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실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사람의 성별은 대부분 남성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여성 범죄자들이 증가하는 만큼 여성 피의자를 조사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법무연수원에서 발간한 2018년 범죄백서에 따르면, 2008년에 여성범죄의 비율이 15.9퍼센트였던 것이 이후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다가 2017년에는 18.8퍼센트까지 오른 것이 확인된다.
여성 피의자라고 해서 남성 피의자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없다. 그러나 접해 본 여성 피의자 중에는 특이점이 있거나 수사할 때 특히 유의해야 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 보고자 한다.
더러 여성임을 내세워 검사나 검찰수사관을 유혹하려고 하는 피의자들이 있다. 콧소리를 내면서 애교를 떨기도 하고, 자신이 앉아 있는 의자를 바짝 끌어와 속삭이듯이 말을 하거나, 심지어 가벼운 터치를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유형의 여성 피의자가 분명 존재하고 몇몇을 조사해 보기도 했지만, 이들을 죄명이나 직업으로 세분화할 만큼의 표본을 확보한 정도는 아니다. 사기죄나 횡령죄 같은 이욕범죄 혐의로 조사를 받는 경우도 있었고 유흥 쪽에서 일하는 피의자도 있었다.
이들을 보고 있으면,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으러 와서도 저렇게까지 행동하고 싶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피의자의 유혹에 넘어가 부적절한 처신을 한 사람들도 가끔씩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전략이 어느 정도는 성공하기도 하는 것 같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孤掌難鳴) 하지 않았던가!
이런 여성 피의자들보다 상대하기 힘든 유형이 조사를 받으면서 마냥 우는 피의자이다. 검사나 수사관을 유혹하려고 하는 피의자야 그런 행동을 적절히 제지하면서 조사를 진행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마냥 우는 피의자는 조사 도중 연신 휴지를 제공하면서 달래고 피의자의 울음이 잦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사를 재개하는 등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때문에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2시간 정도면 충분히 끝날 조사가 5시간, 6시간 진행되어 근무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간신히 힘겹게 조사를 마치고 조서열람을 시작하면, 또 한 번 설움에 북받치는지 조서를 읽으면서 한바탕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열람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렇게 조사를 받으면서 또는 조서 열람을 하면서 연신 우는 여성 피의자들의 심리는 어떤 것일까? 쉽게 이야기해서 왜 우는 것일까?
* 자기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수사기관에서 자기를 나쁜 사람이라고 하니 설움에 북받쳐서?
* 적발되지 않을 수 있었는데 운이 안 좋아 걸린 것이 억울해서?
* 과거에는 잘 나갔는데 또는 처음에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일이 잘 안 풀려서 수사기관에서 조사나 받 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해서?
* 고소인이나 피해자한테 진심으로 미안해서?
* 검사나 수사관의 동정심을 유발해서 선처를 받기 위해서?
등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또는 이 한두 가지나 두세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이런 유형의 여성 피의자의 심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어떤 여성 피의자들은 모성에 기대어 수사기관이나 법원 등 형사사법기관의 선처를 기대하기도 한다. 임신한 사실이나 주로 나이 어린 자녀 이야기를 하면서 동정심을 유발하는 식이다. 개인적으로는 임신 사실까지 속인 여성 피의자들은 경험하지는 못했으나, 유산이나 임신 사실까지 속이려고 했던 피의자들을 다루게 된 수사관들의 이야기는 들은 바 있다.
특히 임신한 피의자를 조사할 때는 산부와 태아의 건강을 고려하여 말투나 질문 등에 상당히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조사받으면서 자신의 임신 사실과 태아의 건강을 강조하는 피의자를 보고 있노라면 ‘당신이 그렇게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하는 사람이면, 더더욱 그런 행위를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한 마디 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도 여러 번 있었다. 그래도 그러한 충동을 억누르고 조심스럽게 조사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한 번은 친분이 있는 선배 수사관이 임신한 피의자성 참고인을 조사하다가 그 참고인이 유산하는 바람에 곤혹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그 이후에는 임신한 피의자를 조사할 때 말투나 태도를 더더욱 신경 쓰게 되었다. 실제로 대통령령인 「검사의 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수사지휘 및 사법경찰관리의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도 여성 사건을 수사할 때에는 ‘부드러운 어조로 조사하여야 한다.’고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가 아프다.”, “아이에게 필요한 생필품 살 돈이 없다.” 등의 말을 하여 수십 만원에서 수백 만원씩을 빌린 뒤, 이를 갚지 못해 사기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된 중앙아시아 출신의 여성이 있었다. 수사기관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편취행위를 하던 방식으로 줄곧 아이 핑계를 대며 범행의 불가피성에 대해 힘주어 주장했다. 검찰 수사단계에서 피의자의 죄질이 좋지 않고 피의자가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여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는데, 피의자는 구속여부가 결정되는 구속전피의자심문 법정에도 아이를 데려 나와 영장전담 판사에게 선처를 호소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당시 영장전담 판사는 피의자가 딸을 주변 사람들의 금전을 편취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이로써 지인들에게 수천 만원의 손해를 입히는 등 죄질이 불량하고, 도주 우려도 인정된다면서 구속영장을 발부하였다.
사실 유형별 피의자에 대한 이야기 중 노인 피의자, 외국인 피의자 등과는 달리 여성 피의자에 대한 글에 대해서는 고민을 했던 부분이다. 쓸까 말까도 고민했고 어떻게 쓸까도 신중하게 생각하였다. 요즘에는 특정 성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여혐”(여성 혐오)이니 “남혐”(남성 혐오)이니 하는 오해를 받기 쉬운 사회적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이번 장에서 다룬 내용도 달리 생각해 보면 그렇다. 여자 검사나 수사관을 유혹하려는 남성 피의자도 있을 수 있고, 부성애를 자극해서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남성 피의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또, 실제로 조사 도중 계속 우는 바람에 조사를 진행하기가 무척 힘들었던 남성 피의자도 있었고, 눈물까지는 아니어도 슬픈 표정으로 질문에 답하는데 소극적이어서 조사에 애를 먹게 한 남성 피의자들은 많이 있었다.
여혐이나 남혐 같은 말은 특정 성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부각해서 그 성을 혐오하거나 멸시하는 현상을 말한다. 여성은 책임감이 없고 남성에 의존적이라던가, 남성은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이라고 하면서 여성이나 남성의 특정 행동을 그러한 특성과 연관시켜 설명하려는 시도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글에서는 여성이라는 성별에 대해 이야기할 때 통용되는 특징을 부각하지도 않았고, 그에 대해 평가를 시도하지도 않았다. 세상의 절반이 남성인데 범죄자 비율은 여전히 남성이 여성의 5배 이상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두고 남혐이라고 하지 않듯이, 검사실에서 수사를 하면서 접한 일부 여성 피의자들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 여혐으로 오해받지는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