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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승민 Jul 06. 2023

전문용어

▲ 최근 전문용어들이 일상 용어로 판을 친다. 공황장애, 우울증, PTSD, 소시오패스, 가스라이팅 등등. 연예인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SNS를 통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입에 달고 있다. 최근 한 축구선수의 사생활을 폭로한 이는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 물론, 이런 단어들이 말맛을 살리기도 한다. '가마솥을 보니 PTSD가 세게 오네'라고 하면 의미가 전달되면서도 적당한 유머가 가미된 말로 들린다. 


▲ 그러나 복잡한 전문용어를 일상에 단순하게 적용하다보니 오남용될 때도 많다. 예컨대, 가스라이팅은 사기를 당하거나 속은 것과는 다른 의미지만, 이제는 그렇게 쓰인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역시 복잡한 진단이 필요하지만 지금은 기분이 안좋으면 쓰이는 일반명사가 됐다. 


▲ 이때는 유머도 담지 않고, 오히려 사실관계가 중요한 상황에서 자신의 상태나 피해를 강조하는 목적으로만 쓰이곤 한다. 가령, '속았다'와 다르게 '가스라이팅 당했다'는 표현은 '속인놈이 아주 나쁜놈이고, 속은 것에 내 과실은 전혀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도 의학적인 목적보다 '내 상태가 이정도다' 또는 '나 이런 사람이다'라는 속뜻이 담긴듯 하다. 


▲ 우려되는 건 내성이다. 심각한 상황을 뜻하는 말들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우울증이란 단어가 가까워지면서 그것을 예방하고 색안경을 없애는 효과가 생겼다. 그러나 어떤 말들은 지나치게 반복적으로 노출됨으로 인해서 오히려 심각해야 할 그것이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곤 한다. 마치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도 긴장감이 떨어지는 한국 사람처럼 말이다. 


▲ 의미가 불분명하고 모호해지면서 소통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너때문에 우울증 걸렸어'라는 말에 우울증에 대한 해석이 다른 남자는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따질 수 있고, '가스라이팅' 발언을 두고 실제 행사 여부를 두고 법적 다툼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말은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지만, 어떤 말은 정확한 정의와 구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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