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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매니아 Jun 14. 2021

노인 피의자

 보통 범죄학이나 수사실무에서 ‘노인’은 범죄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존재로 다뤄진다. 또, 그것이 객관적 사실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고령화 시대를 맞아 범죄자의 연령도 높아지는 현상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러 법에서 규정한 ‘노인’의 연령이 각기 다른데, 대검찰청의 「범죄분석」에서는 만 65세 이상의 사람을 고령 범죄자로 보고 범죄통계를 내고 있다. 

 위 「범죄분석」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고령 범죄자에 의한 범죄 건수는 물론이고 전체 범죄에 대한 비율 역시 꾸준히 증가세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통계상으로는 만 65세 이상 범죄자에 의한 범죄가 전체 범죄 대비 약 5~6%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구체적인 수를 헤아려 보지는 않았지만, 나도 검사실에서 조사하는 피의자 중 통계 수치와 비슷하게 20명에 한 명 꼴로 65세 이상 피의자를 조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하에서는 만 65세 이상의 고령 범죄자, 피의자를 ‘노인 피의자’라고 하도록 하겠다. 노인 피의자들이 수사를 받는 죄명은 다양하다. 노인들이 범하는 형법상 범죄 중에서는 절도, 폭행, 사기 비율이 대다수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러나, 절도, 폭행과 같은 범죄는 검찰에서 별도의 추가 수사 없이 검사가 처분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검사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검찰수사관에게 넘겨준 노인 피의자의 기록들 중 상당수가 사기죄 관련이었던 것 같다. 차용사기, 보험사기, 다단계 금융사기, 곗돈 사기 등등... 노령 피의자들의 사기 혐의는 대개 아주 치밀하거나 죄질이 나쁜 편은 아니다. 노인 피의자들을 이용하는 더 나쁜(보통은 젊은) 사람들의 꾐에 빠져 범행에 가담하는 경우도 많고, 다단계 금융사기처럼 본인도 범죄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또, 본인이 주도적으로 하는 범죄 역시 범행수법이 다소 어리숙하거나 악의적이지는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는 엄연히 존재하고, 범행수법이나 범행 의도가 악의적인 것이 아니라고 해서 피해회복이 빨리 또는 충실히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수사실무상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뿐만 아니라, 노인 피의자들의 일반적인 경향이 그렇다는 것이지, 물론 예외도 존재한다. 오히려, 젊은 시절부터 각종의 범죄와 친하게 지내면서 위법성에 대한 인식이나 불법을 저지르는 것에 대한 죄책감 따위는 벗어던진 지 오래인 노인 피의자들도 많다. 오랫동안 경찰서, 검찰청, 법원, 교도소 등을 들락날락거리면서 익힌 노하우와 축적된 지식으로 조사하는 사람을 농락하려고 하는 노인 피의자들이 꽤 있다.     



 노인 피의자들의 일반적인 성향을 떠나서 노인 피의자들 중에는 본인이 직접 또는 변호인 의견서를 통해 자신이 고령임을 이유로 선처를 바란다는 취지의 탄원을 검사에게 하는 이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피의자가 고령이라고 해서, 그 이유만으로 검찰에서 선처를 해 주는 법은 드물다. 범인의 연령 역시 분명히 양형시 고려 요소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수사 단계에서는 피의자가 나이가 많다는 것이 피의자에게 유리한 요소로 작용되지는 않는 편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젊은 사람에 비해 더 오랜 세월 도덕 등 규범을 내면화하여 더욱 법을 준수해야 하는 사람으로 기대되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법원에서는 피고인이 고령인 점을 고려하여 형을 정하였다고 판결문에 판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검사나 검찰수사관이 검찰 수사단계에서 노인 피의자에게 선처를 해 주거나 봐줄 수 있는 영역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노인 피의자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것은 조사가 끝난 후 노안(老眼) 등의 이유로 조서열람을 어려워하는 노인 피의자들을 위해 조서를 읽어 주었다는 점이다. 피의자가 실제 범죄를 저질렀든 아니든 장시간 조사를 받는 것 자체가 고역인데, 조사 후 최소 10장 많게는 20장도 넘어가는 조서를 처음부터 읽어보라고 하면 65세 이상의 고령 피의자 중 상당수는 조서를 읽지 않겠다고 반응한다. “아휴, 됐습니다. 검사님 하고 수사관님이 조사한 거 맞게 적었겠지요.” “눈이 안 보여서 못 읽겠습니다.” 등등의 말을 할 때, “아 그렇군요, 그럼 조서열람을 한 것으로 처리하겠습니다. 나중에 다른 말하시면 안 돼요?”라고 하고 피의자 간인 및 서명날인을 받을 수는 없다. 조서열람 과정은 진술의 임의성 및 조서의 증거능력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노인 피의자들에게는 조서의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주곤 했었다. 노인 피의자의 죄질이나 조사태도를 떠나, 그런 작업을 할 때마다 노인 피의자는 감사함을 표시했고, 나 역시 많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검사실에서 노인 피의자들을 수사하면서 종종 사람의 나이에 비례해서 이성이나 도덕성도 높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한편으로는 대개 기록검토 및 조사까지 10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을 투자해서, 수십 년 이상의 세월을 겪은 사람의 가치관이나 생각 등 인생에 대해 예단을 갖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수사기관 종사자는 그 사람의 인생을 통관하는 것이 아니고 기록에 드러난 특정 시점, 특정 행위에 집중해서 법에 위반됨이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라는 생각에 이르면, 그런 걱정은 누그러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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