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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승민 May 21. 2021

혼인신고 왜 있을까

인터넷 결혼 준비 카페, 맘카페 등에는 ‘혼인신고의 유불리’와 ‘최적의 시점’을 묻는 글이 많다. “혼인신고 다들 언제쯤 하셨나요?” “청약 때문에 혼인신고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와 같은 글이다. 댓글에는 “요새 결혼 후 2년 정도는 안 하는 것 같다” “저도 안 했는데 10년 이상 안 할 예정”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등의 반응이 주를 이룬다.

 

그렇다면 애초에 혼인신고는 왜 생겼을까. 


법은 국가가 개인의 혼인 및 가족생활을 보장하도록 규정한다(헌법 제36조 1항). 국가 구성의 기초가 되는 가족을 사회적 통념과 상식의 테두리 안에서 유지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를 위해 ‘혼인관계’라는 개념을 법으로 정해놓고 각종 권리와 의무를 지니도록 했다. 양육, 재산권 행사, 부양, 동거, 상속, 채무 연대책임 같은 것들이다. '결혼한 이들 사이라면 응당 해야 할 것들과 누려야 할 것들'을 모아 법의 테두리에 넣은 셈이다. 


쉽게 말해 법은 혼인의 '먹튀 방지'를 방지하려고 한다. 결혼했으면 서로 잘 돌봐야 하고, 애도 잘 돌봐야 하고, 적어도 같이 살고, 재산도 공동책임인데, 혹시나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의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어길시에는 형법으로 징역을 살수도 있고, 이를 바탕으로 이혼의 귀책사유를 가릴 수도 있게 된다.   

 

다만 법의 적용에는 뚜렷한 기준이 필요할 수밖에 없고, 혼인관계 역시 법의 영역으로 들어간 순간 잣대가 필요했다. 경우에 따라서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우리는 결혼한 사이’라고, 또는 반대로 ‘부부가 아니다’라고 우길 수도 있지 않나. 여기서 문제는 ‘혼인관계’는 어떤 기준으로 증명할 것인가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와 달리 생물학적 근거도 없고, 노사관계처럼 계약 관계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채택한 방법이 ‘법률혼주의’다. 서류상으로 신고된 관계만 법률적인, 즉 국가가 보장하는 ‘혼인’으로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혼인관계는 ‘법률에 따라 신고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민법 제812조 1항)’고 돼 있다. 즉, 혼인신고를 한 관계만을 부부로 보고 법적 권리도 의무도 누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법률혼과 배치되는 ‘사실혼’ 개념도 있다. 실질적으로는 혼인생활을 영위하여 사회적으로 혼인관계에 있다고 인정되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률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관계다. 원칙적으로 보면 이 관계는 앞서 말한 혼인관계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받지 못한다. 

 

그러나 엄격하게 법률혼만 적용하면 문제가 생긴다. 1928년 처음 관청 신고가 혼인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 이후 지속적으로 사회적 혼란이 빚어졌는데, 특히 당시에는 혼례만으로 혼인이 완성된 것으로 여긴 여성들이 피해를 입는 일이 많았다. 결국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실혼’ 개념을 만들어졌다. 혼인신고는 안 했지만 실질적으로 혼인관계가 성립함을 증명하면 효력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후 수많은 분쟁을 거쳐 사실혼의 제도적 보완도 이뤄졌다. 지금에 이르러 사실혼 배우자는 사실혼 관계 해소(사실상 이혼)을 할 경우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배우자 사망시 일정 범위 내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임차권을 승계할 수 있고, 근로기준법·산업재해보상법과 여러 연금법에 근거해 유족연금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사실혼의 적용범위와 의미가 커지면서 반대로 법률혼의 의미는 점점 옅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법률혼이 아니더라도 법률혼만큼 법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면 뭐하러 혼인신고를 하겠는가. 

 

여기에 이혼 증가로 혼인신고에 대한 부담감은 커지는데 그 반대급부로 이혼 과정에서의 재산분할의 위험은 줄었다는 측면도 있다. 전자는 ‘혹시나 이혼하게 될 지도 모르는데 서류에 기록 남길 필요 있는가’라는 의문이고, 후자는 ‘혼인신고 없이 이혼하게 되더라도 손해볼 거 전혀 없다’는 생각이다. 

 

과거 혼인신고의 강한 동인 중 하나는 이혼하게 됐을 때 재산분할의 문제 때문이었다. 특히 여성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면서 재산의 공동형성을 증명할 필요성이 줄었다. 이제는 아예 재산 형성과 관리를 따로 하는 경우도 많다. 사전에 계약관계를 통해 이런 갈등이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많다. 

 

가족관념의 변화 때문에 혼인신고를 거부하는 사례도 늘었다. 통계청이 내놓은 ‘2020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남녀가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59.7%로 10년 전(40.5%)보다 늘었다. 젊은 부부뿐 아니라 노인층에서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이성과 장기간 함께 사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가뜩이나 혼인신고의 필요성이 줄어든 상황에서 최근 정부정책은 무용론에 기름을 부었다. 일몰적 성격의 신혼부부 지원, 가구 단위의 과세의 불리함 등 경제적 이유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야 부동산 청약도 2번 할 수 있고, 2주택 중과세도 피할 수 있다. 신혼부부 대상 혜택을 준다지만 그것도 소득이(그것도 합산소득이) 일정수준 이하여야만 받을 수 있어 웬만한 이들에겐 쓸모가 없다. 쓸만한 혜택이 있다면 결혼 했을 때가 아니라 그 혜택이 필요할때까지 미뤄뒀다 신고하면 된다. 

 

어쩌면 이런 경제적 이유는 가족의 형성이라는 거창한 개념에 비해서는 지엽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이미 과거처럼 법률혼의 의미가 강하지 않은 상황이라 혼인신고는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선택지가 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가족의 개념을 확장하고 또 다른 혼인관계 또는 가족관계의 지위를 인정해주는 제도를 만들자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혼인신고를 바라보는 일련의 흐름을 봤을 때는 어쩌면 그 ‘지위’ 자체의 필요성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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