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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miyou Nov 27. 2020

우리 게임도 하고, 운동도 하자

전수경 장편동화『별빛 전사 소은하』

전수경 장편동화『별빛 전사 소은하』


누구에게나 뜻대로 모든 게 되지 않아서 작아지는 때가 있다. 내 잘못이 아닌 것들로 일이 잘못된 궤도로 굴러갈 때의 박탈감과 외로움은 해사하게 빛나야 할 추억 여기저기 얼룩을 남긴다.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까닭에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사람에게 다가갔고, 마음을 선뜻 내어주는 것에 겁이 없었다. 나의 마음은 선한 뜻이었고, 타인의 마음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던 탓에 그 마음이 거절당하거나 비참하게 버려졌을 때의 슬픔이 더 컸던지도 모른다. 또래 사이에 끼고 싶은 마음과 주요한 무리에 끼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계속해서 충돌했던 시절. 그 시절의 우리는 ‘친구’가 전부였고 ‘게임’이 전부였던 시간들을 살았다.




내가 빈 소원은…… 우주 평화였다. 돌이켜 보면 별똥별을 볼 때마다 같은 소원을 빌었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우주적 사건 앞에서 ‘게임 레벨 승급시켜 주세요.’나 ‘인기 있는 아이가 되게 해 주세요.’ 따위 소소한 소원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난 오래전부터 우주 평화를 빌어왔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별빛 전사 소은하』, 전수경, 창비, 14-15쪽


전수경 작가의 두 번째 장편 동화 『별빛 전사 소은하』는 그런 시간을 건너는 중이라 조금은 외로운 아이 ‘은하’의 이야기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외계인’이라 불리는 은하는 현실에서는 외로울지 몰라도, 유일하게 초등학생만이 우대받고, 최고로 인정받는 게임 세계 <유니콘피아>에서는 한 자릿수 랭킹을 기록하며 모두의 존경을 받는 탑티어다. ‘우주 평화’를 소원으로 비는 아이였던 은하는 어느 날 손목에 나타난 별무늬를 발견하면서 외계인과 지구인 사이에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다. 『별빛 전사 소은하』는 친구들로부터 배척받던 진짜 ‘외계인’ 은하가 지구를 위협하는 외계 세력으로부터 친구들과의 선한 마음을 모아 지구를 지켜내는 이야기다.


우주는 다양한 우주인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고 모든 우주인은 저마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어.
                                                                                            『별빛 전사 소은하』, 전수경, 창비, 34쪽


동화를 읽으면서 이렇게 울컥하기는 처음이었다. 우주 평화를 소원으로 비는 평범치 않은 초등학생 은하와 그를 온전히 지지해주는 두 친구들의 연대에서, 무엇보다 사랑으로 은하와 지구를 지켜냈던 엄마 오세리 대장의 말에서 지쳤던 마음에 위로의 불이 켜졌다. 


지구를 위협하며 차지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맞서 싸울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의 생명과 우주의 평화를 지켜 낼 것이다. 하지만 지구를 찾아오는 아름다운 외계인을 만난다면 먼저 다가가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별빛 전사 소은하』, 전수경, 창비, 176쪽


때로는 악하고 큰 힘보다, 선한 마음 여럿이 모여 악을 이긴다. 선한 마음들이 지켜낸 지구에서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야겠다고 다짐하게 했다. 


게임은 심심풀이로 하는 거지, 랭킹이나 레벨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들 한다.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다. 게임의 세계를 무시하는 발언이다. 나는 한 번도 게임을 심심풀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현실 세계만이 전부가 아니다. 가상 세계 역시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게임에서도 언제나 매너를 지키고 룰을 따른다. 그 안에서 누구보다 당당하고 진지하게 경쟁한다. 
                                                                                            『별빛 전사 소은하』, 전수경, 창비, 69쪽


이 책은 어린이들이 사랑하는 게임을 비난하지 않는다. 교육적인 시선으로 아이들의 세계를 재단하기보다 어린이들의 입장에서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지지해준다. 아이들 세계를 놀랍게 꿰뚫어 본 것 같은 촘촘한 감정의 서술이 나도 모르게 그 또래로 타임워프를 타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재미난 상상력으로 구축된 스토리가 순식간에 책 속에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도 앉은자리에서 이 책을 읽어낼 수밖에 없게 하는 힘이 있다. 밖으로 나설 수 없어 외롭고,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아 슬픈 어린이에게 게임만큼 재미난 이야기 속으로의 여행을 권할 수 있는 다정한 책이다. 




자신의 책을 읽을 어린이 독자에게 전수경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책이 좋아도 하루 종일 책만 읽으려고 하면 안 돼요. 가끔은 게임도 하고, 운동도 하는 게 좋아요. 우리의 게임 실력과 체력이 지구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언제나 게임 세계로부터 어린이를 지켜내려고만 애썼던 어른들에게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책테기’가 왔다고 하면서도 계속해서 책 이야기만 하는 친구와 나누며 웃었다. 그래, 우리 게임도 하고 운동도 하자. 그게 우리를 지키는 데에 도움이 될 테니까. 소중한 것들을 지키는 데에 힘이 되어 줄 테니까.




*창비 어린이 청소년 서포터즈 활동으로 본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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