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레기'라는 말이 흔히 쓰인다. 공익성에 부합하지 않는 기사나 근거 없는 가짜뉴스를 쓰는 수준 낮은 기자를 말한다. 기사 댓글에 기레기라는 말에 자주 따라오는 표현이 '얼마 받았냐?'다. 돈을 받고 편향적인 기사를 썼다는 뜻이다. 특히 특정 기업에 우호적인 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많다.
2. 부정하기 어렵다. 실제로 많은 기자가 특정 기업으로부터 광고나 협찬의 대가성 기사를 쓴다. 기사와 광고를 엄격히 명시하지만, 사실 구분하기 어렵고 교묘한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이런 기사는 갈수록 늘고 있다. 이런 콘텐츠에 대한 누적된 경험은 뉴스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3. 왜 늘었을까? 가장 단순한 답은 '모럴 해저드'일 것이다. 각각의 언론사나 기자의 도덕적 수준이 낮아졌다는 얘기다. 이런 답은 너무나 단순하고 명료하기에 큰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그렇다면 지금 기자들은 과거에 비해 유독 더 비도덕적이란 얘기가 된다. 실제로 그런가?
4. 우리는 언론을 바라볼 때 지나치게 사회성과 공익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사실 언론사는 영리기업이고, 기자는 공무원이 아니라 그 회사에 고용된 근로자다. 물론 사회에 대한 소명이나 직업의식이 비교적 남다르긴 할테지만, 근본은 돈을 벌어 먹고 살아야 하는 기업이고,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란 얘기다.
5. 따라서 언론의 변화는 그 산업의 환경, 기자의 행태는 그 기업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쓰레기 같은 언론, 기자, 기사가 왜 나왔는지 역시 개인의 도덕성이 아니라 이런 산업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개인의 도덕성만을 비난하며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된다.
6. 나는 언론 시장의 구조를 언론사의 수익모델에 따라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한다. ① 구독모델 ② 광고 플랫폼 모델 ③하청업체 모델이다.
7. 첫번째 단계는 사람들이 신문을 사건, 구독해서 보던 시절이다. 신문이 뉴스를 보기 위한 가장 가장 좋은 수단이기도 했지만, 사실 별다른 대안도 없던 때다. 여기서 언론사 주요 수입원은 구독료나 신문 판매수익이다. 이때 언론 시장은 '언론-독자'의 단면시장 구조다. 뉴스라는 콘텐츠를 사고파는 단선적 관계다.
8. 이 경우 언론사 입장에서 독자가 많으면 수익이 증가한다. 덩달아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고, 이는 다시 독자의 증가와 수익의 증가라는 순환으로 이어진다. 이 구조에서 언론사는 독자를 끌어들일 콘텐츠의 질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다른 콘셉트로 아예 황색저널도 등장하지만, 당시에는 사회의 정보를 뉴스에 의존했기 때문에 정확하고 정제된 콘텐츠가 선호된다.
9. 차츰 사람들의 신문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신문을 사 보는 데 돈을 쓰지 않자 언론은 새로운 돈줄로 기업을 찾는다. 언론사가 자신의 독자에게 기사와 함께 광고를 보여주고, 기업에게 광고 공간을 제공하는 대신 광고비를 받는 구조다. 즉 언론은 독자를 유저로 둔 광고플랫폼이 되고, 산업은 '독자-언론-기업'의 양면시장 구조가 된다.
10. 플랫폼 사업은 어떤 미끼(검색, 공짜상품, 편의 등)로 많은 사람을 자신한테 끌어들이고, 이렇게 사람이 모인 공간을 원하는 다른쪽(보통 기업)한테 돈을 받아내는 것이다. 언론은 뉴스로 사람을 끌어들이고, 기업은 많은 사람이 보는 신문에 광고를 올려 광고효과를 냈다. 이때부터 언론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의 소비자(독자)가 아닌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기 시작했다.
11. 여기서 언론에게 중요해지는 게 발행부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끌어들였느냐'의 증거고, 그것에 따라서 광고 단가와 광고유치 가능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도 매출과 직결되는 구독자 수와 발행부수는 중요했지만, 그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12. 광고플랫폼의 발행부수는 늘리는 방법은 독자가 좋아하는 콘텐츠가 아니어도 된다. 기업에 증빙하는 숫자로서 발행부수는 그 신문을 안읽는 독자여도 되고, 심지어 독자가 그 매체의 기사를 안좋아해도 상관 없기 때문이다. 즉 플랫폼의 발행부수는 허수여도 된다. 신문을 구독하면 사은품으로 자전거 같은 것들을 주던 때가 이 시기다.
13. 이 때 또 하나의 중대한 변화는 뉴스 콘텐츠가 '공짜'가 됐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플랫폼은 대중에게 무엇인가를 미끼상품으로 제공한다. 그 대부분은 무료 서비스다. 그정도가 아니면 사람이 안 모이니까. 언론이 발행부수를 늘리고 영향력을 확대하고 온라인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뉴스는 무상으로 제공되는 콘텐츠가 되기 시작했다.
13. 그러다 어느 순간, 언론은 플랫폼의 지위를 뺏긴다. 포털이 등장하면서다. 뉴스 소비는 각 언론사의 신문이나 홈페이지가 아니라 포털에서 이뤄진다. 뉴스 콘텐츠가 공짜가 된게 자충수가 됐다. 광고 플랫폼이 되기 위해 제공했던 무료 뉴스 콘텐츠가 포털을 통해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포털의 영향력을 키워주다가 아예 플랫폼의 자리를 포털에게 내준 셈이다.
14. 이때부터 시장은 '언론-포털-독자'의 구조가 된다. 독자는 포털을 통해 뉴스 콘텐츠를 소비하고, 언론은 포털에 뉴스를 공급하는 하청업체 처지가 됐다. 이건 더 이상 언론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는걸 의미한다. 자연스럽게 기업의 진짜 광고는 포털이 가져갔다.
15. 그런데, 이런 하청업체 모델에서도 언론은 여전히 기업 광고비로 먹고 산다. 어떻게? 언론은 더 이상 플랫폼이 아닌데 기업은 왜 플랫폼도 아닌 언론에 광고비를 지불하는가? 신문에 광고 내도 아무도 안 보는데 왜 기업은 신문에 광고를 내나?
16. 기업은 언론의 광고효과가 떨어지는 대신 다른 걸 원한다. 콘텐츠에 손을 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더이상 플랫폼으로 작동하지 않는 언론에게 광고효과를 기대하지 않고, 대신 포털을 통해 유통되는 콘텐츠가 우호적이거나 또는 비우호적인 콘텐츠가 나오지 않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17. 언론은 생존을 위해 기업이 원하는 것을 내놓는다. 그건 기업에 우호적이면서도 광고가 아닌 교묘한 형태의 콘텐츠이거나. 반대로 기업에 아주 비우호적인 뉴스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자신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만드는 전략이다. 그 돈의 지급 형태가 '광고'일뿐 진짜 광고는 아니다. 언론사들이 포럼이나 여러 행사로 지급 채널을 다양화 하기도 했지만, 그 성격이 우호적/비우호적 콘텐츠를 사고 파는 것은 마찬가지다.
18. 결국 전반적인 흐름을 봤을 때 뉴스는 독자로부터 멀어지고 기업에게 가까워진다. 독자가 원하는 기사에서 기업이 원하는(또는 원하지 않는) 기사로의 기나긴 여정인 셈이다.
19. 최근에는 이 모델을 벗어나려는 언론의 움직임도 있다. 유료 콘텐츠 모델이다. 옛날처럼 독자로부터 직접 수익을 얻고, 대신 독자 친화적인 콘텐츠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20. 쉽지 않다. 포털의 플랫폼 지위는 여전히 견고하다. 독자가 굳이 편한 플랫폼을 벗어날만큼의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을까. 또한 이전 단계에서 뉴스를 공짜로 소비하던 독자는 콘텐츠에 돈을 지불할 마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