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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zog Feb 21. 2020

Isn’t She Lovely?

작은 아씨들, 2019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은 도전적인 측면이 엿보인다. 영화는 ‘19세기 여성’을 묘사하지만, 그 방식은 전통적인 관습에서 탈피하기 때문이다. 작품의 주역인 네 자매는 생기로 가득하다. 활동에 불편한 코르셋은 착용하지 않고 부자연스러운 정숙함과 거리를 둔 그들은 유쾌한 하루를 보낸다. 파티장에서 처음 만난 남성과 막춤 대결을 벌이며, 다락방에 둘러앉아서 애드립을 주고받고, 어린이 관객 앞에서 연극 무대를 열정적으로 펼쳐낸다. 기쁜 일로 신이 난 주인공은 거리를 전력 질주하며, 창작자는 이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것처럼 슬로우 모션으로 길게 늘인다.


네 자매는 마치 캔디 같은 하모니를 이룬다. 연애에 깊이 빠진 사랑꾼 메그, 넘치는 활기로 주변 사람들을 리드하는 조, 묵묵히 자기 할 일 하는 베스, 질투심도 배려심도 넘쳐나는 에이미. 개성이 뚜렷한 소녀들은 사춘기의 고민과 마주한다. 1868년 출간된 고전 소설을 21세기 영화로 재구성하는 작업에서, 서사의 전개 속도는 한껏 끌어올려진다. 배우는 빠르게 대사를 주고받으며, 편집은 각종 해프닝을 압축적인 형태로 제시한다. 7년에 걸친 시간 동안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영화는 인물 개개인의 시점에서 지그재그로 전개되며, 감독은 주체적인 삶을 모색하는 소녀들의 심리와 현실에서 그들이 마주하는 난관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본다.



영화의 주요 배경은 눈이 수북이 쌓인 한 겨울임에도, 그 정조는 꼭 을씨년스럽지 않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세상은 이웃 간의 나눔과 베품이 지탱하며, 마치 가의 가족애와 선행은 화면에 인간적인 온기를 채워준다.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클래식 음악은 인물들의 공동체 의식과 조화롭게 맞물린다. 쇼팽, 슈베르트, 드보르작의 실내악 곡은 풍부한 잔향으로 마치 교회에서 듣는 것 같다. 특히 초반과 후반에 반복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의 아다지오 칸타빌레 악장은 서정적인 힘을 한껏 발휘하며, 베스가 저택에서 홀로 연주하는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은 자식 없이 홀로 남은 로렌스의 외로움을 치유한다.


비록 아버지는 남북 전쟁에 참가했지만, 화목한 가정에서 생활하는 네 자매는 예술가의 소질을 품고 있다. “여자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배우로 무대에 서거나 매춘부가 될 수밖에 없다”는 대고모의 인식은 19세기 중반 여성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는 현실을 대변하며, 대고모는 조와 에이미에게 여성으로서 현실에 순응할 것을 넌지시 종용한다. 그러나 인생에서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 소녀들은 마음이 끌리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연출은 “여자들도 세상에 나가 스스로 결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신념에 공감하며 그들 각자의 결단에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한편 그 결과는 장밋빛으로 과장하지 않는다.


일찍이 가정교사와 결혼을 선택한 맏이는 궁핍한 생활에 지쳐간다. 뉴욕에서 전업 작가가 된 둘째는 확실하게 자리잡지 못하고, ‘파리에서 최고의 화가’가 되는 게 꿈인 막내는 유럽에서 재능의 한계를 체감한다. 성인이 된 그들은 어린 시절 상상했던 것과 다른 현실에 낙담하지만, 연출은 정치적인 관점에서 그들의 좌절을 당시 여성의 자율성에 억압적이었던 사회 분위기를 비판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모하지 않는다. 그보다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인생 선배의 입장에서, 이상과 현실을 조율하는 한 과정으로 파악한다. 벽에 부딪힌 여성들은 마음을 추스르고 한 단계 성숙해가며, 그레타 거윅은 두 손을 높이 들고 궁극적인 삶의 행복을 찾는 그들의 변화를 응원한다.



2020 아카데미 영화제 작품상 후보에 오른 작품 , 유일하게 전체 관람가 등급인 “작은 아씨들에서 관객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자극적인 요소는 딱히 찾을  없다. 대신 배우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눈에 띈다. 배우 티모시 살라메와 루이스 가렐의 보헤미안 감성과 분홍빛 드레스를 입은 엠마 왓슨의 우아함은  자체로 회화적인 순간을 창조하며, 로라 던의 자애로움과 메릴 스트립의 냉랭한 카리스마는 대조를 이룬다. 배우의 고유한 개성을 존중하는 연출법은 자연스러운 일상 연기를 유도하는데, 덤벙대는 시얼샤 로넌의 활기와 플로렌스 퓨의 내숭은 자석처럼 서로 밀어내고 끌어당기면서 유년기의 풍경에 역동성을 불어넣는다.


유머 감각을 바탕으로 한 연출은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못한다. 조가 생활비에 보탬이 되기 위해 머리카락을 자른 후 의연한 척하다 늦은 밤 몰래 울음을 터트리는 신에서, 연출의 스타일은 집약적으로 나타난다. 한편으로 19세기 미국의 시대상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남성은 여성과 적대하는 인격체로 규정되지 않는다. 로리와 로렌스, 존, 프리드리히, 아버지는 함께 협동하는 파트너로 여성들과 정서적으로 교감한다. 영화 속 모든 캐릭터를 정성스럽게 그려내는 시선에는 인간에 대한 온정이 묻어 있다.


주제적인 측면에서 “작은 아씨들” 속 사랑에 대한 깨달음은 전작 “레이디 버드”보다 확장되는 것처럼 보인다. “레이디 버드”에서 대학 입학으로 독립하게 된 주인공이 타지에서 가족의 사랑을 실감했다면, “작은 아씨들”에서 로리의 청혼을 거절한 조는 독립적인 생활을 모색하지만 결국 외로움에 몸서리친다. 조에게 결혼은 여성의 독립적인 삶을 방해하는 제도에서 사랑에 의해 절실한 필요가 된다. 결국 바랬던 상대와 결실을 맺은 메그와 조, 에이미를 축복하는 영화의 여성주의적 관점은 현실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과 휴머니티가 적절하게 배합되어 균형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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