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깨닫는 가치
김밥 한 줄은 천 원이 아니라,
우리가 산 김밥의 재료의 가치
더하기 우리가 들인 정성이고,
라면 한 봉지는
850원이 아니라
라면을 만든 정성
더하기 먹고 싶은 간절함이라는 것을
조금 늦게 이곳에서 깨달았다.
그래서 스리랑카는 나에게 보물섬이다.
어느 날, 바닷가에 사는 단원의 집으로 모인 적이 있었다. 김밥과 떡볶이가 먹고 싶던 우리는 40도가 웃도는 더위에 빽빽히 둘러 앉아 요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미 더운 날씨에 불까지 켜두니 찜통이 따로 없었다. 공간이 부족한 나머지 거실 식탁에서도 요리를 했다. 주방과 거실을 왔다갔다하니 모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래도 명절의 풍요로움이 거실에 가득했다. 땀을 흘리면서도 수다꽃이 피어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넋두리로 이거 천원짜리 아니냐고, 우리 한국가서 많이 먹자고, 그런데 한국에 와서도 그때처럼 맛있는 김밥은 먹지 못했다. 소고기, 참치, 야채, 치즈 등 별별 재료 다 들어간 김밥을 먹어도 스리랑카에서 먹던 김밥맛은 못했다. 그곳에서는 직접 노력해야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요리를 했지만 이렇게 까지는 와닿지 않았다. 아마 한국에서 들였던 정성보다 두 배는 더 들여야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가 아닐까,
모든게 넘치도록 살아왔던 한국에서의 삶을 살아오다 스리랑카라는 낯선 나라에 도착하니 조금은 빈곤한, 불편한 삶을 살아야 했다. 집 앞에 가위를 파는 마트가 없어 이십 분 동안 버스를 타고 도시로 나가야 했다. 수도가 아닌 도시에는 우리가 흔히 사던 식재료가 없던 탓에 수도로 나가는 날에는 애호박, 삼겹살, 각종 소스 등을 바리바리 들고 돌아와야 했다.
그러면서 알았던 것 같다. 돈의 가치를 넘어서는 그 물건 자체의 소중함을, 예전에 김밥을, 어묵을 먹었을 때 느끼지 못한 뿌듯함을, 물건에는 통일할 수 없는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 풍요롭지만 빈곤한 나의 마음 속에서, 또 빈곤하지만 풍요로왔던 나의 스리랑카 생활 속에서 삶의 작은 철학을 배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