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 2019
2018년 “스타 이즈 본”에서 레이디 가가의 첫 무대는 눈부셨다. 작은 술집에서 선보였던 “라비앙로즈”에서, 그녀의 가창력과 카리스마는 브래들리 쿠퍼의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 화려했던 레이디 가가의 퍼포먼스가 걸출한 스타의 탄생을 예고했다면, 1954년 “스타 이즈 본”에는 주디 갈란드의 역대급 첫 무대가 있다. 어느 야심한 밤 문을 닫은 클럽에서 재즈 밴드는 반주를 연주했고, 처음에 수줍어했던 가수는 “The Man That Got Away”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남몰래 지켜보고 있던 제임스 메이슨은 그녀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혼이 쏙 빠질 수밖에 없었다.
1922년생 주디 갈란드는 먼 옛날 사람이다. 오드리 헵번보다 7살 언니였고, 마릴린 먼로의 또래였던 주디 갈란드는 1940년대 헐리웃 뮤지컬 장르의 황금기를 수놓았던 스타였다. 당시 헐리웃의 아이유라고 할 수 있을까. 스타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는 3살 때부터 무대에서 “징글벨”을 불렀고, MGM 스튜디오 소속으로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 역을 맡으며 17살에 스타덤에 올랐다. 불멸의 히트곡 “오버 더 레인보우”에 도장을 찍었으며, 1940년대 “걸 크레이지”(1943), “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1944), “해적”(1948) 같은 뮤지컬 영화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영화 “주디”는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6개월 전 런던에서의 행적을 좇는다. 찬란했던 전성기는 먼 과거가 된 지 오래이다. 1968년 현재는 참담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집도 차도 없는 상황에서 공연 출연료는 150달러에 불과하다. 수 차례의 결혼 생활은 이미 실패로 귀결됐다. 호텔 숙박비는 밀려있고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졌다. 남은 것은 “몸 바깥의 심장” 같은 어린 자녀들에 대한 모성애지만 곧 양육권 분쟁이 뒤따른다. 파티에서 새로 사귄 남자 친구는 사업에서 실패한다. 초라했던 스타의 말년을 극적으로 재구성하는 영화는 배우 르네 젤위거의 힘을 빌려 백스테이지 속 스타의 고통에 가까이 다가간다.
2020년 아카데미 상을 품에 안은 르네 젤위거는 말 그대로 원맨쇼를 보여준다. 배우는 배역에 마치 빙의한 것 같다. 얼굴에 깊게 새겨진 주름 속 소녀 같은 미소는 관객을 주인공의 애달팠던 삶의 한가운데로 데려간다.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느새 잊게 되고, 알콜과 약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고독은 사무치게 다가온다.
쇼 비지니스의 세계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연예인의 사연은 한국에서 낯설지 않다. 2019년 전 남자 친구와 큰 불화를 겪은 구하라, 끊임없이 SNS 악플에 시달린 설리, 약 12년 전 탤런트 최진실과 최진영 남매처럼 정서적으로 기댈 곳 없는 연예인의 마지막 선택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면 속 불면증에 시달리며 안절부절못하는 주디의 모습은 불구경하듯 남의 일처럼 마음 편히 지켜볼 수 없다.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주디”를 감상할 수 있다. 감성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만신창이가 된 주디의 내면에 동정심을 품게 된다. 한편 분석적인 관점에서 보면, 영화는 르네 젤위거가 펼치는 눈물의 원맨쇼만 보인다. 주인공의 존재를 잠시 괄호 친다면 “주디”는 전기 영화로서 밋밋하다. 주인공의 심리 묘사에 공들이는 연출은 스튜디오의 계획 아래 통제되었던 스타의 사생활과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인간관계를 피상적인 차원에서 다룬다.
영화에서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구성은, 스타의 침체된 심리가 사춘기 시절 케이크 한 조각 마음대로 손에 댈 수 없게 했던 스튜디오의 억압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과거는 곧 현재의 원인이지만, 영화의 플래시백은 그 조야한 만듦새로 마치 주말 MBC 예능 프로그램의 재연 화면을 연상시킨다. 주디와 MGM 스튜디오 사장 루이스 B. 메이어의 충돌도, 또래 사춘기 남자 배우와의 썸도, 스케줄에 따라 생일 파티를 앞당긴 데 대한 분노도 정서적으로 큰 울림을 갖지 못한다. 단지 그런 사건이 과거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데 의의가 있을 뿐이다.
스타가 대체할 수 없는 재능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면, 주디 갈란드의 스타성은 목소리에 있을 것이다. 흔치 않은 콘트랄토의 음역대를 타고났고, 마치 높은 파도 같은 바이브레이션은 그의 전매특허였다. 동시에 당대의 뮤지컬 대배우 진 켈리와 합을 맞출 만큼 출중한 댄스 실력의 소유자였다. 르네 젤위거 역시 영화 “시카고”에서 빼어난 노래와 춤을 선보인 바 있었지만 “주디”에서 “San francisco”, “By Myself”, “Get Happy”를 직접 소화하는 배우의 목소리는 톤이 다소 높고 연약해 보인다.
“주디”는 헐리웃의 한 시대를 장식했던 여배우에게 보내는 추모의 메세지이다. 동시에 “주디”는 순수한 팬의 입장에서 만든 영화이다. 팬의 입장에서 연출했기에, 매 장면은 인간적인 연민이 녹아있다. 또한 팬심으로 가득하기에 영화는 감상주의에 도취된다. 런던 카바레의 마지막 무대에서, 주디는 구슬프게 “Over the rainbow”를 부르던 중 격한 감정에 노래를 중단한다. 평소 주디를 추종했던 동성애 커플은 중단된 노래를 이어부른다. 객석의 모든 관객은 기립한다. 스타를 응원하는 청중의 심정은 곧 연출의 심정일 것이다. 이 순간은 마치 “나는 가수다”에서 임재범의 마지막 무대처럼 닭살 돋는다. 상투적인 방식으로 반복되는 상업 영화의 눈물 유도 패턴은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까. 사골처럼 우려왔던 패턴은 이제 변화를 줄 때도 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