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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매니아 Jun 13. 2021

외국인 피의자


 1990년대 이래로 본격적으로 진행된 세계화의 물결 그리고 21세기를 전후하여 시작되고 최근에 특히 심화된 한류(K-) 열풍에 따라 국내에 거주 및 체류하거나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의 수가 급증하였다. 이에 상응하여 외국인 범죄도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외국인 범죄자에 대하여 체포·구속 등 인신구속을 하는 경우에는 ‘영사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따라 영사접견권이 있음을 통지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반하였을 때에는 수사기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에 해당해 국가가 배상까지 하게 될 수 있다.

 그밖에 외국인 피의자를 수사할 때 절차상 특칙이 있다면(사실 너무 당연한 것이어서, 특칙이라고 말하기도 그렇다), 외국인 피의자를 조사할 경우에는 통역인의 참여하에 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조사를 하는 검사나 수사관이 해당 외국어를 아무리 잘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검사나 경찰관이 유창한 외국어 실력으로 피의자를 신문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는 주인공인 검사나 경찰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할 뿐이다. 




 외국인 피의자를 수사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몇 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보이스피싱 범죄 사건의 구속 피의자로 송치된 말레이시아 국적의 사람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피의자는 보이스피싱 피해자로부터 직접 돈을 건네받거나 보이스피싱 다른 공범자가 지시한 대로 피해자가 보관해 놓은 장소로 가서 돈을 가져오는 역할을 맡은 이른바 현금 수거책이었다. 

 본격적인 피의자 조사에 앞서 통역인과 잠시 면담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당 피의자의 통역을 맡은 통역사는 면담에서 “국내에 말레이시아어 통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자신이 20년 이상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말레이시아인 범죄자가 있을 때 통역을 해 왔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에 검찰과 경찰에서 말레이시아어 통역수요가 급증하였다는 말을 했다.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물어보니, 예전에는 말레이시아 통역 요청이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였는데, 약 3년 전부터 1년에 10회 이상으로 통역 요청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엄격한 이슬람교의 율법에 따라 생활하며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 착한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최근 들어 한국에서 범죄에 연관되는 빈도가 높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말을 덧붙였다.


 통역사를 대동한 말레이시아 피의자 조사가 마친 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과연 국내에서 말레이시아인에 의한 범죄는 거의 없었다가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운반책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현상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먼저 말레이시아 사람들 대부분이 중국어를 할 줄 알기 때문에 조선족이 많은 보이스피싱 범죄단에서 이들을 공범으로 활용하기에 편하다는 것 그리고 보이스피싱 범죄를 단속하려는 수사기관에 주요 경계 대상이 되는 조선족보다는 꼬리 자르기가 쉽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 말레이시아 피의자는 운반책으로 검거된 사람들이 흔히 하는 변명처럼 ‘페이스북을 하다가 한국에서 간단한 심부름을 해 주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한국에 입국했다. 나는 위챗에서 만난 중국인이 시키는 대로 심부름만 하고 돈을 받으려고 했던 것뿐인데 경찰에 체포되는 바람에 돈도 못 받았다. 보이스피싱이나 범죄 집단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피의자가 말레이시아에 있을 때 본 페이스북 광고에는 위와 같은 심부름을 하면 월 최소 10,000링깃을 벌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화폐 단위인 1링깃이 한화 285원 정도이니 한국 돈으로 계산하면 285만 원가량의 심부름 값을 주겠다고 한 셈이다. 말레이시아 근로자 평균 월급이 어느 정도 되냐고 물으니 2,000~2,500링깃 정도 된다고 했다. 이는 조사 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확인한 것과 거의 비슷했다. 다시, 말레이시아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얼마나 벌었냐고 물으니 액세서리 판매업을 하면서 2,000링깃 정도를 벌었다고 했다. 그래서 단순한 심부름만 하고 본국에서 일할 때보다 4~5배의 돈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느냐, 범죄와 연관성이 있는 위험이 수반된다는 것 아니겠냐고 물으면서 추궁하였다. 

 이에 대해 피의자는 별다른 대꾸는 하지 못했지만, 보이스피싱 및 범죄 집단에 대해서 아는 바도 들은 바도 없고 위챗을 통해 자기에게 지시하는 중국인의 말을 따랐을 뿐이며 억울하다는 취지의 변명을 계속 유지했다. 결국, 피의자는 사기죄로 기소되었다. 이후 법원에서 어떤 형을 선고받았는지는 확인해 보지 못하였지만, 무고한 서민들을 상대로 서민의 피 같은 돈을 편취하는 보이스피싱 사기 범죄는 단순 가담자라도 엄벌한다는 법원의 방침상 가벼운 형을 선고받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한 번은 자동차 엔진 특수절도 혐의로 러시아 국적의 사람 두 명을 여러 번 조사하게 되었다. 어떤 수사관은 보이스피싱 범죄로 구속된 조선족 피의자를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통역인이 통역하면서 계속 고개를 흔들더니 조사 후에는 그 피의자 통역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피력했다고 했다. 통역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많은 피의자를 통역해 봤지만, 이 사람은 질이 너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이 말한 내용 중에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고 차마 통역하기 힘든 부분들은 알아서 걸렀습니다. 통역을 하다 보니 제정신 건강에 너무 해로운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다른 통역인을 부르십시오, 저는 도저히 못하겠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러시아 국적의 피의자도 비슷했다. 전형적인 러시아 이름의 순수 러시아인 한 명과 한국계 러시아인 한 명이 특수절도 피의자였는데, 두 명 모두 이미 자동차관리법위반으로 구속 수감 중인 상태였다. 이 사건 고소인은 한국계 러시아인 한 명만 고소한 상태였는데, 그 한국계 러시아인 피의자의 공동범행에 대한 진술과 경찰에서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받던 순수 러시아인의 자백 진술이 있어 순수 러시아인을 특수절도 혐의로 인지하여 입건하고 조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순수 러시아인 피의자(이하 ‘피의자’라고만 함)가 검찰에서는 경찰에서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받았을 때 한 진술을 통역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뒤집었다. 그리고 흥분하여 큰 소리를 지르면서 조사를 받았다. 질문 하나를 하면 피의자가 한참을 떠들어 대는데 통역인이 전달해 주는 답은 간결했다. 특히 피의자의 표정이 받고 있는 조사에 불만 있음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다. 하도 말을 많이 하길래 통역인에게 전후 사정 같은 것 말고 질문에 대한 핵심적인 답만 간결하게 할 것을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피의자는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는 듯이 대답을 했다. 순간순간 스치는 통역인의 눈빛에서 난처함과 당혹감을 읽을 수 있었고, 피의자가 좋지 않은 언사를 하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피의자가 하도 답변을 장황하게 하는 바람에 조사가 꽤 길어졌다. 그래서 세 차례에 걸쳐 조사를 하게 되었다. 검사님, 통역인, 나 모두 그 골치 아픈 피의자를 세 번씩이나 조사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간신히 조사를 다 마치고 검사님과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해 보았다.    

 피의자 주장대로 경찰 조사에서의 진술이 통역 잘못으로 진의가 잘못 전달된 것인지 여부에 초점을 맞췄다. 정말 혹시라도 외국인이어서 의사소통상의 문제 때문에 죄를 뒤집어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사건은 물적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에, 사건 관계인들의 진술에 의존해서 혐의 유무를 판단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피의자의 특수절도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여러 명의 사건 관계인들의 진술이 구체성, 일관성이 있었고, 공범인 피의자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 굳이 함께 일했던 동료를 죄가 있다고 몰아갈 이유가 없어 보였다. 결국 검사님은 이 러시아 피의자를 특수절도 혐의로 기소하였고 재판에서도 공소유지가 되어 유죄판결까지 확정되었다.       



 일반적으로 검찰수사관은 근무하면서 외국인 범죄 수사에 대한 전문성을 쌓기가 어려운 편이다. 외국인 거주자가 많은 서울남부지검, 인천지검, 안산지청, 부산지검 등 몇 개 청과 상징적 의미가 있는 서울중앙지검 정도만 외사부와 같은 외국인 범죄 전담부서가 있을 뿐 대부분의 청에서는 외국인을 조사하거나 수사할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 어쩌다 외국인 피의자가 구속사건으로 송치되면 이를 조사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가끔씩 외국인 범죄자를 수사 또는 조사하게 되면 낯설어하거나 당황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도 1년에 한두 번 꼴로 외국인 피의자 수사를 했었기 때문에 이 분야에 있어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또, 누구도 나한테 외국인 피의자를 조사할 때 팁이나 유의할 점 같은 것을 가르쳐 준 적은 없다. 그렇지만 외국인 범죄에 대해 꾸준히 사례를 접하고 혼자 연구하면서, 내 나름대로 외국인범죄를 수사할 때 지켜야 할 일종의 원칙을 세우게 되었다.      


 첫째는 외국인 피의자에게 내국인 피의자와 같은 수준의 형사사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자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수사과정에서 불이익한 처우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외국인 피의자들은 남의 나라 영토에서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외국인 ‘범죄자’가 아니고 ‘피의자’이고, 피의자 신분은 “범죄 혐의가 있는” 상태일 뿐 혐의가 있다고 확정적으로 판단된 것은 아니다. 

 외국인 피의자들은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 서투른 언어, 형사법체계 및 형사절차에 대한 무지 등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오해를 받거나 본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 이상의 책임을 떠안게 되는 경우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또 실제로 이러한 외국인 피의자의 약점을 악용하는 수사기관 종사자들도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전도연, 고수 주연의 영화 「집으로 가는 길」에서도 이와 같이 낯선 환경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려 고통을 겪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외국인 피의자도 수사기관에 대해 제대로 된 방어를 하지 못해 자신이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 범인으로 몰리거나 자신이 한 행동 이상의 책임부담을 강요받을 수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외국인 피의자를 조사하게 되면 해당 외국인의 출신 국가의 문화 등을 비롯한 배경지식을 쌓고 조사에 임하려고 노력했다. 외국인 피의자를 조사하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외국인 범죄 사건이 있으면 인터넷 검색이나 서적을 통해 해당 국가에 대한 기초적인 사항과 형사사법체계 등에 대해서 공부를 한 뒤 수사에 임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예를 들어, 앞서 에피소드에서 언급했던 말레이시아인의 경우, 경찰에서 조사를 여러 차례 받았는데 검찰에서 다시 조사를 받는 것에 대해서 납득이 잘 안 간다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자신이 외국인이라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검찰제도가 없는 나라인 말레이시아 출신의 사람이 그런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구속 송치된 당일에도 한국의 검찰 제도에 대해서 개략적으로 설명해 주었지만, 이후 한 차례 더 소환하여 조사를 할 때에도 다시 한번 한국의 형사사법절차와 검찰 수사의 필요성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고 조사를 진행하였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피의자가 자신의 혐의에 대해서는 계속 억울하다고 호소하였지만 대한민국의 형사사법절차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에는 절차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언어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하다. 언어를 ‘문화의 색인’이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피의자가 속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 나라 언어를 단기간에 공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재미 삼아 안녕을 의미하는 스페인어 ‘올라(Hola)’, 러시아어 ‘즈드랍스트부이쩨’와 같은 인사말 정도만 익히고 나머지는 통역에 일임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 피의자 조사는 통역을 거치기 때문에 질문과 답변이 두 배의 시간이 걸리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다 보니 조급한 마음에 피의자에게 답변을 재촉하거나 피의자의 설명을 압축해서 짧게 정리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수사관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통역을 통해서 피의자의 말이 전달되기 때문에, 내국인과 같은 진술의 정확도를 기대할 수는 없다. 내국인을 조사할 때도 진술의 작은 뉘앙스 차이로 혐의 유무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조사자와 말이 통하지 않는 피조사자의 경우에는 진술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서 더 시간을 투자하고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내국인 조사에 비해 2배의 시간이 아니라 3배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외국인 피의자 수사를 위해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철저하고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이에 대해서 수사 검사님에게 양해를 구했음은 물론이다.


 또 다른 원칙은 외국인 피의자들이 대한민국 법과 형사사법절차를 우습게 여기지 않도록 엄정한 수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위에서 말한 원칙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울한 일을 없도록 하자는 것과 외국인 피의자에게 엄정한 수사와 법집행을 해야 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로 모순이 발생할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수사기관이 피의자와의 언어나 문화 차이로 인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필요 이상으로 피의자를 몰아붙이거나 피의자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울 우려도 있다고 하였는데, 외국인 피의자들이 오히려 그런 언어, 문화 차이로 인한 오해나 소통의 어려움을 악용하기도 한다.


 흔히, 외국인 수사를 하는 사람은 ‘형사사법절차에 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이라는 자세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한 나라의 외교관이라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외교관의 가장 큰 임무는 자국과 자국민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지만, 외교관의 언행과 활동은 한 나라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따라서, 앞서 말한 원칙처럼 피의자가 외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방어권 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억울함을 겪지 않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엄정한 수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법질서와 형사사법시스템을 농락하거나 만만히 여기지 못하도록 하는 것 역시 외국인을 수사하는 검찰수사관의 임무라는 생각으로 수사에 임해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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