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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연 Mar 06. 2018

달콤한 냄새가 나


엄마는 너무 부들부들해.
엄마한테서 달콤한 냄새가 나.


나의 엄마에게서는 좋은 냄새가 나지 않았다. 새벽녘에 쫓기듯 집을 나서서 종일 일하고, 집에 들어와 집안일과 식사 준비를 해치우는 전쟁 같은 일과에서 좋은 냄새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남편과 어린 두 딸은 쌓여 있는 설거지에 물 받는 일조차 할 줄 몰랐으니 그 많은 집안일이 오롯이 엄마 차지였다. 엄마는 늘 정신없이 바빴다. 엄마에게 학교에 가져 가야 할 준비물을 수없이 말해도 수시로 까먹었다. 씻는 시간조차 사치였기에 엄마는 머리 감는 일을 아꼈고, 새 옷 갈아입을 여유가 없어 늘 땀 냄새를 풍겼다. 낡은 신발을 신고 밖에서 일하는 엄마의 발에는 무좀기가 가실 새가 없었다. 자기 전에 겨우 세수만 한 얼굴에 샘플 로션을 치덕치덕 바르는 걸로 하루를 마감하는 엄마에게서는 싸구려 화장품 냄새가 거의 유일한 향기였다.


하지만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엄마에게 씻어라, 옷 갈아입어라, 좋은 화장품을 써라 등의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엄마는 더 이상의 노력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을 정도의 치열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엄마에게 좋은 향기까지 풍기며 살라는 요구는 차마 하지 못했다. 그건 엄마에게 불가능한 것을 해내라며 억지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향기를 낼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나는 엄마 냄새를 좋아했다. 엄마 옆에서 킁킁거리며 엄마 냄새를 맡고 어리광부리는 시간이 행복했다.


육아를 시작하며 내가 목표로 둔 두 가지 사치는 하루 한 잔 테이크 아웃 커피를 마시는 일과 매일 머리를 감는 일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정도는 하며 사는 우아한 육아맘이 되리라 굳게 다짐했다. 하지만 육아의 시작과 동시에 두 가지 목표가 어이없이 무너졌다. 내게는 하루 한 잔의 테이크 아웃 커피와 매일 머리 감기는 허용되지 않았다. 커피 전문점의 문턱은 유모차 바퀴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을 만큼 높게 느껴졌고, 자기 전 겨우 씻은 얼굴에 로션을 두둑하게 바르는 것이 꾸밈의 전부였다. 그렇지만 나를 게으르거나 무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치열한 육아 인생을 살아내는(혹은 버티는) 중이기 때문이다.


엄마한테서 달콤한 냄새가 나.


아이는 내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했다. 내 얼굴과 목덜미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더니 달콤한 냄새가 난단다. 오늘도 감지 못한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크림으로 얼굴을 찐득하게 만들어놓는 걸로 하루를 마감하려는 참이었다.


아, 달콤해.


아이는 점점 더 내게 다가와 냄새를 맡으며 웃었다. 내 몸 냄새를 맡아봐도 달콤함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는 계속 내게 파고들더니 아예 내 품에 안겨 얼굴을 묻고 비비적거린다.


엄마는 너무 부들부들해.


아이가 느끼는 엄마의 냄새는 달콤하고 부들부들하다. 그 냄새가 어떤 것이든 엄마에게서 나오는 냄새라면 아이에게는 가장 좋은 것이 된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아이를 품어주는 유일하고 온전한 온기다. 내가 엄마 냄새를 좋아했듯 내 아이에게도 엄마 냄새란 이런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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