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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Jul 13. 2020

Preikestolen, NTR의 시작

감동의 대자연

아침 7시. 힘겹게 일어난다. 몸이 무겁고, 하루종일 집에서 쉬고싶다. 하지만, Preikestolen은 절대 포기할 수가 없다. 3분 카레, 블럭 된장을 끓이고 캔 김치를 열어, 김과 함께 아침밥을 먹었다. 한국에서 사먹지 않는 3분카레가 이렇게 맛일수가 있나. 숙소를 정리하고, 출발. 가장 먼저 마트에 갔다. 구경할 것이 많치만, 우린 시간이 없다. 빠르게 간식, 물, 과일을 사려고 하는데, 까만게 글씨인것만 알겠다. 대충 마음에 드는 색깔로 아무거나 골라 Preikestolen으로 향했다. 

아침밥


구름이 가득하다. 날씨도 제법 쌀쌀하다. 정상에 올랐을 때, 풍경이 잘 보일 것이라고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우린 감사하기로 했다. 우리 가방에는 간식이 두둑하고,  비도 안 오고, 무엇보다 지금 우리, 여기는 상상만 했던 그곳, Preikestolen이다.


나는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다. 알 수 없는 날씨를 대비한 반팔과 바람막이, 무릎을 위한 등산 스틱, 강한 햇빛을 막기 위한 모자 그리고 풍족한 간식을 준비했다. 특별히 내 반팔은 사진이 잘 나오는 쨍한 노란색이다. 그런데, 출발한 지 몇 분이 되지 않아, 가장 중요한 준비물을 놓쳤음을 깨달았다. 바로 등산화. Preikestolen은 노르웨이 3대 트레킹 중 가장 난이도가 쉽다고 들었다. 등산화는 짐이 될 것 같아, 과감히 놓고 왔다. 하지만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바위산 Preikestolen이었다. 처음부터 바위를 밟고 올라가는데, 오래된 내 운동화가 자꾸 미끄러진다. 평지는 나오지 않고, 바위를 밟고 끝없이 올라간다. 

Preikestolen 초입


벌써 체력에 한계가 오고,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턱 끝, 아니 머리끝까지 찼다. 그 순간, 내 눈에 보이는 것은 함께 산을 오르고 있는 외국인들이었다. 여자든, 남자든, 다들 키가 크고 몸이 탄탄하다. 가방은 가벼워 보이고, 아무런 등산 장비 없이 집에서 입을 듯한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있다. 표정은 밝게 웃으면서, 가볍고 빠른 걸음으로 오른다. 그들 사이에, 공주치마를 입은 꼬마 숙녀가 보인다. 5살 되었을까? 두 발자국 앞서가는 아빠는 꼬마를 신경 쓰지 않는다. 꼬마는 혼자 온 것처럼 씩씩하게 오른다. 가끔 넘어지면, 아빠는 무표정으로 ‘일어나’ 하고 가버린다. 꼬마가 씩씩하게 일어나고 있을 때, 어떤 남자가 지나간다. 키 큰 남자 등에는 2살 되어 보이는 아기가 매달려있다.

 

남편과 나는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갑자기 반성의 시간을 갖으며 산을 올랐다.


나: 내 조카도 5살인데, 집 뒷동산도 몇 발자국 오르다가 힘들다고 찡찡거리거든. 꼬마 아이가 너무 대단하다. 

남편:  한국에서는 아이들을 너무 보호하면서 키우는 것 같아. 저렇게 어릴 때부터 대자연을 몸으로 경험한다면, 나중에 얼마나 멋진 어른이 되어있을까?

나: 외국에서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하고,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잘 찾아가는 것 같아. 또, 독립적으로 자라 가구. 


탄탄한 몸의 외국인들이 부러웠다. 어릴 적부터 저렇게 뛰어다니니, 탄탄할 수밖에. 그들은 집에서 입을 듯한 반팔, 반바지를 입었지만, 건강해 보이는 몸, 자신감 넘치는 표정 등 사람 자체에서 빛이나, 옷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 체력에 자신이 없어 등산용품을 준비하고, 내 외모에 자신이 없어 예쁜 옷을 준비했다. 여러 깨달음 속에서, 난 더욱더 포기할 수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꼭 올라가고 싶었다. 정말 한계가 왔다고 생각했을 때, 하늘이 뚫려 있는 평지가 나타났다. 어느새 구름은 걷혀 있었고, 파란 하늘이 나타나 있었다. 우린 기분이 너무 좋았고, 새 힘이 났다. 처음부터 날씨가 좋았다면, 이런 짜릿한 느낌은 못 느꼈을 것이다. 


계속해서 올라가다 보니, 한라산 윗세오름과 비슷하지만, 스케일이 훨씬 크고,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곳이 펼쳐졌다. 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고, 햇빛에 반짝이는 작은 호수가 보였다.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의 배경이 여기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예쁜 호수였다. 여기서 한 숨을 돌리고, 다시 출발. 30분 정도 더 오르니, 드디어 눈 앞에 피오르드가 보인다. 

산 위에 있던 작은 호수

영화 속 웅장한 음악이 내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경이롭고, 거대하고, 소름 돋게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압도적인 자연 앞에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은 혼자 여행 온 사람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셀카를 찍는다. 셀카 찍는 남편이 낯설다.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피오르드를 보고 또 본다. 멋진 이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일행이 있던 금발의 키 크고 잘생긴 외국인이었다. 뭐가 그리 신났는지, 장난을 치며 사진을 찍어준다.


외국인 : 원, 투, 쓰리! (사진 찍는 척하고 내 핸드폰을 들고 도망간다)

우리 : ………


남편은 영어를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순간, 우리도 장난을 치며 받아치고 싶었는데, 얼음이 돼서 한 마디도 못했다. 아쉬웠던 순간이다.

Preikestolen 

정상에는 사람이 가득하다. 대표적인 포토존은 줄이 길다. 우린 우리만의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남편이 열정적으로 나를 찍어준다.

 

남편 : (찰칵찰칵찰칵… 푹!)

나 :  아악!!!!!!

외국인들 : 꺄악!!!


뒷걸음치며 사진을 찍던 남편이 갑자기 땅으로 꺼졌다. 나는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다. 다리가 두 개 정도는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있었는데, 거기로 다리 하나가 빠진 것이다. 주변에 있던 외국인들도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어떤 덩치 큰 외국인이 물에 빠진 미역을 건져내 듯 남편을 꺼내 줬다. 남편과 나는 너무 놀랐지만, 크게 다치지 않아 감사했다. 남편은 사진을 마저 찍어주겠다고 했고 난 다시 원래 있던 위치로 갔다.


남편 : (찰칵찰칵찰칵… 푹!)

나 : ………..

외국인들 : …….


그렇다. 남편은 그 구멍에 또 빠졌다. 아까 구해줬던 외국인은 어이없다는 듯이 그 자리를 떴고, 남편은 혼자 힘으로 빠져나왔다. 남편은 처음 빠졌을 때는 크게 놀라고, 아파서 정신없었는데, 두 번째 빠지니 민망해서 빨리 하산하고 싶어 했다. 표정이 어둡고, 눈빛이 흔들리는 남편을 데리고, 안전한 바닥에 앉았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여유롭게 컵라면을 먹고 싶었지만, 우리 둘 다 마음이 너무 어려웠고, 집중이 잘 안되었다. 입맛도 없지만, 내려갈 체력을 위해 빵을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두 발로 걸어내려 갈 수 있음을 감사하며, 말 한마디 없이, 정신이 멍한 남편을 끌고 빠르게 하산을 했다. 

노란 옷의 저를 찾아보세요

하, 날씨가 정말 덥다. 몸과 마음을 다시 재정비하고, 출발. 오늘부터 NTR 시작이다. NTR은 노르웨이에서 지정한 가장 아름다운 도로 구간이란 뜻이다. 오늘은 NTR Ryfylke(뤼퓔케) 구간으로 Hjelmeland(이엘멜란)-Nesvik(네스빅) 구간이다. M/F Hjelmeland(페리)를 타고, 520번 도로에 있는 Svandalsfossen Sandsfjordbrua(산스피오르 브루아) 교량을 지나 Flesåna(플레세나) 폭포, Låtefossen(로테포쎈, 로테포쓴)를 들렸다가, Lofthus camping에 가는 일정이다. 

먼저 페리를 타러 왔다. 어제 타봤다고, 자신감이 넘친다. 페리를 기다리는 동안 선착장 풍경이 너무 예뻐 신발을 벗고 데크에 앉아 구경을 했다. 짧았던 순간이지만, 고요하고 자유로웠던 그 순간이 인상 깊게 남아있다. 페리를 타고 피오르드를 건너, NTR을 달린다. NTR 답게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오랜 운전이 지루하지가 않다. 갈 길은 먼데, 자꾸 차를 멈추게 된다. 노르웨이 여행 동안, 내 인생에서 볼 온갖 종류의 캠핑카를 다 본 것 같다. one-way, 꾸불꾸불하고 좁고 위험한 길이어서 캠핑카가 다니는 것이 쉽진 않다. 하지만 이들은 로드 트립 중,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아무 곳에나 멈추어 여유롭게 하루를, 하룻밤을 보낸다. 이 여유와 자유로움이 부러웠지만, 캠핑카는 비싸고, 우리의 시간은 짧다. 

페리 기다리는 중

노르웨이는 폭포가 많다. 산 정상에 있는 빙하가 녹아내린 물이다. 처음에 폭포를 봤을 때,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엄청난 규모에 입을 쩍 벌렸지만, 나중에는 들에 핀 국화처럼 흔하게 보여, 살짝 미소만 짓고 지나쳤다. 그중 대표적으로 유명한 폭포 몇 곳을 들렸다. 노르웨이 폭포와 첫 만남이 오늘 들린 Flesåna(플레세나) 폭포다. 폭포가 너무 커, 경사가 심한 계단으로 한참 올라갔다. 등산 직후여서,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온몸이 떨렸다. 힘이 안 들어가고, 몸은 쇳덩어리처럼 무겁고, 다리는 끊어질 듯 아프다. 하지만, 폭포를 보겠다는 집념으로 간신히 올랐다. ‘우와’ 지금까지 내가 본 폭포 중에 가장 아름답고, 컸다. 자연적인 폭포인데, 인위적으로 만든 것처럼 예쁘게 떨어진다. 사진 한 방 찍고, 다시 고통스럽게 내려갔다.

Flesåna(플레세나) 폭포


NTR을 타고 계속 이동했다. 갑자기 말도 안 되는 풍경이 펼쳐졌다. 도대체 이 광경을 사람의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남편과 나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우와~~ 대단하다 대단해” “미쳤다 진짜”이 보다 더 크게 감탄할 수 있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답답했다. 한 번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공룡이 뛰어다닐 것 같은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길이 위험한 이유도 있지만, 풍경을 최대한 눈에 담고 싶어, 남편은 속도를 더 줄였다. 더 놀라운 것은, 잠깐 몇 km 나타나도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오랫동안 풍경이 나타났다. 난 거대한 자연 앞에 압도당했고, 무섭다는 느낌이 들었다. 절대 사진과 영상으로 담기지가 않는다. 우리만 이 곳에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멋진 풍경에서 멀어지고,  Låtefossen(로테포쎈, 로테포쓴) 폭포에 도착했다.  2개의 폭포가 같이 있는데, 물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소리 지르며 대화해도 잘 안 들릴 정도로, 소리가 엄청 크다. 폭포가 이렇게 무섭게 쏟아질 수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 곳에서 짧게 구경하고 바로 차에 탔다. 내 체력이 끝나, 몸이 쓰러질 듯 힘들었다.   


숙소에 가던 중,남편은 가스를 사기 위해 주유소 편의점에 들렸다. 그런데, 주유소 네 곳을 들려서야 가스를 살 수 있었고, 남편은 짜증이 폭발했다. 상태 안 좋은 두 한국인은 밤 9시, Lofthus camping에 도착했다. 우리의 첫 캠핑장. 둘 다 컨디션이 안 좋은데, 캠핑장의 시스템을 모르겠다. 넓은 캠핑장은 캠핑카, 텐트가 가득하고, 정신이 없다. 아무 곳에 주차를 하고 남편은 인포메이션으로 갔다. 차 안에 혼자 남편을 기다리는데, 어떤 외국인이 창문을 두드린다. 여기는 자기 자리라고 차를 옮기라고 짜증을 낸다. 나는 sorry, wait a minute을 반복하며 안절부절못한다. 잠시 후 남편이 오고, 우리 히떼로 이동했다.


작은 오두막 같은 히떼. 문을 연 순간, 오 마이 갓. 그 자리에서 울어버리고 싶었다. 너무 배고프고, 몸이 힘들어 씻고, 먹고, 잠드는 것을 빠르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할 일이 가득 보인다. 좁은 그곳은, 매우 오래되어 보이고, 더러운 나무 침대 2개와 테이블이 놓여있다. 조명은 어둡고, 쾌쾌한 냄새가 난다. 심지어 화장실, 샤워실, 주방이 언덕을 지나 한참 걸어가야 한다. 나는 빠르게 짐을 풀고, 침낭을 깔고, 밥을 안쳤다. 그 사이 남편은 주방에서 코펠을 씻어왔다. 비비고 찌개 한 봉지를 끓여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햇빛이 눈부시다. 아침인가 보다. 남편과 나는 잠옷으로 갈아입지도 않고, 씻지도 않고, 저녁밥 먹은 그릇을 치우지도 않고, 기절한 것처럼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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