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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연 Mar 05. 2018

프롤로그


고단하던 육아의 전환기가 찾아온 순간,

아이의 말이 빛나기 시작했다


육아가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고 즐기며 살고 있노라 말하고 싶었다. 그것이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였다. 나는 아름답고 위대한 시간을 살고 있는 중이라고, 먼 훗날 어느 순간에 지금 이 시간들이 눈물겹게 그리워질 거라고 끊임없이 나 자신을 다독였다. 하지만 매 순간이 내 마음 같았던 건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 앞에서 마음이 무너지는 날도 많았다. 가끔은 노력과 상관없이 찾아오는 좌절감에 힘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를 살게 하는 건 아이뿐이었다. 내 아이니까 버틸 수 있었고, 내 아이니까 더 잘할 수 있었다. 


아이가 우는 신호를 알아차리고 반응하는 것이 늘 어려운 숙제였다. 그걸 하지 못해서 나도 눈물이 났다. 답답하고 미안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내 눈물을 닦아주며 “울지 마, 엄마.”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이의 작은 어깨에 얼굴을 묻고 속에 있던 묵은 울음을 토해냈다. 아이는 내 등을 쓰다듬으며 “엄마, 힘내.” 하고 이야기해줬다. 이토록 작은 아기에게 큰 위로를 받으며 살고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때가 육아의 전환기였던 것 같다. 이전까지는 내가 보호자의 입장에서 아이를 책임지고 안고 가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아이는 내 안에서 나왔으니까, 너무도 작고 연약하니까 좋은 길로 이끌어주며 잘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내 생각대로 잘 이끌고 오는 것이 육아의 주된 목표였다. 그러나 육아는 누군가의 주도로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눈 맞춤을 하며 긴 여정을 함께 가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와 나란히 걷기 위해 내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의 말과 생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하루하루 말이 늘었다. 울며 떼쓰는 것 대신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알아갔다. 아이가 더듬더듬 말을 하면 나는 무릎을 땅에 대고 얼굴을 아이의 입에 가까이 대며 온몸으로 아이의 말을 받아내려고 애썼다. 나의 모든 감각이 아이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행여나 한 마디라도 공중으로 날아갈까 싶어 촉각을 곤두세워 아이의 말을 하나하나 내 안에 담았다. 그렇게 조심스레 전해져 오는 아이의 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이었다. 아이는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나와 이야기로서 나누려 했다. 어설픈 발음으로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알려줬다. 아이 딴에는 힘들었을 테지만 아이는 지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아이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나에게 전해왔던 걸까.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아이의 말을 얼마나 많이 놓쳐버린 걸까. 그리고 그 속에 포함된 우리의 소중한 시간들이 얼마나 많이 흘러가버린 걸까.’


다시 오지 않을 아이와의 시간들이 그냥 지나가버린다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아이의 보석 같은 말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워 마음을 비우고 아이에게 더욱 집중했다. 그러자 아이의 말이 하나씩 생명을 얻기 시작했다. 아이의 말로 인해 울고 웃는 일상이 나의 생각과 삶을 변화시켰다. 이로 인해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있고, 지금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들을 사는지 배우고 있다. 고단하던 육아의 전환기가 찾아온 순간, 그제야 아이의 말이 빛나기 시작한 것이다.


힘들기만 할 거 같던 시간들이 어느 순간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변했다. 지금까지 아이와의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간 거 같은데 앞으로 남은 시간들은 더 빠른 속도로 흐르겠지. 저만큼 앞서 뛰어가는 아이의 뒤를 쫓아가고 싶지만 내 걸음은 자꾸만 느려진다. 나는 이제 아이를 안는 대신 아이와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것들을 더 많이 품는다. 매일이 아쉬워 지금 이 순간을 사랑스럽게 매만진다. 지금 고단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누군가에게도 이 책이 현재의 행복을 일깨워주는 기회가 된다면 좋겠다.


화창한 봄날, 아이와 손을 잡고 꽃길을 걷는데 아이가 말한다.

“엄마, 우리 지나가면서 꽃들을 마음에 담아두자. 그러면 우리 마음에도 꽃이 활짝 필 거야.”

아이의 말로 인해 내 마음속에도 꽃이 활짝 핀다. 아이 덕분에 나는 이렇게 향기로운 사람으로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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