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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사삼공삼 Jul 23. 2022

2022.07.23

1막 1장 뉴스레터 숏터뷰

중학교 2학년, 다들 그 때쯤 첫사랑을 시작하죠.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전교생을 객석에 앉혀 두고 무대 위에 올라서면, 어쩌면 말 몇 마디 걸어본 게 전부인 그 친구의 눈에 띌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나름 치열한 가위바위보 경쟁을 뚫고 연극부에 들어갔어요.


슬프게도 본격적으로 연극을 준비해야 할 시기에 맹장염에 걸려버렸고, 수술 후 회복 과정이 길어져 무대에 오르지 못했어요. 아쉬웠죠.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그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아, 내가 원했던 건 바로 저 시선이었는데, 하고 생각했어요.


그 이후로는 평범한 학생으로 살았습니다. 공부의 늪에 빠져 허우적 허우적. 다행히도 무사히 대학을 입학하고, 또 졸업하고, 아주 흔하고 뻔하게 직장생활을 시작했죠. 무대는 삶과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또 아주 가까워졌어요. 그럴 수 밖에. 일을 하는 매 순간순간이, 살아내야만 하는 치열한 일상이 곧 연기인걸요. 삶은 무대였고, 저는 그 위에서 최선을 다해 관객을 웃겨야 하는 광대였습니다. 몇 년 후, 일을 때려치우고 정말 운 좋게 다시 학생이 되었죠.


그런데 숨이 차더라구요. 생각해보면 그때까지 계속 달리기만 했고, 휴가 한번 제대로 가보지 못했어요. 이젠 정말 쉬고 싶었습니다. 잠시 학업을 멈추고, 제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으로만 가득 찬 시간을 만들기로 결정했어요. 그 중 하나는 ‘예술 경험’ 이었습니다.


제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인스타그램이 ‘1막 1장’을 추천해주었어요. 사실 처음 보는 플랫폼은 이것 저것 꽤 꼼꼼히 따져보는 편인데, 1막 1장은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딱 한 문장으로 충분했거든요. “모두가 예술가라고 믿는 아트 커뮤니티”


그래, 나, 예술가야! 그 문장이 얼마나 큰 용기를 주었는지! 1막 1장에서 저는 하루만 더 살게 해 달라고 외치는 장발장이 되었다가, 죽은 딸을 안고 눈물 흘리는 리어왕이 되기도 하고, ‘어바웃 타임’의 메리가 되어서 눈을 감고 소개팅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런 안무도 정하지 않은 채로 음악에 몸을 맡기기도 했어요. 모든 순간이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그러다 ‘완벽한 타인’에서 ‘수현’ 역할을 맡게 되었어요. 바람피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려 게이인 척하는 남편에게 수현은 소리쳐요. “당신 날 사랑하긴 해? 왜 그때 날 용서한다고 했어? 조금도 용서 못하고 이렇게 숨막히게 할 거면서…”


당신 날 사랑, 당신 날, 사랑하긴 해, 당신 날 사랑하긴 해? 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이런 말을 연인에게 해본 적이 없어요. 정말 단 한 번두요. 대사를 한 입 가득 베어 물고 꼭꼭 씹을 때마다, 또 남편 역을 맡은 분의 멱살을 잡고 내뱉을 때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해방감을 느꼈어요.


무엇으로부터의 해방감이냐구요? 제 자신으로부터요. 저는 지금까지 제가 되기 위해 해 온 노력의 집합체예요. 하지만 웃기게도 벽돌 한 장 한 장 스스로 쌓아 올린 그 완벽한 성에 갇혀 있었던 거예요. 무너지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버티면서요. 머리 속에 대본을 넣고, '나'는 절대 하지 않을 말과 행동을 하는 순간, 철저히 다른 사람이 되는 바로 그 순간만큼은 내가 되기 위해 끌어모았던 모든 힘을 내려놓을 수 있어요. 재미있는 건 그 순간이 끝나고,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면 내가 되는 일이 더 즐거워진다는 거예요.


꿈이 생겼어요. 전 연기를 계속할 거예요. 12년 후에는 퇴근하고서 대학로에 설래요. 치열한 일상을 보낸 후 나를 내려놓는 시간을 마음껏 누릴 거예요. 내일도 저는 다른 사람이 되러 갑니다. 혹시 지금 고민하고 계신가요? 용기를 내요. 생각보다 재미있고, 생각보다 더 즐겁답니다.


아, 첫사랑은 어떻게 되었냐구요? 기깔나게 잘생겼던 그 친구는 배우가 되었답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트 커뮤니티, 모두가 예술가라고 믿는,

 1막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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