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눈 위로 떨어지고, 코 끝이 시큼하다. 간신히 뜬 눈앞에는 어젯밤 전투적인 저녁식사 흔적이 그대로 있다. 대포 소리로 코를 골고 있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남편 : 나 잠들었어?? 언제 잠들었어??
나 : 노르웨이 산맥이 흔들리도록 코를 골더니 뭔 말이야. 얼른 정리하고 아침 먹자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바로 떴는데 아침이 된 듯한 신기한 경험을 한 남편은 자동적으로 설거지 거리를 들고 공용 부엌에 갔다. 그 사이에 나는 침낭과 짐을 정리했다. 아침밥 메뉴는 누룽지탕. 점심에 먹기 위해, 귀여운 밥솥에 밥도 했다.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를 한 후, 코인을 들고 샤워하러 갔다.
코인 두 개를 넣고, 샤워기를 켰다. 따뜻한 물에 몸을 적시니, 살 것 같다. 몸에 비누칠을 하고, 다시 샤워기를 틀었는데 경험한 적 없는 차가운 물이 나온다. 무언가 잘 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르웨이 빙하로 모자를 만들어 머리에 쓴 것처럼 머리가 띵하고 터질 것 같다. 샤워부스 옆에 세면대가 보인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물을 트니 따뜻한 물이 나온다. 내 조그만 손으로 열심히 물을 퍼 몸을 대충 씻고 나왔다.
남편에게 돌발 상황에 대처한 나의 기지를 자랑했더니, 남편은 코인을 한 번에 두 개 넣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먼저 넣고 온수 사용시간 3분이 끝나면, 또 넣는 것이라고 말하며 신나게 웃는다. 정말 즐거워 보인다.
오늘도 우리는 바쁘다. 특히 아침이 제일 바쁘다. 밥 차리기, 설거지하기, 씻고 짐 정리하기. 노르웨이 여행 내내 아침 7시에 일어났고, 빠르게 움직였지만, 이 모든 것을 하려면, 2시간은 소요된다. 한국에서 남편은 부엌과 거리가 멀다. 설거지를 싫어하고, 아침밥을 잘 안 먹는다. 하지만 낯설고 고된 이번 여행에서 남편은 불평 한마디 없이, 먼저 움직여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쓰레기를 버리고, 운전을 했다. 난 여행 내내 단 한 번도, 공용 주방과 공용 쓰레기장에 가본 적이 없다. 체력이 약한 나는 남편 덕분에 여행을 누릴 수 있었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 요리와 애교는 내가 담당했다.
청결하지 못해 불평이 심했던 우리 히떼 바로 앞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Eidfjord(에이드 피오르드)가 있다. 하얀 빙하를 품고 있는 높은 산맥에 구름이 걸린 모습도 멋있었다. 납작 복숭아와 청포도를 들고 의자에 앉아 과일을 먹으며 풍경을 구경했던 그 순간은 잊을 수가 없다. 행복함이 마음을 배부르게 했고, 이 숙소를 선택한 것을 감사하게 했다.
경치와 색감이 잘 어울리는 아침 과일
더 여유롭게 즐기고 싶지만, 오늘도 갈 길이 멀다. 차를 타고 캠핑장을 나오려던 순간, 나무로만 만든 그네가 보였다. 잠깐이지만 그네를 타며 다시 한번 풍경을 즐겼고, 그 순간은 내 인생 사진이 되었다. 사진이 예쁘게 잘 나와서 인생 사진이 아니라, 내 마음이 행복했던 순간이어서 인생 사진이다.
나무 그네
빙하 물 색깔이 참 예쁜 Eidfjord를 따라 달리다 보니, 엄청 큰 크루즈가 어느 작은 마을 선착장에 정박하고 있었다. 에메랄드 빛 피오르드와 빙하 모자에 구름 옷을 입은 키 큰 산, 외국 영화에서만 본 크고 멋진 크루즈. 우린 달리던 차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차에서 내려, 선착장을 거닐고 있는데, 외국인 노부부들이 크루즈에서 쏟아져 나온다. 우리 쪽으로 오던 외국인 노부부가 우리에게 말을 건다. 은퇴 후 크루즈 여행을 하고 계시고, 독일에서 오셨다고 했다. 어느 루트를 거처 여기까지 왔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는지 등 즐겁게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영화같은 배경에, 영화 속 신사와 숙녀같은 노부부, 난 영화속에 있는 착각이 들었다.
사진보다 훨씬 컸던 크루즈
첫 번째 목적지는 하르당에르비다 자연센터(Hardangervidda Naturzentrum). 기념품 가게 지붕 위에서 염소를 기른다고 해서 더욱 궁금했다. 그런데 자연센터 도착과 동시에 비가 엄청 쏟아진다. 비 때문에, 지붕 위 염소는 실내로 들어간 상황이다. 자연센터 입장료가 생각보다 비싸서 구경을 안 하기로 했고, 다음 코스로 출발하기로 했다.
염소야 어디 있니
다음 목적지는 Vøringsfossen (뵈링스 폭포, 뵈링 폭포), Tysvikofossen(튀스비코 폭포). NTR 7번 국도 Hardangervidda 구간을 따라 가면 모뵈달렌 계곡 끝에 노르웨이에서 반드시 가야 하는 최고의 폭포로 유명한 이 곳이 나온다. 이 곳에 가기 위해서는 이상한 모양의 터널을 지나, 높은 지대로 올라가야 한다. 이상한 모양의 터널은 100m 높이의 고도차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노르웨이 여행을 하다 보면, 수많은 터널을 지나간다. 한국의 시멘트 터널과 다르게, 거칠게 구멍만 뚫은 듯한, 자연 그대로 모습이다. 20분 넘게 터널을 달린 적이 있을 정도로, 끝없이 긴 터널도 많다. 또 재미있는 것은, 터널 안에 구멍이 3개가 있어, 교차로가 있기도 하다. 노르웨이는 터널조차 신기하고 재미있다.
빙글빙글 터널
이상한 터널과 함께 험준한 계곡을 오르니 귀가 멍하다. 침을 꿀꺽 삼키며, Fossli Hotel 주차장에 도착했다. 비가 더 심하게 온다. 우산을 썼지만, 옷이 젖고, 눈이 안 떠지고, 춥다. 폭포를 보기 위해 어느 정도 걸어가야 한다.
세찬 비를 맞으며, 간신히 폭포 전망대에 도착했지만, 물안개가 가득해 잘 보이지 않는다. 정말 멋진 폭포라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폭포가 떨어지는 엄청나게 큰 소리만 들린다. 소리를 질러도 서로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폭포와 폭포의 굉음으로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추워서 떨리는지, 무서워서 떨리는지 모르겠지만, 내 몸이 덜덜 떨린다. 차 안으로 빠르게 돌아와 다시 출발. 이제, 험한 계곡에서 내려가, 다음 코스로 향하는 길에 정박해서 점심을 먹어야 한다. 밥을 먹을 수 있는 적당한 장소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다. 평소 순둥이 남편이 가장 예민하고 화를 낼 때가 있다. 바로 배고플 때. 아침에 누룽지 한 그릇 먹고, 달렸던 남편은 배가 고픈 게이지가 이미 찼다. 이제 짜증과 화를 낼 일만 남았다. 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