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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매니아 Oct 17. 2021

보이스피싱 사기


 사기죄 성립이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쉽지 않은데, 이와 달리 명백히 사기죄가 성립하며 언론이나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범죄가 바로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 범죄이다. ‘보이스피싱’은 “전화를 이용해 개인정보를 알아낸 뒤 이를 범죄에 이용하는 전화금융사기 수법”으로 알려져 있다. 보이스피싱에는 여러 유형이 있지만, 가장 전형적인 수법은 금융감독원, 검찰, 경찰 등을 사칭하여 계좌가 도용되었으니(또는 특정인에 대한 수사결과 범죄에 연루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으니) 계좌에 있는 돈을 지정하는 계좌로 이체하거나 현금으로 인출하여 달라고 요청하고, 이에 속은 피해자들로부터 이체된 계좌의 돈을 현금 인출하거나 피해자로부터 직접 돈을 전달받아 이익을 챙기는 형태로 이뤄진다. 


 이때 금융기관 등을 사칭하는 사람들이 피해자로부터 돈을 직접 받아 챙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차명계좌를 이용하거나 직원이라는 사람을 보내 돈을 받은 뒤, 이 돈을 다시 중간운반책에게 전달하게 하고 또다시 최종적으로 보이스피싱 범행을 설계한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그 이익을 귀속하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때, 계좌를 빌려주고 계좌에 입금된 돈을 인출하여 중간운반책에게 전달하거나, 금융감독원 또는 OO캐피탈 직원이라고 하면서 피해자로부터 직접 현금을 건네받는 사람을 ‘현금수거책’ 또는 ‘현금인출책’이라고 부른다. 주로 수사기관에 의해 검거되는 사람들이 이 현금수거책들이며, 보이스피싱 범행을 설계하고 총괄하는 총책이나 주범이 검거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총책들은 주로 중국 등 외국에 본부나 콜센터를 두고, 팀장급 관리책, 모집책, 중간운반책, 현금수거책 등으로 역할 분담을 하여 조직적인 범행을 실행한다. 전체 보이스피싱 범행을 설계하고 사기단의 역할 분담을 조율하는 등 전체 범행을 장악하는 총책이나 이들의 지휘 하에 범행에 깊숙이 관여한 팀장급 관리책 등이 엄벌해야 할 중범죄자들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소 애매한 것은 구인광고나 대출광고 등을 보고 현금인출에 가담한 현금수거책들의 형사책임 유무이다. 이들은 대개 자신이 채권추심 업무를 하는 회사 직원으로 고용된 것으로 알고 있어서 채무자로부터 추심하는 돈을 받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하거나, 대출을 위해서는 은행계좌에 입출금 내역이 있어야 한다고 하여 이를 믿고 자신의 계좌에 입금된 돈을 인출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준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하며, 보이스피싱 사기 범행 또는 방조행위의 고의를 부인하곤 한다. 즉, 자신이 하는 일이 보이스피싱 범행이라거나 그러한 범행을 돕는 행위라는 것을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람의 머릿속은 들여다볼 수 없기에 주장만으로 그 진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지만, 현금수거책들의 변명이 천편일률적이어서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는 그와 같은 주장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아무런 근거 없이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하는 사람들은 다 나쁜 놈들이니 무조건 처벌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보이스피싱 범행수법이 널리 알려진 점이나 상식에 비추어 쉽게 이해되지 않는 사실 등이 보이스피싱 범행에 대한 인식 여부 판단에 고려 요소가 된다. 또한, 현금인출책의 구체적인 행동을 근거로 하여 고의성 여부를 판단하기도 한다. 특정 사안에서 가명을 사용하거나 신분 또는 직위를 속이는 등 보이스피싱 범행임을 알고 가담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행동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금인출책이 실제 사기 범행임을 알고 가담하였는지가 애매한 사건들은 무수히 존재한다. 이런 경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법언에 따라 무죄(또는 무혐의) 판단을 하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실무상으로는 이들의 변명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금수거책이 실제 보이스피싱 범행으로 인한 이익 편취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그 죄책이 가볍지 않고, 한순간에 수백에서 수천만 원을 잃게 되는 피해자들의 눈물과 고통에 대해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조금만 헤아려 본다면 현금인출책의 변명은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들의 눈물과 고통을 이야기하였는데, ‘안타깝다’라는  말이 부족한 사례들은 차고 넘친다. 실제 다뤘던 사건 중에서는 아들 결혼자금으로 준비해 둔 1억 3천만 원을 피해 본 어머님, 박봉의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8년 동안 모은 600만 원을 잃게 된 중년 여성, 단일 피해액으로 5억 원을 잃은 노신사 등과 같은 피해자들이 있었다. 얼마 전에는 보이스피싱으로 수백만 원 상당의 피해를 본 20대 취업준비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과 분노를 자아내게 하기도 했다.  

 언론에서 보이스피싱 범행수법이나 보이스피싱 범죄로 인한 광범위한 피해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각종 정부기관, 금융기관, 미디어에서 보이스피싱 예방책에 대해 열심히 홍보하고 있지만, 보이스피싱 범죄로 인한 피해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또, 많은 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는 연세 드신 분들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젊은 사람들이 보이스피싱의 마수에 걸리는 경우도 매우 많으며, 학력, 지위, 성별 등에 무관하게 이 범죄의 희생양이 되곤 한다. 


 그렇다면 왜 보이스피싱 범죄는 줄어들지 않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두 가지 정도 원인이 있다고 본다. 

 첫째는 보이스피싱 사기는 “공포심”이라는 인간 본연의 감정을 이용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범죄의 마수에 쉽게 걸리는 것 같다. 

 최근에 개봉된 『보이스』라는 영화에서 보이스피싱 사기 범죄단 총책으로 열연한 곽 프로(김무열 분)의 대사 중에 “보이스피싱은 무식과 무지를 파고드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희망과 공포를 파고드는 거지.”라는 대사가 있다. 나는 이 대사가 연령, 성별, 사회적 지위, 직업 등을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보이스피싱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이유를 압축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공포심을 이용한 전형적인 예로 자녀가 납치되었으니 특정 계좌로 돈을 입금하라고 하는 것이다. 10여 년 전에는 어떤 법원장도 이 수법에 당해 아들이 실제 납치된 것으로 오인해서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수천만 원을 이체해 주기도 하였다.     

 둘째는 범행 수법이 날로 교묘해지고, 보이스피싱 조직 또한 날이 갈수록 커지면서 치밀한 계획하에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 수사와 검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에는 과거와 같이 어눌한 조선족 말투로 전화해서 사기를 치려는 사람은 드물다. 인터넷에 보면 어눌한 말투와 어설픈 대사로 피싱을 하려다 오히려 전화받은 사람으로부터 쌍욕만 얻어먹고 당황해 전화를 끊어버리는 음성 파일도 올라오는데, 이제는 그런 고마운(?) 보이스피싱 사기꾼은 찾아보기 힘들다. 

 몇 년 전에 여름휴가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촌 동생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사촌 동생은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한 목소리로 “형, OOO 검사 알아?”라고 물었고, 이후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검사와 검찰수사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아 30분 이상 통화를 했고, 그들은 사촌 동생에게 “사기단이 검거가 되었는데, 검거 당시 OO 씨(사촌 동생) 명의의 통장이 발견되었다. 범죄에 연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검찰청에 출석해서 소명해야 한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촌 동생으로부터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들은 지 20초도 채 안 되어 “전형적인 보이스피싱이니 더 이상 전화받지도 대꾸하지도 말아라.”라는 소리가 내 입에서 나왔고, 사촌 동생은 내 말대로 그 이후에는 “그놈들” 전화를 받지 않아 다행히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호기심으로 사촌 동생이 녹음하였다는 “그놈들”과의 통화내용을 파일로 전송받아 들어봤다. 수사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되지도 않는 소리”로 들리는 이야기들이 종종 있었지만, 그들이 쓰는 용어나 말투, 어조로 봤을 때 보통 사람을 속이기에는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사칭하는 금융기관이나 수사기관의 홈페이지까지 진짜처럼 만들어 피해자들에게 전송하기도 하고, 피해자와 통화하면서 악성 앱을 설치하게 한 뒤 피해자의 통화나 문자를 감시하고 수신·발신 통화를 가로채는 등 한층 더 진화된 범행수법을 사용한다. 따라서, 보이스피싱 예방과 관련된 홍보와 교육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런 홍보와 교육을 숙지한 보이스피싱 사기꾼들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범행수법을 개발하는 중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떠나, 보이스피싱 범죄가 근절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반만이라도 아니 반의 반만이라도 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범죄는 나쁜 것이고 발생하지 않는 것이 최상이겠지만 지금도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무엇인가 범행을 저지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사기와 같이 선량한 피해자들을 상대로 조직적, 계획적으로 자행되는 범행은 정말로 근절되어야 한다. 앞서 말한 영화 『보이스』에서 중국에 본거지를 둔 보이스피싱 사기범죄단을 검거한 뒤 기자회견을 하는 지능범죄수사팀장 이규호(김희원 분)의 마지막 대사가 귓가에 맴돈다.


 “돈을 요구하는 전화는 무조건 끊으세요.... 그리고....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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