 친구의 친구를 기억하고 그렇게 쫓아온 게 아니었을까. 그때 ‘엇 안녕 나 기억해?’라고 말을 건넸다면 지금 내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을까.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일은 여전히  마음에 짐으로 남아있나 보다. 기억력  좋기로 소문난 내가  아이의 이름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보면 말이다.  아이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마음을 나눌 사람이 가족 외에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밤이다.



2022.7.1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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