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실에서 근무하다 보면 많은 범죄피해자들을 접하게 된다. 피해자가 없거나 사회적 법익, 국가적 법익과 관련된 범죄는 피의자에 초점을 맞춰서 수사하면 충분하다. 반면, 폭행, 강간, 사기, 횡령 등 개인적 법익을 침해한 범죄의 경우에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만큼이나 피해자의 권익 보호와 지원 등에 대한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 또,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국가기관의 책무이고 검사, 검찰수사관, 경찰 같은 수사기관 종사자의 임무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이런 이상과는 동떨어져 있다. 오랫동안 범죄피해자는 형사사법절차에서 소외되어 있었고 홀대받아 왔다. 오히려 나쁜 짓을 저지르고 남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들이 더 주목받았고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들의 권리와 절차 보장을 위한 법과 제도들이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래서 형사소송법을 ‘피고인 인권신장의 역사’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반면, 범죄피해자는 형사사법절차에서 오랫동안 ‘잊혀진 존재(forgotten being)’였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사회적 이슈가 되는 형사사건에 피해자의 이름을 붙여 작명하는 관행이 있었는데, 이것만 봐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범죄피해자를 홀대하고 그 인권에 무관심하였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 「안산 여아 성폭행 사건」,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 등의 경우와 같이 우리는 피해자의 이름은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가해자의 이름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나 사건 발생한 지 한참 뒤에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피해자의 이름은 실명으로 내보내면서도 가해자는 김 모군, 최 모 씨와 같이 익명 처리하는 보도 관행도 있었다. 그만큼 사회 전체가 피해자의 명예나 인격권 보호에는 소홀했던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이와 같은 범죄피해자에 대한 홀대와 무관심에 대한 비판과 자성으로 2000년대 이후부터는 범죄피해자 보호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노력의 결실로 2005년 「범죄피해자보호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고,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설립, 각종 범죄예방 및 피해자지원을 위한 제도 명문화, 이에 대한 홍보책자의 발간 등 과거에 비해 범죄피해자의 지원과 보호는 괄목상대(刮目相對)한 수준으로 나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피해자들은 여전히 다양한 이유로 울분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다.
검사실에서 근무하면서 경험한 범죄피해자들의 생생한 목소리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첫째, “금전배상”에 대한 불만이다.
많은 사람들이 형사고소만 하면 고소당한 사람이 처벌도 받고 가해자로부터 피해보상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소가 아닌 인지 사건의 피해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검사의 사건 처분 후 사건이 재판으로 넘어갔다는 소리를 하면 돈은 언제,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수사기관은 돈 받아 주는 기관이 아니며 민사와 형사는 다르다고 한참 설명해도, 형사사법시스템이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오히려, 형사고소만 하면 상대방에 대한 처벌은 물론 금전배상까지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그 기대가 좌절되는 느낌에 왠지 모르게 억울한 감정까지 생기게 된다. 이와 같은 억울한 감정이 쌓이다 보면, 검찰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게 되고 수사기관, 나아가서는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마저 싹트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검찰은 2000년대 중반에 형사조정제도를 도입하여 활발히 운용하면서 형사절차에서도 금전배상 등 민사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어, 금전배상에 대한 피해자들의 불만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절차 지연”에 대한 불만이다.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형사고소를 하면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되어 빠른 시일 내에 고소에 대한 결과물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고소장 접수 후 한 달 이내면 어떤 형태로든 결론이 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봤다. 그러나, 고소인들이 바라는 바람직한 결과(상대방 처벌이나 피해회복)는 차치하더라도, 고소에 대한 처분이 결정되기까지 고소장 접수를 기준으로 석 달이 아니라 반년 심지어 1년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수사가 지연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피고소인이 출석을 거부하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이거나 혐의를 부인하면서 자료를 잔뜩 제출하여 그 자료에 대한 분석에 시간이 오래 걸려서일 수도 있다. 고소인이 고소 취지를 명확하게 하지 못해 고소내용을 보충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주장이 서로 달라 참고인조사 등 추가 조사가 필요해서일 수도 있다. 또는 혐의 유무 판단에 필요한 심리생리검사, DNA 검사, 디지털 포렌식 등의 결과가 나오는데 시간이 걸려서일 수도 있고, 수사 중 담당 검사 또는 담당 수사관이 교체되는 등 수사 외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수사가 지연될 수도 있다.
지연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고소인의 입장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은 피고소인의 범행으로 인한 피해와는 또 다른 2차 가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처럼 기약 없는 기다림이 길어지다 보면, 수사관이 피고소인과 결탁하거나 피고소인이 전관(前官)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서 실체를 은폐하고 있다는 식의 음모론이 솔솔 피어나기도 한다. 수사가 지연되어서 고소인에게 기다림의 고통을 주는 문제의 일부는 수사인력의 증원이라는 비교적 단선적인 방법으로도 어느 정도는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절차 지연에 대한 “불만”이라는 주관적 측면에 초점을 둘 때, 수사나 재판 단계에서 범죄피해자에게 진행상황에 대한 상세한 안내와 통지가 뒤따른다면 범죄피해자들의 막연한 불안감과 초조함의 상당 부분은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절차 참여”에 대한 불만이다.
범죄피해자는 수사단계나 재판단계를 불문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별로 없다. 고소 사건이든 인지 사건이든 경찰수사 초기에 피해 진술만 한 번 하고 난 뒤 그 후 상대방에 대한 형사재판이 종결될 때까지 단 한 번의 절차 참여 기회도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소인(피해자) 입장에서는 본인도 해당 사건의 엄연한 당사자인데, 절차가 종결될 때까지 특별한 발언 기회도 없이 절차에서 소외받는 듯한 느낌을 종종 받기 때문에 사법절차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누적되어 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런데, 형사사건에서 피해자(고소인)와 가해자(피고소인)는 민사소송에서의 원고, 피고와 같이 대립하는 당사자 관계가 아니다. 형사 재판단계에서는 공익의 대변자인 검사가 피고인(가해자)과 대립하는 당사자의 지위에서 주로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구하는 역할을 한다. 수사단계에서도 피해자는 수사기관의 도움을 받아 피해회복을 비롯한 권리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민사소송에서의 원고와 같은 절차 참여권 등의 보장은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여기서 일반인들의 생각과 실무 사이의 괴리가 발생하게 되고 수사기관, 법원에 대한 불만이 싹트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절차 지연」에 대한 불만과 같이, 모종의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불만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수사기관 또는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절차참여권을 법령에 명문으로 규정하여 제도화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많은 범죄피해자들이 수사과정, 재판에서 홀대받고 있다는 소리를 낸다는 것은 현재의 법과 제도에 미흡한 점이 많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검사의 가해자에게 부과한 벌금액수가 너무 작은 것이 불만인 피해자도 있고, 자신도 엄연한 피해자인데 수사과정에서 자신에게도 일정 책임이 있는 양 몰아갔다고 하면서 2차 가해라고 주장하는 피해자도 있고, 가해자로부터 배상도 받고 절차 참여도 보장받았지만 가해자로부터 사과 한마디 못 받았다면서 가해자가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따지는 피해자도 있다. 이처럼 범죄피해자들의 불만의 유형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듯이, 범죄피해자는 보호받고 지원받아야 한다. 예산과 인력 부족이라는 현실적 한계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범죄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이라는, 금액으로 평가 불가능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지름길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