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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매니아 Jun 08. 2021

봉투 주던 고소인

 100만 원 상당의 공사대금을 못 받았다고 공사를 도급 준 업자를 사기죄로 고소한 사람이 있었다. 사건 기록을 검토해 보니 피의자의 사정이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고 수사 및 범죄경력 조회결과도 피의자가 특별히 악하게 살아온 것 같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았다. 피의자와 고소인을 모두 불러 대질조사를 하면서 양자의 입장을 확인했다.


 피의자는 다소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하면서 자금 압박을 받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고소인을 비롯한 몇 명의 공사업자에게 공사대금 채무를 지고 이를 갚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처음부터 고소인을 속여서 공사대금을 편취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고, 투자한 자금이 회수되는 대로 즉시 고소인에게 변제할 생각이라고 했다. 사실 이런 식의 주장과 진술은 차용금 사기나 각종 대금편취 사기 사건에서 피의자들의 전형적인 진술 패턴 또는 변명 취지이기는 하다. 고소인은 자기도 피의자가 딱히 악의적인 사기꾼이라고 생각은 안 하지만 직원 데리고 일을 하는데 반년 가까이 돈을 못 받고 있으니 형사고소를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연체이자 같은 것은 필요 없고 약속한 공사대금 100만 원만 주면 바로 고소취소를 할 생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피의자의 진술과 기록에 드러난 관련 증거를 종합해 보니, 이 사안은 민사적인 분쟁의 성격이 강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피의자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였기 때문에 애초의 변제능력에 의심이 가는 사정이 있었다. 또 그 과정에서 피의자가 여러 사람에게 빚을 졌는데 다른 채무에 대해서는 일부 변제하거나 담보까지 제공하면서도 유독 고소인의 공사대금에 대해서는 갚으려는 최소한의 액션도 취하지 않는 듯한 모습도 있어 사기죄 성립이 안 된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미심쩍은 부분을 들어 피의자를 조금 더 추궁하였다. 고소인에 대한 공사대금 채무가 소액이라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아닌지, “우는 아이 젖 더 준다.”는 속담처럼 다른 채권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니 그 사람들에게만 변제하거나 담보설정과 같은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고소인은 방치한 것이 아닌지를 집중적으로 물어보았다. 검사님도 조사를 하면서 피의자의 사업확장 및 변제계획에 대한 안일한 태도를 지적하였다. 



 결국 피의자는 ‘어떻게든 1주일 내 고소인의 돈을 갚고 합의하겠다.’고 하였다. 조사 내내 피의자에 대한 불신을 보이던 고소인도 피의자가 검사와 검찰수사관 앞에서 약속을 하니 안심이 되었는지 집에 돌아가 피의자의 연락을 기다리겠다고 하였다. 대질조사 한 바로 다음 날 아침에 고소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고소인의 들뜬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계장님, 공사비 방금 전에 입금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 그래요? 잘 되었네요. 그럼 어제 이야기한 대로 고소취하장 제출해 주세요, 메모 가능한가요? 팩스 번호 알려 드릴게요.”
 “아이고, 계장님, 제가 직접 찾아뵈어야지요. 검사님 하고 계장님한테 너무 감사해서 어떻게든 보답을 하는 게 도리죠.”
 “무슨 보답이요? 고소취하장은 팩스로 보내도 되니까 굳이 찾아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아닙니다, 이따 오후에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진짜로 고소인이 얼마 지나지 않아 검사실을 방문하였다. 나에게 직접 고소취소장을 제출하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더니 내 책상 위로 슬쩍 흰색 봉투 두 개를 올려놓은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피의자로부터 못 받을 것이라고 반 포기한 돈을 받았으니 결과적으로 돈을 받을 수 있게 해 준 사람에게 주는 사례비 명목으로 돈 봉투를 건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대충 다 알면서도 이게 뭐냐고 물어보자, 고소인은 멋쩍게 웃으면서 “별거 아닙니다. 두 분 덕분에 떼인 돈을 받게 되었는데 당연히 이렇게라도 감사 표시를 해야지요.”라고 하면서 황급히 검사실을 빠져나갔다. 복도로 나가 고소인을 쫓아가서 말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범죄가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절대로 이런 것 하지 마세요.”라고 하면서 돈 봉투 두 장을 돌려주었다. 고소인은 잠시 멍하니 서 있더니 다시 후다닥 복도 끝으로 달려가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잠시 뒤 검사실로 들어온 검사님에게 앞서 일어난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검사님이 웃으면서 보인 반응이 이러했다.


 “그 양반, 계산 하나는 확실한 사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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